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명절 추수감사절에 생각하는 그들의 정신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1-28 13:51
조회
306
현재 한국 시간으로는 오늘을 맞았지만 미국은 아직 어제인 날자다. 그래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하룻밤을 더 지내야 한다. 내가 여러 곳에 살면서 가장 뜻깊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 문화의 명절이 그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오늘같이 추수감사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루시아 데이나, Mid Summer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중 가장 나를 감동시킨 명절은 스웨덴의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한 날과 미국의 추수 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을 처음 한글로 번역한 사람에게 난 성급함을 꾸짖고 싶다. Thanksgiving은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나눔을 감사하는 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눌 수 있게 된 상황에 감사하는 날이다. 신대륙에 도착한 메이플라워의 35명가량은 처음 미국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 당시 영국의 각 선박 회사와 무역 회사와의 계약으로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제임스타운은 그중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 식민지가 건설된 곳이었고, 보스턴과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미국의 상황은 정착지를 찾기에 많이 안 좋았다. 영국의 플리머스로 돌아갔다가 다시 도착한 땅은 보스턴 인근의 버려진 인디언들의 땅이었고, 플리머스라 이름 지었다. 지도를 찾아보면 천혜의 경치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지만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그야말로 버려진 땅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은 겨울을 나면서 거의 반수가 목숨을 잃었고, 본국으로부터의 보급선도 연락이 끊겼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듬해 봄이 되면서 주위 인디언들로부터 옥수수 농작을 배우고, 그해 가을 본국으로부터 보급과 새로운 이민자가 도착하면서 새 활기를 찾았다. 1621년 가을이었다. 다행히 옥수수 농사도 그럭저럭 잘 되었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여 마을 교회와 마을 회관을 건설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메이플라워호의 정신을 기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나눔을 시작한 것이 3일간의 감사 파티였다. 칠면조 몇 마리와 옥수수는 빼놓을 수 없었고, 그들을 도와준 주위 인디언 91명도 초대했다.

추수감사절은 서로 감사를 나누는 날이다. 나눔이란 말이 더 가져서, 풍족하기에 준다는 의미보다 내가 조그만 것을 줄 수 있다는 그 상황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위의 뉴스는 온통 스스로 또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야기가 많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50대의 가장이 사고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는 작은 나눔이 왜 한국에서 이렇게 힘든가, 또는 스스로의 상황에 감사할만한 나라가 아닌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비극적 운명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들 중 일지라도 400년 전 플리머스 정착지의 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집에 살아야 하고, 나의 자녀들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며, 옷은 뭐, 먹는 것은 뭐 같이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한 생활 프로그램의 오류를 본다. 앞을 보고 살라는 말처럼 누구나 더 멀리, 더 높게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프로젝 동료가 생각난다. 너무 선명한 생활관과 할 것과 안 할 것이 뚜렷한 그에게, 난 한때 떨어져 가는 생활비를 보며, 한두 달 후를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학원이며, 집의 페인트 색깔과 상관없이, 질 낮은 버터와 양 많은 먹을거리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더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다른 일이 생긴 그때, 사람은 다 살더라는 걸 경험했다고 말했다. 어떠한 상황에도 사람은 산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자신의 기준이 너무 높게 있는 것이다.

삶의 기준은 스스로, 항상 바뀐다. 그래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을 소신이 있다거나, 허세끼가 있다고 한다. 조금 멀리 떨어져 생각하면, 우리들이 그렇게 추앙하는 집과 자동차, 자녀의 학교, 옷과 문화생활 등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를 겨우 일제 혼다로 바꾸어야 한다고 자살한 사람, 자산 20억을 잃고 10억만 남았다고 비관하는 사람들, 자녀가 지방대에 갔다고, 음악 콩쿨에 떨어졌다고 하늘이 무너진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약하지만 학원을 하나 더 보내기 위해, 그냥 부자 동네에 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흔하다.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많이 배워도, 너무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보인다. 아직 엄마의 젖도 떼지 못할 것 같은 고위 공무원, 배우자에게 일일이 검사받는 사업가, 부모 덕에 유학 한번 갔다 온 것으로 끝장을 보려는 교수들도 무척 많다. 그들의 기준은 자신이고 그 이상 올라가는 사람은 뒤가 구린 사람, 그 이하면 바보라고 부른다. 이렇게 서로의 기준은 모두 다르고 무섭다. 정말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나에 맞는 삶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옆집에서 그러더라고, 친구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내 삶은 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위험한 총기 사고가 나고, 아무리 엄청난 자연재해에,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있는 미국이지만 그들이 나눔의 감사를 계속하는 사회로 지속되는 한, 그래서 사람의 기준이 최소한 나누어 줄 수 있는 삶에서 시작되는 한 미국은 위대함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Happy Thanksg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