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 부를 때 나는 느껴야 한다

작성자
Luke
작성일
2020-05-17 08:34
조회
277
벌써 8년이 지난 일이다. 스톡홀름에서 노르딕후스라는 아이디어가 막 생겼을 때 일이었다. 당장 몇 달 후면 집세도 내야하고 이민 비자 걱정도 있었다. 한마디로 당최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간이었다. 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며 되묻곤 하는데, 사실 내 인생에 이런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무슨 이유로 좀 좋은 식당에 가게 되었다. 당연히 좋은 음식과 분위기에 다들 즐겨야 할 순간인데도 나는 걱정에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그 어려웠던 시기가 지나고 기적처럼 한국의 한 회사에서 일거리가 들어왔다. 내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의 일을 한 것이 20여 년 만의 일이었고, 또 하나는 이민자 500여 명 남짓하던 스톡홀름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노르딕후스라던 블로그는 회사로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한참 후 다시 찾은 그 식당에서, 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식탁보며 은제 식기의 아름다운 문양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주변의 수백 년이 넘은 벽들과 돌로 만들어진 도로의 한구석 한구석이 전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걱정과 감성의 차이였다.

시작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고 일어날 일들을 미리 생각하는 건 아주 안 좋은 습관임을 알면서도, 난 쉽게 성격을 고치지 못했다. 무한한 아이디어의 보고인 북유럽에서 눈이 확 뜨여지는 디자인들 속에서도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를 변명 삼아 얘기하자면, 유학을 하면서 완벽주의에 빠졌던 경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말 같지 않은 아이러니를 입에 달고 지냈고,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하는 모든 궁상들을 난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그러면서 매달 초가 되면 돌아오는 월세며 매 학기 학비, 생활비 등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계획하려는 그 마음을 미래를 생각한다고 둘러말했다. 감성을 느낄 순간에서도 재료가 무엇인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또 얼마나 많이 호응을 얻었는지 마치 도시 전체를 뜯어다가 팔 것 같이 생각하고 스스로의 엉뚱한 결론으로 평가를 했던 건, 내가 얼마나 지독히 이성과 경험주의자였는지, 정확하게는 얼마나 찌들어 살았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감성이 작동할 때 사람들은 이걸 보다 깊은 가치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역사며 만든 이를 생각하고, 그 이후의 것들을 아울러 생각하려 한다. 이성의 작용으로 감성을 막는 행위다. 또 여행 좀 했던 사람들은 어디 한구석의 작은 경험으로 다른 문화를 끼워 맞추려는 옹색함도 보인다. 감성은 좋은 순간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힘을 발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날씨나 가난, 질병, 또는 이와 유사한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감성이 작용하며 더욱 깊게 들어오곤 한다. 어느 순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감성은 작용한다. 이때는 여러 간섭 없이 쭉 받아들여야 한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라도 그 순간은 짧다. 아무런 영향이 없을 정도의 시간이다.

가장 이성적일 것 같은 문화에서 오히려 감성가치가 높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감정,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한가지 감정에 오히려 다른 것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보다 높은 가치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지금 세계의 상황들은 여러 감정이 겹쳐 지나가는 아주 드라마틱한 상황이다. 감성의 극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감성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 즐길 때도 즐겨야 한다. 산자와 죽은 자, 앞으로의 희망의 끈이 내 앞에 없더라도 내 걱정은 사실 내 성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