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년의 죽음

작성자
Luke
작성일
2020-03-19 10:38
조회
101
나는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내 부모의 무언가가 잘못된 걸 분명히 알았음에도 좋은 말로 둘러서 얘기했고, 친구들이 위험한 투자를 한걸 알았음에도 그 친구가 뭐 생각이 있었겠지 하며 좋게 이해했다. 클라이언트가, 정부 어느 부처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느꼈음에도 비즈니스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어넘겼다. 더 나아가 정의가 과연 있는가라며 남을 원망하고 하늘에 대고 소리를 치곤했다. 한때 정의를 외치던 호기는 나이를 먹어가며 타협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어리거나 나이 든 사람들의 이유 없는 고통, 그리고 말 못 하는 동물의 아픔에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구에서 고3 학생이 먼 길을 떠났다. 나는 스스로를 죽인 자살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17세 소년은 무시무시한 기계들이 윙윙거리는 에크모 속에서 눈을 감았다. "엄마, 나 아파"가 전날 남긴 그 소년의 마지막 말이었다. 머리 쪽의 대동맥과 다리의 혈관들을 뚫어 혈액을 강제로 순환시키는 에크모는 내 삶을 이미 기계의 손에 맡긴 것 같은 상황이었다. 폐로 확산된 바이러스의 경과를 지켜보려고 잠시 삶을 연장해준 그 이틀이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그 소년이 중국발 코로나의 확진자냐 아니냐, 또는 그 소년이 지난 몇 주를 집에 머물렀고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비를 맞으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느냐 아니면, 정부의 발표대로 30분간 산책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죽음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17세 소년은 아무런 소리도, 얼굴도 마지막 떠나는 그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길 빈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정말 존재하길 빈다. 다른 종교에서 바라는 높은 곳에 올랐기도 바란다.

참, 어이없는 삶이 아니었는가. 그 이유가 재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아프게 만든 그 소중한 삶들의 이야기를 보면, 어느 누가 더 억울했는지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공통적으로 모든 건 인재였다. 그 많은 죽음들의 원인이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판단한다.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 그 순간 그 판단들을 한 책임자들을 잠시 미치게 만든 원인이 있었는가.

얼마나 더 아픈 이야기를 들어야 끝낼 수 있을까. 눈물 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