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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EA의 Ingvar Kamprad, 91세로 스웨덴에서 영원히 잠들다.

Photo of Ingvar Kamrad / from ikeafoundation.org

지난 주말 20세기 북유럽 역사의 한 부분이었던 위대한 스웨덴 출신 기업가가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를 누비며 엄청난 매출을 올리던 최고 부자, 가장 작은 돈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놀라운 스웨덴 소년,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고 흉내 내며 그를 닮으려고 애쓰지만 아직도 그의 회사를 따라잡을 경쟁은 생기지 않고 있는 놀라운 경영 스타일… 그를 떠올리며 말하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북유럽 스웨덴 최고의 기업 IKEA 이케아를 세운 사람,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가 91년의 인생 여정을 평화롭게 마감했다.  그가 다시 삶을 정리하려고 돌아간 곳은 그의 고향이 있는 스웨덴의 지방도시  Småland 스몰란드 였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물건을 팔고 돈을 모으며 IKEA를 세웠던 고향 Småland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했다.  IKEA의 시작은 그의 마지막처럼 조용하고 소박했지만, IKEA는 가구와 인테리어, 심지어 주거생활의 모습과 소단위 가족, 싱글 라이프로 변해가는 세계적 변화에 가장 먼저 순응하며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전 세계에 IKEA매장은 어디에나 있을 만큼  Ingvar Kamprad의 놀라운 성공신화는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사람들은 그의 성공신화보다  IKEA를 세웠던 이념과 소비자와의 변하지 않는 신뢰를 지켜간 그의 이야기를 영원히 나누리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IKEA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 가족과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는 IKEA의 제품들이 오늘은 더욱 눈에 들어온다.  루크의 저서 <노르딕소울>의 IKEA와 Ingvar Kamprad에 대한 글을 다시 펼쳐 본다.  IKEA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을 Kamprad의 마음은 북유럽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삶 속에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오늘도 계속 이어지는 이케아의 상상”

IKEA

이케아 IKEA (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는 아구나르드 시의 엘름타르드 마을에 사는 잉바르 캄프라드의 약자다. 창업자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들로 회사 이름을 만든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케아의 문화를 모르는 나라들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이케아는 가구 회사가 아니다. 문화를 파는 기업이고, 사람들의 상식을 깬 도전을 지금도 계속하는 혁신적인 회사다. 새롭게 바뀐다는 ‘혁신’이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창업자가 생각한 낮은 가격, 새로운 판매 방식, 문화와 연계된 상점 등으로 꾸준한 신뢰를 받고 있다.

스몰란드Småland의 앨름훌트Älmhult 지역은 스웨덴 남쪽의 농촌 마을이다. 1926년에 태어난 잉바르 캄프라드는 다섯 살 때부터 이웃들에게 성냥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수량을 구매하면 더 저렴하다는 유통의 규칙을 알았고, 가격은 그대로면서도 좀 더 싸게 구입하고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깨달았다. 그는 청소년 시기이던 1943년, 이케아라는 이름으로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했다. 대상은 필기류, 카드, 소품류들이었다. 이후 가구가 이케아의 판매 품목으로 들어왔고, 카탈로그가 제작되었다. 오늘날 유럽에서 왜 이케아의 카탈로그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보는 책인지, 왜 가구 부품들을 차곡차곡 넣어 박스로 파는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상점이 없는 상태에서 주문 판매를 먼저 시작했고, 그렇기에 사진과 설명이 잘 되어 있는 카탈로그는 필수였다. 우편으로 배달을 시작하고, 먼 곳으로 상품을 보내기 위해 부품들을 잘 정리해서 팔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구매자가 직접 가구를 조립해야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남은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이용하는 사업을 원했다. 거의 모든 북유럽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스몰란드의 농부들은 농사일이 한가해지는 철이 되면 그들이 좋아하는 목공일을 시작한다. 나무를 다루는 데 익숙한 북유럽 사람들이 가구를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취미같이 여겨진다. 그들의 제품은 조립 전 포장하여 판매되었고 이케아만의 특징으로 디자인, 조립, 그리고 홍보를 택했다.

1953년 쇼룸이 세워진 지 오래지 않아 앨름훌트 지역에 이케아 매장이 처음 생겼다. 당시에 사람들은 우려했다. 도시도 아니고 작은 마을, 그것도 깊은 숲속에 위치한 매장에 누가 찾아오겠냐는 것이었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도시에 멋진 매장을 차릴 예산도 없었고, 그가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가능한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원했기에 추진될 수 있었다.

