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대한민국!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2-25 11:49
조회
322
오늘은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예수 탄생이라는 그 의미를 떠나 하나의 문화로 세계에 자리 잡았다. 기독교가 존재하는 문화에서는 좀 더 깊숙이 그리고 일찍 알려졌을 뿐이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한국과 필리핀 정도만 휴일로 지정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의 성탄절은 당연히 미 군정이 들어오며 많이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도 일어난 일이었지만, 불교와 다양한 종교문화인 탓에 일본에는 성탄절이 문화로 자리 잡지 못했다.

성탄절은 그 의미보다도 그냥 들뜨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90년대가 즐거웠고, 그보다 80년대가 더, 그보다 70년대가 더 북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거리마다 캐럴이 들리고, 작고 큼에 상관없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각 집에 장식됐었다. 심야에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는 그것 때문이라도 사람들은 그냥 거리에서 걷고, 수다를 떨었다. 음주사고며 각종 사소한 사건 사고들도 많았지만, 일 년에 한 번인데 하며 사회적 관용으로 넘어가던 시대였다. 무례하고 비종교적이며 타락한 성탄절이었을지라도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어제 이브에는 우리 가족이 모두 시내로 나갔다. 동대문과 종로의 거리에서, 광장시장의 잘 가던 만둣집과 육회 집에서 가족 모두 성탄절을 축하했다. 평소와 달리 꽤 많은 외국인이 있었지만 성탄절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났다. 새로 단장을 시작한 옛 세운 상가의 청계천, 을지로를 지나 명동에 갔을 땐 그때까지의 한산한 거리를 보상받듯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외국인들 같았다. 명동의 끝자락 대연각 호텔을 지나, 남대문시장에도 관광객을 제외하면 성탄절을 즐기러 온 사람은 너무 적었다. 돌아오는 길의 경리단길에도, 그 북적이는 신논현역 길에도, 삼성동에도, 보이는 음식점에 사람은 한두 테이블이 많은 편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가게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때 시간이 밤 9시도 안된 걸 생각하면 오늘이 성탄절인가 싶을 정도로, 평소보다도 더 한산한 모습이었다. 경기가 나빠서, 그래서 사람들이 여유가 없어서 북적거리지 않는다기에는 돈의 문제도 아닐 수 있었다. 오늘 우리 가족이 단돈 몇만 원으로 즐긴 서너 가지의 음식과 작은 선물값을 생각하면 그랬다. 오히려 성탄절이기에 더 조용히 보낸다가 맞을 수도 있었다.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히려 안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 일본에 가지 않는 이유는 보여주지 못해서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보여줄 만큼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 이유를, 성탄절같이 오랜 문화를 즐기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다. 희망이 없어서가 아닐까 한다. 경기도 문제고, 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깜깜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희망 때문인데 말이다.

몇 년만 이 같은 시간이 흐르면, 대한민국은 성탄절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시내를 걷다가 본 한두 개의 트리, 짧은 캐럴 한두 마디로는 국가의 공휴일로 유지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작은 교회들도 트리 장식을 하지 않았다. 추석 차례상에 놓인 음식 사진들이 생각난다. 의미는 없고, 형식만 남은, 그마저도 하기 싫어 비비꼬는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흥청이며 들뜬 성탄절의 첫 단추가 잘못 꾀진 걸 이제 알 수 있었다. 보기 힘든 트리지만 그 트리마다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그 사진을 주위 가까운 사람들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의미인 성탄의 축복은 사랑의 발현이란 걸 느꼈으면 좋겠다.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친구, 이웃에게 따뜻한 웃음 한 조각을 해주는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다 될 것 같던 모든 일들이, 이제 다시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음을 느끼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쉽고 안타까운 성탄절인 것 같다. 희망을 기도한다. 대한민국에 희망이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