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 "존중"

작성자
Luke
작성일
2019-04-24 10:05
조회
67
어제 큰 딸아이가 손가락을 다쳐서 왔다. 학교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하면서 손가락 중 하나를 삔 모양이다. 병원에서는 부러진 곳이 없으니 찜질을 하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게 부목을 대주었다. 그러면서 다음날 다시 와서 한번 보자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물리치료를 하고, 부목에 진료까지 받고서도 말도 안 되는 병원비에 감사하며 돌아오는데, 맘을 다스린 딸아이가 내일은 갈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라고 말한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충고한 대로 다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셨겠지."라고 딸에게 말했다.

머리를 스치며, 내 부모님들이 떠올랐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는 그 말. 남이 뭐라고 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그 말. 내가 전문가니 잘 알고 있다는 그런 사업 미팅에서의 말들. 너무나 익숙한 한국의 "존중"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속을까 봐서 그럴 수도 있겠고, 그 바탕에는 다른 사람을 못 믿는다는 불신이 깔려있기도 하겠다. 왜 한국 사회는 남을 못 믿을까. 이 신뢰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가치다. 생각해보라. 남을 믿는 신뢰가 만일 한국에 있었다면 현재의 모든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없고, 실수였다고 해도 충분히 회피 가능한 상태가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신뢰도 마찬가지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믿고 있던 "가까운 사람"이라는 단어는 나로 국한돼가고 있다. 오히려 가족, 친한 친구, 이웃이 더욱 조심해야 할 불신의 싹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지난 몇 달간 사랑하던 한 드라마에서의 대사가 떠오른다. 기억을 추려 조금 의역하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신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았다. 이웃을 위해 아주 조금씩만 희생하는 그런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남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좋게 말하는 소리도 나쁘게 생각하면 나쁘게 들린다. 내가 말하는 희생이란 자신에게 큰 손해가 없으면 그 나름대로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잘 알아서 오라는 병원에 안 갈 수도 있다. 그 병원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쓸데없는 병을 만들어 말할지라도, 내게 큰 손해가 없으면 그대로 한 번쯤 해보라는 것이다. 그 병원이 정말 나를 위해 정성을 다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 인생, 내 사업 얘기해주는 여러 전문가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비교적 공신력 있는 경력이 있다면, 그 사람들 말대로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내 삶이 말 한마디 듣는다고 크게 손해날 것도 없지 않은가. 귀찮고 하기 싫어서 그걸 나름대로 또 이유를 만들면, 잠시 자신은 속일 수 있어도, 맘이 편하진 않을 게다. 아마 짧은 미래에 또 다른 핑계로 나를 속이려고 할 수도 있다. 나를 속이며 타인에게 신뢰를 가질 수 없다. 타인에게 신뢰가 없으면서 존중을 떠들고, 함께하는 삶을 강조해봐야 답은 나와있다. 나 스스로 신의 나라에 살길 바란다. 나를 조금씩 희생하며 남의 말을 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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