이케아의 장점은 낮은 가격과 디자인이다. 가격은 공급이 넘치거나 경쟁이 일어날 때 낮아지기 쉽다. 그러나 북유럽은 전통적으로 물자가 남아도는 곳이 아니다. 인구가 많지도 않아 유럽의 시장으로 매력도 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렇기에 절약하고 최소한의 자원만 활용하는 습관이 남아 있으며, 낮은 가격으로 접근하는 사업 방식이 신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들어가는 재료나 인건비는 동일한데, 대량 생산과 제조 공정, 운반 및 포장 공정이 바뀌며 낮아진 가격을 혁명으로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첫 번째 매장은 찾아오는 사람들로 무척 분주했다. 워낙 여행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라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찾아와 좋은 디자인의 가구를 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호평을 받았다. 이케아가 한국에 소개되기 전에는 스스로 조립을 해야 한다는 방식이 소비자들의 반감을 얻기도 했지만, 북유럽에서는 오히려 재미를 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동반하는 가족을 위해 그가 태어난 스몰란드의 이름을 딴 놀이 공간을 만들었고, 스스로 가져다 먹는 식당을 열었다. 소품과 액세서리, 커튼, 가전까지 생산하는 요즘의 이케아는 단순한 가구 판매를 넘어 인테리어와 생활 전반에 걸친 상품들을 생산하는 종합생활용품 매장 같은 느낌이다.

이케아는 세계 48개국에서 38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매년 약 5억 명의 방문자들을 맞는다. 이케아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 수많은 부품들, 협업하는 다방면의 디자이너들, 각국의 생산지, 매년 세계 나무 소비량의 1%를 소비하는 목재 상품, 각종 부품들의 공급과 거미줄 같은 물류 시스템 등은 이케아를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혁명적인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에서 이케아는 전체 이케아 그룹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카노IKANO 그룹은 이케아를 소유 관리하는 인터 이케아Inter IKEA 그룹과는 별개로 금융, 투자, 개발, 건설을 담당하는 그룹이다.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하여 많은 아파트들이 이카노의 이름으로 팔린다. 미리 설치된 가전제품 및 설비들은 이케아 가구 라인과 가전 제품, 생활 라인으로 설치되어 이케아의 갤러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잉바르가 생각한 사업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이케아는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객과의 유대를 소통의 이미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초기의 목표를 이루었고, 그것은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그 후 다른 나라로 진출하며 초기 목표에 문화 판매 전략을 덧붙였다. 고객들에게 브랜드의 생각을 전달하여 같은 문화로 이어줌으로써 친밀도를 높이려는 생각이었다.

전 세계 매장들은 가구뿐 아니라 생활 용품과 놀이 공간, 식당, 마켓, 문화 교실 등 관광객이 한번쯤 들러야 하는 장터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이어서 가전 제품, 인테리어 디자인, 주거 시설 및 설비 공급 등 사람의 생활에 밀접한 모든 것들에 관여하는 느낌이다. 서양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이케아인가 아닌가라는 기준이 존재하고, 원하는 가구나 생활 용품을 고르기 전 우선 이케아를 보고 영감을 얻으며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전문 디자이너나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렵기만 한 공간 구성에 대한 답을 이미 속 시원히 해결해 놓은 곳이 이케아이기 때문이다. 40평방미터가 되지 않는 작은 집부터 100평방미터가 넘는 큰 거실까지 이케아의 디자이너들이 북유럽의 감각을 현지에 맞게 실제로 재현해 놓은 갤러리들은 신상품과 색상의 잔치와 같다.

아직까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고객에게 유익한 것이 결국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케아의 그룹 구조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주식회사라는 구조로 회사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에 기업 공개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구두쇠라거나 탈세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그가 밝힌 주식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각과 철학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미 세계의 부호들 안에 들어가는 그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그의 철학이었다. 더 싸게 공급하고, 디자인에 신경을 쓰며, 생활에 친숙한 상품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주주들의 영향에 휘둘릴 수 있는 주식회사보다 개인회사를 고집한 것이다.

이케아는 매년 트렌드를 이끌 컬렉션을 발표한다. 수많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이미 익숙한 이케아는 제품 디자인 분야를 넘어 기능, 소재, 색상, 가능성 등의 영역으로까지 역할을 넓히고 있다. 이케아의 많은 상품들은 이미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다. 다양한 색상이나 소재를 통해 북유럽 디자인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동양이나 남미의 고유 디자인이 이케아에서 소개된다고 해도 이미 북유럽 디자이너의 눈으로 한 번 걸러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정통성과는 거리가 멀다. 고유한 창작이나 전통을 이야기하기에 이케아는 많이 부족하다. 한편으로 이케아의 본연의 목적은 누구나 쓰기 쉽고 저렴한 가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디자인을 이용한 평범한 가구다. 이제 세계 어디서나 북유럽 디자인을 접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케아의 공이 가장 클 것이다. 같은 서양 문화여도 멀게 느껴졌던 북유럽 디자인을 미국의 가정으로 가져다주었고, 북유럽 문화권의 식기와 침구들을 동양으로 이끌었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상상했던 이케아의 미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이케아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경험해 보았다면, 또 이것이 그가 상상한 계획이라면 그는 욕심쟁이였음이 틀림없다.

발췌 <노르딕소울 / 루크 지음>

 

by Ang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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