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2-24 11:08
조회
313
어제 먼 곳의 한 친구가 생을 마쳤다는 사진들을 받았다. 내가 아직까지도 미국의 어느 곳에 살았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던 친구다. 이르다면 이른 나이고 다른 문화에선 이해가 되는 나이기도 하지만, 투병으로 생을 마친 걸 보면 아쉬운 느낌이 든다. 아주 가끔씩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나의 주변에는 죽음과는 아직 동떨어져 있다고 위안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비교적 인정하는 편이다. 굳이 신을 말하지 않아도 인간의 존재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노출되었다고 말할 만큼 나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삶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헤어짐은 곧 다른 만남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만남은 종교적으로 보면, 천국이나 극락, 영생이 될 것이고, 자연의 섭리에서 보면 회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무슨 병이라도 걸렸을까 봐 병원의 검진을 싫어하거나, 나쁜 성적을 보기 싫어 성적표를 부인하는 심리와도 같다. 그래서 죽음이란 헤어짐은 언제나 마음 아프고 통탄할 만한 일로 받아들인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는 증발을 경험하면 얼마나 허무할까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포함하여,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등을 대할 때 영원하지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 매 순간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을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식과 매일 헤어짐을 연습한다. 물론 죽음에 대한 것에 앞서 언젠가 나와 내가 만든 이 가정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나는 헤어짐이라고 말한다. 둥지에서 때가 되면 새끼를 밀어내는 부모 새가 어찌 보면 사람들보다 더 깔끔한 삶을 산다고도 생각한다. 아직까지 어리게만 보이는 자식들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뭐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애쓰는 헛짓들을 보면서, 수없는 시간과 재산의 낭비를 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해서도 아름다울 수 있겠다. 자신의 상황을 웃음으로까지 표현하는 그 여유는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어떠한 만남도 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죽음도 그 시간의 길이가 다를 뿐 같은 원리다. 내가 쓴 조문엔 잠시 먼저 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썼다. 사실이라고 믿으니까 그럴 수 있었다.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을 겪은 사람들은 너무 많다. 잠시 가슴이 아프다가도 언제 그랬느냐고 잊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 연장이 죽음이라면, 울고불고 땅을 칠 이유가 없다. 그와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추억에 쌓이고, 그가 해준 말과 사랑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진심으로 나의 마지막 사랑을 전하는 일 외에 남은 사람이 할 일은 없다. 이것이 존엄한 인간이 해야 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