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보이 스카웃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2-15 11:23
조회
340
내겐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이며 김이라는 성씨를 쓰는 친구다. 이 친구와 처음 만난 건 같은 반에서 였지만 서로 친해진 건 보이 스카웃 활동을 하면서다. 지금은 조금 소원해진 것 같은, 본부의 리더들의 구설수에 휘말려 위축된 것 같이 보이는 보이 스카웃은 사실 무척 오래되고 세계적인 단체다. 1910년 미국의 텍사스주 얼빙시에서 탄생한 보이 스카웃은 현재에도 활동하는 단원이 200만 명이 넘고, 지금까지의 참가자는 1억 명이 넘는 단체다. 보이 스카웃의 목적은 간단하다. 소년 소녀들의 자발적 참여로 자립심을 키우고 생존에 꼭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사회적 봉사도 빠지지 않는다. 이 단체는 1922년을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퍼져 세계 각지에 지부를 두고 그 나라에 맞는 활동과 운영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준비, Prepared"라는 구호를 잊지 않는다.

탄생지 미국에 맞게 보이 스카웃의 활동 중 하나는 생존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는 것이다. 캠핑, 스카우팅, 낚시, 기계 운용에서부터 극한의 상황 대처, 독도법, 식량 구하기 같은 군대의 특수한 상황도 모방하여 습득한다. 물론 한국에서의 경험은 이보다 훨씬 제한적이었으나 내 친구는 보이 스카웃의 준비 정신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단체의 매뉴얼도 잘 없던 시절, 오래된 군사 매뉴얼과 낡아빠진 책에서 오려낸 그림, 도구 등을 가지고 다니고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는 내 친구의 특기였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일화는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서로 모으는 중에 귀찮다는 이유로 캠프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으던 친구들과 달리, 깊은 산속에 들어가 바짝 마르고 커다란 나무를 한 짐 해오던 일이다. 나무꾼이라고 친구들이 놀리는 와중에도 왜 오래된 나뭇가지가 좋으며, 화력이 어떻고, 우리의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남들 아랑곳 않고 떠들던 친구였다. 그때에는 특이하고 이상하게 보였지만 지날수록 혼자만의 소신과 보이 스카웃의 정신을 홀로 실천하고 있었다고 느껴진다. 오래 몸담았던 기술직 일을 은퇴하고,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 나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눈비 오는 상황을 적지 않은 나이에 견딜 수 있을까 걱정 했었다. 그렇게 다시 새 인생을 찾은 친구는, 다시 모든 상황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의 오래된 차 속의 여러 가지 장비들을 다시 보며, 또 그를 만날 때마다 뭐 하나씩 새로운 가젯 (작고 신기한 장치나 물건들)을 들고 나오는 걸 보며, 아직까지 그는 보이 스카웃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한국을 떠났다가 돌아온 20여 년의 세월 중에도 그는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의 SNS에 올라온 헌혈 사진을 보았다. 70여 회에 가까운 헌혈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돼서 시작했어도 매년 2회가 넘는 헌혈이다. 작지만 강한 울림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게 사회와 조국을 위한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작은 소시민. 나는 이 작은 소시민의 위대함과 이들이 오늘의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현재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과 민족적 희생자들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했던 그 역사를 얼마나 우리 또한 강요받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로 시작하는 애국 선언을 믿지 않는다. 내 주제가 그렇게 큰 뜻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내 친구같이 작지만, 애국과 사회를 들먹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평판에 신경도 안 쓰는 이런 국민들이 무심코 행하는 이런 실천들이 현재 얼마나 한국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알리고 싶다. 나는 그를 한국의 마지막 보이 스카웃이라 부른다.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