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봤던 그 매미가 아니네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08-11 09:57
조회
59
모처럼 시원한 이른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공원 나무 숲속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한참을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매미 소리가 고속도로 터널 앞에 홈 파진 아스팔트 소리 같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띠리리~" 또는 "따르르~릉"같이 매미가 울면 또 몇 년 후 유전 기술로 매미 울음소리를 트렌드에 맞게 바꾸자고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절정을 지나가는 한 여름에 정취를 더 북돋는 매미는 초가을로 접어들며 다시 소리를 접는다. 길어야 한 달, 그 시끄러운 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매미는 그 한 달을 위해 몇 년간 땅속에서 잠을 잔다. 작년에 내가 들었던 그 매미는 고사하고, 어쩌면 전에 들었던 그 소리도 다신 못 들을 소리다. 다른가? 다른 매미가 울음소리를 낸다고 알아낼 수 있는가?

같이 일했던 협력회사 직원이 삶을 등졌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그 회사엔 큰 충격이 있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멋있는 감성에 다니는 회사보다 노르딕후스가 좋다며 같이 커피를 마시던 친구였다. 아직 가기에는 너무 이른 삶, 사랑하는 가족과 갓 태어난 아기까지, 하늘을 보며 신께 다시 원망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미는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다. 그러나 소중하고, 작지만 충분히 역할이 있는 존재다. 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간은 존엄하고 존재 자체로 위대한, 그러나 그들 또한 자연의 일부다. 내가 살고 떠나면서 느끼는 충분한 의미는 내 안과 작은 주위에 그친다. 또 간혹은 더 큰 의미를 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이미 없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작고 아주 보잘것없이 보여도, 내가 느끼는 의미는 세상 전부만큼 크다.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마치 신들의 흉내를 내게도 된다. 짧디짧은 삶에서 더 가지고, 더 뜯어고치고, 더 힘을 쓰는 게 삶인 줄 알다가 사라진다. 더 추한 것은 그 한 줌이 사라지기 전에도 자신이 무엇인지, 왜 살았는지 그 작은 의미조차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그렇게 믿다가 "인생 다 부질없다"라는 뭐 큰 깨달음인 양 쓰레기 같은 말을 쏟아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지,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해야 한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아니다. 운명론이나 윤회론은 더더욱 아니다. 포용이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포용, 그로 인한 삶이 목적이다. 어차피 짧은 삶 내 하다가 가도 좋다. 본성에 가깝다. 그래도 아쉬움에 뭐 하나라도 더 알고, 바꾸고, 더 주고 가고 싶은 삶도 있다. 훌륭하지만 다른 매미가 할 수도 있다. 사명감은 갖지 마라. 내 하고픈 삶은 그날그날 후회 없는 삶이다. 그러면서 먼저 간 친구들이 아쉽지 않은 그런 충실한 삶이다.

죽음은 삶의 아주 친한 친구다. 그동안의 힘든 일로 얻은 보상이 더욱 값있듯이 불행은 행복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끝에 떳떳할 줄 알아야 현재 삶도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In memory of 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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