Home / Design / 일반 / Skono, 스코노 이야기 (1)

Skono, 스코노 이야기 (1)

Photo from Skono, http://www.skonokorea.com/

이 글은 앞으로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번호를 붙이고, 연재로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노르딕후스는 한국의 스코노와 협업을 진행하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협업의 의미를 알리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

협업의 의미를 기억하는가?  노르딕후스나 “노르딕 소울” 책을 통해서 여러 번 협업이 무엇인지 소개한 바가 있다.  협업의 가장 아름다운 예는 스웨덴의 스벤스크텐 이라는 회사에서 일어났던 세기의 협업이다.  노르딕 소울 책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QUOTE

스벤스크텐, Svenskt Tenn이라는 이름은 스웨덴의 주석 합금(주석과 납이 섞인 것), Swedish Pewter 정도로 번역된다.  1924년에 미술 교사 겸 주석 합금 아티스트였던 에스트리드 에릭손, Estrid Ericson(1894–1981)이 세웠으며, 주석 합금으로 식기를 만들어 쓰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에 주로 북유럽의 기능적인 인테리어 소품과 식기류를 판매했다.  주목을 받으며 찬사를 이끌어냈지만, 그녀는 북유럽의 틀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대부분의 북유럽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화려한 뉴욕의 톡톡 튀는 디자이너들, 아름다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파리의 아티스트들, 흘려 그린 선 하나가 작품이 되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에 비해 북유럽 디자이너들은 순박하다 못해 학생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에스트리드는 단순하지만 기능적이고, 또한 화려함을 숨긴 채 환호성을 받을 만한 오늘날의 북유럽 디자인을 완성시킨 디자이너다.  그러나 그녀의 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의 한 수’ 같은 운명을 만나게 된다.

요제프 프랑크, Josef Frank(1885-1967)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뒤 소프트 모더니즘, Soft Modernism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혼란을 온몸으로 겪는 와중에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평등과 존중 같은 가치들을 기본으로 하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고, 한편으로 이탈리아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숨기고 있었다.  결혼한 뒤 스웨덴으로 이주한 요제프는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스벤스크텐의 에스트리드와 만난다.  무려 2천 점이 넘는 스케치와 160개의 유명한 패턴 디자인을 남길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이 서른 살의 젊은 디자이너는 56년간 같은 꿈을 꾸며 같은 인생을 살았다.

북유럽 디자인 역사상 최고의 파트너십이자 콜라보레이션으로 손꼽히는 에스트리드와 요제프의 협업은 두려움 없는 시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 클래식과 모더니즘, 장식적인 것과 기능적인 것 등 모든 분야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지는 조화였다.  협업은 두 개 이상의 다른 가치를 가지고 같은 목표로 협력하는 작업이다. 어느 한쪽이 상대적 우위에 서거나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협업이 일어날 수 없다.  지극히 평등하고 상호 존중의 가치가 밑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더 욕심이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단호히 그런 일은 북유럽에서는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서로가 단순히 필요하다고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정 기간 지식을 전수해 주는 것이 협업은 아니다.  북유럽의 평등이나 존중, 신뢰는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하나하나 떨어질 수 있는 가치들은 아니다.  협업의 기본은 신뢰와 솔직함이다.  존중은 그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평등은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계약 관계다.  협업의 단계는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것도 아니고, 트렌드도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솔직하게 서로 돕는 관계가 협업이다.

에스트리드가 요제프와의 관계에서 경영이나 사업의 이윤을 우선하여 스웨덴에서 새 인생을 찾은 요제프를 이용했던 것이라면 56년간의 관계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도 이어진 그들의 우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달콤한 말을 평생 실천한 두 사람이다. 요제프의 상상력은 단순함으로 굳어질 수도 있던 북유럽의 디자인에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부분의 북유럽 패턴이나 색감이 왜 유럽의 남부 또는 아프리카 지역의 색감과 닮아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디자인은 요제프의 영향으로, 또 그를 오히려 믿어 주던 에스트리드의 영향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머니즘과 자연주의, 기능이 담긴 아름다움 등 이들의 작품은 북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북유럽의 아름다움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  서로 다른 양극이 만나서 빈의 아름다움과 스웨덴의 기능주의의 조합이라는 스벤스크텐의 기본 철학뿐 아니라 최고의 디자인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자는 두 사람의 공통된 디자인 모티프를 세웠다.  화려한 색의 패턴은 그를 따르던 문화와 시대를 동시에 아우르는 완성이라 할 만했다.  일반인들은 이를 ’우연주의, Accidentism’ 또는 ’행복한 순간의 철학, The Happy Chances Philosophy’이라 불렀다.

