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책임감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11-21 08:28
조회
227
내로남불이란 무국적어를 누구나 아는 사회가 되었다. 삶에서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나도 덩달아 같은 처지에 처했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얼듯 생각나는 IMF 시절,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세계 경제 불황, 불공평한 소득 배분 시대 등이다. 여기에 고대로부터 나온 부모들의 변명은 친구를 잘못 만나서, 결혼을 잘 못해서, 또 자식들의 입장에선 부모를 잘못 만나서, 하필 이처럼 힘든 한국에서 태어나서 등도 빠지지 않는다.

사업하다 망한 사람 얘길 들어보자, 또 연애나 결혼에 쓴맛을 본 사람, 큰 사기를 당한 사람의 얘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탓, 사회탓, 운이 없었다고 탓을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으련만 더 깊이 알다 보면, 무리하게 욕심을 내서 확장이나 투자를 했으며, 사람 관계를 장사하듯 거래하고,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말리는 사람 말을 뒤뜸으로도 안 들은 과거가 있었다. 이중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반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10%? 많이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생각한 이유는 그렇게 자신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운이 없었다고 여길 만한 일을 애초에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스스로의 책임감보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크게 오판한 경우에 실수들이 나온다.

삶의 실수는 잘못이 아니라 필수다. 누가 살아본 것도 아니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혹시 삶에 스승이 있었다면, 또 그 사람이 핑계꺼리의 하나일 뿐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실수와 큰 잘못의 차이는 되돌릴 수 있는가의 차이다. 큰돈은 쉽게 벌지 못하고, 친구들과는 사과를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보는 되돌릴 수 있는 실수는, 자신이 정당하게 생각하는 책임감이 있을 때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되돌린다는 말은 자신이 상처를 받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자존감은 나를 믿고 스스로의 생각을 결정한다는 말이지만, 나만 스스로 높인다는 오해의 단어다. 책임감은 상황에 스스로 반성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만, 다 물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경영인은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공무원은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 누구나 좋은 시기가 있다. 별 한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큰돈이 벌리거나, 인기가 생긴다. 남들이 인정하고, 승진이나 꼭 필요한 인물로 추대되기도 한다. 누구 때문인가? 대부분 나 자신, 그리고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이제야 빛을 본다고 오해한다. 그래서 오만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도 수없이 보는 연예계의 사람들과 증권이나 투자에 목을 맨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사람의 능력은 비슷하다. 이것이 사실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고, 뛰어난 예술가 일수가 없다. 비슷하니까. 그럼 오늘의 내 잘 나가는 모습은 무엇인가. 상황이다. 그때의 상황, 시장과 트렌드, 사람들의 요구, 그리고 우연히 이것들이 일치해서 눈에 띄었을 뿐이다. 이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나를 알아봐 준 다른 사람은 나에게 충성하거나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그래서 물거품이란 말을 쓴다.

반대로 내가 어려운 경우, 내가 만일 큰 잘못으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면, 사기나 절도 같은 범죄의 결과나 천재지변으로 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 있다. 비록 여러 사람이 얽히고 설켜서 나온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살 수밖에 없는 내 책임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흔히 듣는 사람의 배신이나 사기의 경우도 내가 그만큼 힘든 일을 나누어 지려고 꾀를 부리거나 상식 밖의 일들도 일어날 수 있다고 내 스스로 오만하게 군 결과다. 청소년 시기까지의 자녀 문제도 내 탓이다. 내 배우자의 문제나 가족의 문제 대부분도 내 탓이다. 넓게, 사회나 국가의 문제들도 나 같은 사람이 스스로 그것도 오래 만든 탓이다. 이렇게 책임은 무서운 말이다. 그러면서 나를 이끄는데 이만큼 좋은 말이 또 없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한다. 결과가 좋으면 남의 도움이고, 나쁘면 내탓이란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 내불남로의 상황이다. 도덕적인가. 너무 이상적이고 옛날 할아버지들이나 떠벌리는 소리로 들리는가. 불교나 고서에나 나올 것 같은 케케묵은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 나도 그렇게 들렸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지만, 좋은 결과를 유지하는 내 주위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것이었다. 좋고 나쁨, 행복과 불행은 한꺼번에 오며, 오더라도 여러 번 반복된다는 경험을 난 믿는다. 누구나 겪는 실수의 과정이 정말 실수로 끝나는 사람과 항상 뭐만 하면 돌부리에라도 걸린 듯 앞으로 나가질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 이런 게 두려워 가만히 웅크린 대부분의 사람들도 있다. 이 차이는 내 자존감을 높이지만, 타인의 공으로 돌리고, 내 책임으로 일을 처리하는 마음가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다.

좋은 건 남의 공, 나쁜 건 내 탓을 하기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사냐고 핀잔받는 시대다. 이런 사고는 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여유를 갖는 게 힘들지만, 특히 사고의 여유를 갖는 게 힘들지만 더욱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