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1-23 14:05
조회
223
한두 주 전부터 노르딕후스 웹이 삐걱거린다. 노르딕후스의 프렌즈 한 사람이 웹의 관리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그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일의 시작은 이렇다. 보통 블로그에서 글을 쓰고 맞춤법을 체크한 다음 그것을 노르딕후스로 카피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스팸이라는 글자가 뜨면서 붙여넣기가 안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글쓰기 플러그 인인 kboard를 업데이트했는데, 이것은 그 프렌즈가 반드시 자신의 동의를 구하라고 했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노르딕후스의 포맷에 맞게 kboard의 코드를 수정해서 우리의 것에 딱 맞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업데이트는 모든 것을 디폴트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번의 업데이트는 fika 카테고리의 댓글 쓰기와 좌우 폭이 같이 연동되었는지 두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너무 최신이라서 버그 수정판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그와 나는 그냥 해결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편리를 넘어서 이젠 사람들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웹 관련 장치들은 아무리 내가 잘 관리한다고 해도 의도치 않은 난감함을 만든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경솔하게 업데이트를 안 했더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었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남 같지 않다. 나는 늦게 자녀를 가졌지만 이른 친구들은 수험생 자녀의 시기를 지났고 둘째나 셋째의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들 중에 자신이 원한 대학, 원한 과에 입학을 확신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게 뭘 할 것인지, 또 어느 학교를 갈 것인지라고 묻는 것조차 트렌드가 아니라는 요즘이다. 또 얼마나 여유가 없는지, 뭐가 하고 싶다거나 어떤 직업을 목표로 공부를 했다는 소리는 꿈에나 나오는 소리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것은 수험생뿐 아니라 대학생이나 취업 희망자들도 마찬가지여서 그야말로 묻거나 따지지도 않는 침묵이 미덕인 것 같다.

나는 학원을 믿지 않는다. 전반적인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우수한 학원을 다녀도 근본적인 인성까지 바꿔줄 수 없다는 이유이고, 오히려 학원의 수업에 친숙하면 친숙할수록 더 시야가 좁아진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하는 일을 막으면 막을수록 성적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수학 과목을 잘 하는 방법은 문제를 많이 풀고 그 형식을 외우는 것이다. 대부분이 수학은 이해를 해야 하고 역사나 지리 같은 과목은 외우는 과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게는 반대다. 수학은 풀이 과정이 복잡할수록, 꼬인 문제가 나올수록 외워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역사는 그 당시의 상황이나 사건 전개를 드라마를 보듯이 이해하면 시간 전개 순으로 상황이 이해된다는 생각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수학은 누구나 힘들어하는 과목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도, 중국, 한국 학생들이다. 가끔 낀 유대계 학생들을 포함해서. 그들이 다니는 학원은 구구단을 20단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포스터만 한 종이에 빼곡한 수학 문제들을 매일 풀어야 한다. 같은 유형의 문제들을 수십 번 풀면서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이 같은 학원 집중의 학습은 잠깐 성적을 올려주는데 크게 기인한다. 그러나 나는 공부의 목적을 생각하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현재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한다. 마치 20대를 위해 10대의 시기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이고, 은퇴 후를 위해 청춘의 시기가 흘러갈 수도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래서 학원에 다닐수록 나와 나의 미래 같은 상상은 여유로운 공상으로 치부되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모나 사회의 누군가가 원하는 직업들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꿈이 되었고, 내 능력이나 적성에 상관없이 안정과 부를 추구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배워왔다. 마치 내 목표에 가까워지는 만큼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이유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가야 하는지, 직업은 왜 가져야 하고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이 세상 직업의 70% 정도는 대학의 학위가 필요 없는 일이며, 대학의 학위가 필요한 일과의 소득 격차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산 다른 여러 문화들은 이미 이런 현상이 수십 년 전부터 일어났으며 다시 공부를 한다는 나이 든 학생들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사회들이 많다. 내가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부모님, 친척, 아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 많은 직업들을 알아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싶다. 한 나라에 그 공부가 없다면, 다른 나라로 다른 문화에서도 찾아보고 싶다. 이 공부가 한국에 막 시작한 직업 체험 교육이다. 북유럽 대부분의 가정과 학교에서 가장 염두에 두는 직업 교육과 개인 창의성 교육이다. 요즘 말도 많은 그 우수하다는 S.K.Y. 대학을 보며, 또 지방대에 갔다고 반수를 한다는 수험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학원에서도 배운 적 없는 인생의 첫걸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늦게나마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다시 시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