1934년부터 시작된 요제프와 에스트리드의 협업은 몇 년 후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다.  1937년 파리와 1939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엑스포에서 강렬한 대비를 이룬 서로 다른 재질, 색깔, 패턴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들은 많은 호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스웨덴 모던주의 표현의 모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요제프 프랑크는 다시 한 번 망명을 해야 하는 처지를 맞았다.  미국에 망명한 뒤에도 그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유와 자라나는 나무의 상상을 통하여 여러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약 50점에 달하는 망명 생활 중의 작품들은 에스트리드의 50회 생일을 맞이한 선물로 전쟁의 포화와 대서양을 건너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아직까지 생산 중이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하루가 되기를, Beautiful everyday for all.” 스벤스크텐의 에스트리드와 요제프의 바람이었다.  환경과 삶이 판이하게 달랐던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일생 동안 존중하며 걸어온 길이다.  사람들은 스웨덴의 기능주의를 아름다움으로 키워낸 요제프 프랑크의 세계를 사랑한다.  그의 창의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북유럽 디자인의 모델을 이루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스트리드를 더 사랑한다.  그녀는 전쟁을 겪고 힘든 경험을 한 뒤 다시 인생을 시작한 요제프를 영원한 친구로 만들었다.  그녀의 평등과 존중의 마음은 그녀 개인의 꿈을 넘어 오늘날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표본을 만들었다.  그녀는 협업이 무엇인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뒤돌아서 요제프의 패턴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녀의 테이블, 그녀의 디자인을 눈에 담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오고 꿈을 꾸며 같은 길을 걸었던 것에 대한 존경이다.  이들은 오늘날 디자이너들에게 협업이란 작업을 뛰어넘어 디자이너로서 겪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UNQUOTE

 

스코노는 패션 브랜드다.  신발을 포함하여 의류와 가방을 소개하는 종합 브랜드이다.  10대와 20대는 물론이고 중년층까지의 폭넓은 소비자를 가지고 있으며, 보다 신선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내세우는 젊은 브랜드이다.  스코노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피요르드가 섞여서 만나는 빅스타드라는 시골마을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만든 한 노르웨이의 아빠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생활하는데 컨버스 스타일의 운동화가 인기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와 지역적인 이유로 몹시 비싼 가격임을 알고, 북유럽의 기능성과 디자인을 가진 신발을 스스로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스코노는 태어났고,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도 같은 종류의 신발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한국의 스코노는 노르웨이 스코노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경제적이고 좋은 품질을 목표로 했다.  한국에서의 놀라운 발전에 따라 글로벌 판매를 위한 라이센스로, 더 나아가 노르웨이와 북유럽의 브랜드까지 한국 스코노는 얻게 되었다.

스코노는 노르딕후스와의 협업을 통해 더욱 많은 북유럽 디자인과 북유럽의 기능성을 제품에 담는 작업을 원했다.  그로 인해 약 서너달 전부터 노르딕후스는 보다 높은 품질, 더 아름다운 디자인, 북유럽 삶의 이야기가 담긴 신발을 상상했다.  현재는 북유럽의 디자이너를 포함한 디자인의 협업을 시작하였고, 이 결과는 스코노의 내년 디자인부터 반영될 예정이다.

디자인의 협업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제품을 포함한 브랜드에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확대 시작하는 일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일관성”이란 큰 조건이 붙는다.  단지 한 상품의 구석에 디자인이 바뀐다고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 상품에 걸쳐 검증도 되지 않은 새로움을 내세울 수도 없다.  아주 작지만, 전방위적으로, 또 아주 큰 시도지만, 큰 변화가 아닌 것처럼 익숙하게 모든 디자인과 이미지와 회사의 기본 가치가 일관되게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같아 보이지만 수십 번이 바뀐 코카콜라나 메르세데스의 CI 디자인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진행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일들은 하나의 디자인을 던저주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디자인 팀의 사고부터, 분위기, CI, 광고, 이미지를 비롯해 나아가 직원이나 대표의 가치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다시 회사를 만드는 일에 버금가는 큰 변화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이 단계의 일들을 Terra forming, 테라포밍이라 부른다.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바꾸는 상상을 하듯이, 나는 완전히 새롭고, 기존과 차별화된 브랜드를 원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브랜드의 기본적인 역사와 앞으로 패션 브랜드를 바라보는 디자인의 혁신을 찾는데 집중했다.  2018년 봄부터, 천천히 결과가 보일 것이고, 빠르면 다른 프로젝의 결과부터 보일 수도 있다.  스코노와 노르딕후스의 협업은 감히 스벤스크텐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들의 길을 따라가도록 노력한다.  서로 솔직하고, 깊은 공감으로서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협업의 교과서를 쓸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어지는 얘기에서 더 많은 과정을 이야기할 것이다.

 

by Luke

You may also like
Skono, 스코노 이야기 (10)
Skono, 스코노 이야기 (9)
Skono, 스코노 이야기 (8)
Skono, 스코노 이야기 (7)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