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 불행은 필요하다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05-07 10:51
조회
74
역설적인 생각이 하나 든다. 아마도 이 대답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에게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였을 것이다. 왜 절대적인 완전함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다시 보기를 엄청한 영화가 하나 있다. 판타지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픽적인 요소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보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Ancient One 역을 맡은 Tilda Swinton은 마지막 대사에서 죽음에 관한 말을 했다. "Death is what gives life meaning." 죽음은 살아있음에 의미를 준다. 살짝 의역하면, 죽음이 있기에 삶이 의미가 있다는 말이 된다. 현실에선 물론 이 대사는 작가의 주관적 생각이다. 절대로 진리가 아니며 누구나 떠들 수 있는 너스레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사실일수도 있다고 가정한 다음 좀 응용해보면, 행복에 있어서 불행은 의미를 주는 목적으로 필요하다 또는 꽃이 떨어지고, 천재지변이 나고, 내 삶이 고통에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다른 면을 밝혀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발전될 수 있다. Arthur Charles Clarke의 "The Star"라는 소설에서 고대 동방박사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밝은 빛을 보고 길을 찾았다는 그 이면에, 그 빛은 수천 광년 떨어진 고도 발전된 문명의 별이 사라지는 섬광이라는 슬픔도 있다. 한 작은 파동을 만들기 위해 잔인한 사건들이 왜 반복되는가에 대한 답은,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가치가 자연의 가치와 다른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북유럽에서 금기시하는 과제다. 자칫 염세주의적인 사고에 빠지는 것을 우려해 아이들을 몇 시간 이상 야외에서 노는 것을 삼가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몇몇 사회의 문화는 오히려 긴 시간을 강조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게 훌륭한 분이,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아쉬운 죽음 등 우리가 주변에서 아쉬움과 두려움에 생각나는 모든 감성적 단어들은 얼마나 인간이 나약하고 어리석고 좁은지 스스로를 증명하는 말이다. 이 자연의 흐름을 이겨보려는 불로초와 환락은 오히려 더욱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죽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이 역설적인 말은, 결국 인간은 노력해도 안된다거나 그냥 즐기다가 죽어라 같은 염세주의가 아니다. 그 의미를 찾는, 무언가의 과정을 즐기는,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알고 끝을 정하는 오만함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사람의 삶에 목표가 끝이 아니다. 그 무언가를 다 이루면 죽어야 하는 시한성 삶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없는 목표를 만들어내는 괴물이 되고 양손에 금덩어리를 움켜쥐고 다른 걸 또 욕심내게 된다. 수험생의 합격이 끝이 아닌 걸 누구나 안다. 직장 승진, 수익 상승, 집장만이 인생의 끝이 아닌 걸 알면서도 모두들 그렇게 목숨을 건듯 달려가야 하는가. 공부를 즐겨야 수험기간이 행복하다. 직장 생활, 노동, 또는 나아가 고통을 받아들여야 삶이 행복하다. 그런 면에서 이 대자연에 절대적 완전함이 없다는 것은 너무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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