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것들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07-22 10:52
조회
72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내장 요리다. 육류를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씩 별미로 내장에 흠뻑 빠지곤 한다. 스웨덴에서 이사를 와서 동네에 한 순댓국집을 발견했다. 그동안 신선한 선지며 내장을 구해서 먹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20여 년 가까운 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맵고 짠맛 없이 순한 맛을 바탕으로 하는 그런 맛이었다. 들은 바로 같은 일을 얼마나 하였는지, 어느 고장의 입맛이 바탕인지, 또 얼마나 숨은 맛집이었는지, 하나하나 그 순댓국집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길 수년, 금년 겨울 출근길에 팔을 다쳐 깁스를 한 주인 할머니를 만났다. 그동안 노인들이 뼈를 다치면 받는 고통들을 알기에, 절대 팔을 쓰시지 말기를 당부했다. 잘 낫지 않는다는 지난 안부들이 열댓 번 지날 무렵, 일을 접고 은퇴한다는 인사를 받았다. 인공관절로 여러 번의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막상 자신의 수술보다 일을 접는다는 게 더 섭섭하다고 다시 꼭 보고 싶다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같은 자리에서 다시 순댓국을 먹을 행운이 온다고 하여도, 평생을 바쳐 순댓국을 끓이시던 그 할머니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헤어진 것들이 어디 하나뿐인가 싶다. 어릴 적 고향집에서 키우던 멍멍이들, 야옹이들, 새들, 그리고 마치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장난감, 수집품들, 그리고 같이 가지고 놀던 그 친구들, 또 유명을 달리한 여러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 친척들... 섭섭함이 반복되어 마음의 상처 딱지로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을 무렵엔 그 헤어짐의 길에 나도 서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탄생부터 유일하고 존엄함과 동시에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지 모른다. "나의"로 시작하는 사고에 삶과 행복의 목적이면서 동시에 이유이기도 한 유일한 존재인 나마저도 자연의 아주 작은 한 부분, 긴 인간의 역사를 잇는 선중 아주 작은 한 점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염세론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깨닫고 어떻게 그 의미를 주는 자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마치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가 이젠 추억으로 다가오듯이, 신이 인간에게 준 "삶에 대한 망각"을 다시 생각할수록 자신의 삶이 더 편안해지는 모순이 나타난다.

헤어져서 잊히는 게 아쉬운 건 당연하다. 그걸 붙잡고 마치 다 같이 갈수 있다는 건 욕심이거나 망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토록 평생을 바쳐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면 그것만큼 처참한 것도 없다. 일찍 알아내거나 아예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다시 만나고, 다른 만남이 이어지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기고,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이런 인간의 삶에, 자신이 아쉬움에 미련을 둘수록 더욱 아쉬움만 남는다. 어릴 적 들었던 털어버리고 잊으라는 그 말 한마디가 진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것이 가장 인간적인 말이었던 것 같다.

비슷한 글이 생각나서 첨부한다.

죽음을 추모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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