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들은 가라

작성자
Luke
작성일
2020-04-13 14:43
조회
169
이 글은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냥 몸에 배었고, 그냥저냥 살다가 잊혀질 순간들이었음에도 다행히 느낄수 있었던 이야기다. 학이란 동물에 관심이 있는가. 고고해 보이고, 깨끗하고, 곧은 깃털이며, 모습이 선비를 닮았다는 그 동물이다. 대표적 철새로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 어디쯤을 오가며 사는 동물이다. 두루미과의 동물이고, 단정학이란 이름이 우리가 좋아하는 그 학의 정식 이름이다. 동양에서 (이야기의 지리적 중심은 주로 북동 아시아의 어딘가쯤이 되겠다) 얼마나 학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군계일학이란 사자성어를 들어 학을 높이고, 할머니들의 이야기에는 학이 물어다 준 무수한 것들이 등장한다. 그뿐 아니라 황순원 선생의 학이란 글을 통해서,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에서 마치 학은 한없이 높은 나의 대변자 또는 이상적인 사람 등으로도 묘사된다. 한마디로 먼 곳서 찾아오는 반가움과 그 신비한 생김새가 어루러저 만들어진 감성적 가치로서의 학이, 실제 동물로서의 학보다 훨씬 값있게 여겨졌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이 학에 대해 만들어진 상상은 고고하고, 청렴하며, 세상을 다 어우르는 깊은 삶의 가치로서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금부터의 말하려는 모습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학이라는 동물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그 학이 가진 것으로 여기고 지금까지 살았던 그 삶에 대한 비판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들의 영웅을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는 사고나 그렇기에 그냥 눈감아주는 걸 아량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주변의 고고한척하는 선비들의 삶을 싸잡아 비판하는 걸 나는 학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나는 또 이 학같은 선비들의 행동을 학 질이라고도 부른다. 이 학들의 특성은 스스로를 고고하다고 믿고,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는 자기애를 가지고 있으며, 남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과 고학력, 고지능, 전문적 직업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이룬 결과를 남들 모두 존경한다고 착각하며, 나쁜 행동을 스스로 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대신해주도록 이끌고, 계략과 욕심이 많고 종교나 철학 같은 사고에 있어서도 자신은 특별하다는 의식 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대한 반대 사고로 솔직함, 평등 의식, 자본주의 마인드 등과 나를 불완전한 인간으로 여기며 내 욕심에도 그 이유가 있는 사람을 꼽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학 질이 없는 걸 보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 학의 씨앗이 나이를 먹고 사회의 주역이 돼가며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예상 스토리다. A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임기 내 지역에만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 다른 당과의 협력을 이끌었으며, 깨끗한 정치의 이미지를 가지고 기업들에게 지역 발전 및 지역민과의 유대강화를 핑계로 막대한 지원금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A 의원의 계획이었지만, 막상 나서는 사람은 약역 보좌관 B 씨였다. 다음 선거가 다가오자, 지역민과의 이벤트를 자주 열어 홍보에 활용하고, 민심이 부른다는 핑계로 출마를 강행한다. 어설프지만 대략 이런 스토리다. 혹자들은 이 행동을 이기심이나 욕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욕심과 이것을 감추기 위한 비열함을 숨기는 것에 더하여, 마치 자신은 예외적인 특권을 받은 것 같이 착각하는 점을 추가하고 싶다. 그러면서 항상 눈치를 살피고, 책임을 주위에 미루며, 자신의 비열한 행동을 지위나 권위에 견주어 당연한 것으로 변질시킨다는 점도 있다.

또 지방대 C 교수는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돌대가리라고 항상 생각한다. 유학파에 실력도 있었던 C 교수는 학교와 주변에서 철저하게 두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낙후된 상황을 극복하고, 같이 무언가를 이루자는 C 교수의 행보는 사실 나만을 홍보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 마인드를 숨기고 있다. 혹시 이런 걸 가족 중에 누군가 안다고 해도, 세상살이가 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밖과 안이 다른 사람들, "밖에 나가면 참 사람들에게 잘해요"라고 시작하는 아내들의 푸념은 단순한 푸념뿐 아니라 세상살이는 다 그럴 것이라는 착각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어중간한 넘기기를 난 이해하지 못한다. 이 케이스도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착각하고 마치 요즘 유행하는 내로남불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넓게 보면 동서양의 문화 차이라고도 여겨질 수 있지만, 나는 체면문화와 수직적 사회구조 속에서 나온 불행으로 이해하고 있다. 과거 8-90년대의 일본에서는 세계를 리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는 서양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상황이었어서 오히려 일본과의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려고 했었다. 한 줄로 설명하듯 단순한 서양의 대화와는 달리 실타래로 엮여 어디서 나와야 되는지 모르는 일본의 대화 문화에서 위에서 얘기하는 학 질의 특성들이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부인 체면치레라는 면에서는 한국에서의 학 질과 일정 부분 공감하는 면도 없지 않으나, 자신의 가족과 후세 등 훨씬 광범위한 체면치레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나는 학 질에 체면치레를 포함시켰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학들은 행동력이 약하다. 책임이 없고, 네거티브에 큰 상처를 입기 싫기 때문이다. 학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는 다 차려놓은 밥상이다. 여기에 사양의 사양을 거듭하는 체면치레를 거치면 완벽한 밥상이 된다. 학들은 말이 많고, 남을 헐뜯는데 익숙하지만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의중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흘리는 정보를 좋아한다. 침소봉대에 내로남불, 이기주의와 선민의식, 무책임에 비열하고 파당을 만드는데도 능하다. 그러면서 자신은 깨끗하고 하얀 학이고 싶은 것이다. 고고하고 독야청청하지 않은가. 이젠 정말 학들은 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으면 그 방법을 찾고, 당당하게 앞으로 가는 까마귀였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