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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국 유럽, 한국에 사는 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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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에게 묻는 말이 있습니다.  “지내기 복잡하지?” 입니다.  마음도 그렇고, 이웃도 그렇고, 특히 사회는 더 복잡한 것 같고, 그래서 신경 쓰이고 그런데 외국서 오래 살다 왔으니 얼마나 안 쓰던 신경을 쓰며 살겠냐 하는 긴 말을 짧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제 대답은 “전혀요”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공감이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속 말을 하자면, 관심이 없습니다 라는게 정확합니다.

제 어느 글에 상대적과 절대적인 교육에 관해 글을 쓴 것이 생각이 납니다.  서구 문화의 부모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근접하면 자녀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부모는 목표가 상대에 따라 바뀌므로 자녀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주위에서도 잘하면 불만족을 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반응은 그래 그렇지만 경쟁 속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다거나, 좁은 지역에서 같이 살다 보니 비교하는 게 몸에 배서 그렇다는 좋은 핑계를 만듭니다.  저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이야기를 쓰면서 몇 가지 전제를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아울러 제가 수십 년간 그렇게 알고 지내던, 그러니까 뼛속까지 그렇다고 하던 사실도 그렇지 않다는 경험을 한 일이 있음을 밝힙니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와 가난한 역사의 민족이 아닙니다.  그랬었기에 서로 부딪치며 살 수밖에 없었고, 지역감정이나 고립, 문화의 독점도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라는 소설은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의 국토를 돌아다녀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수도 있고, 지도만 보아도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상대적이고, 유동 목표를 가진 민족은 오히려 순박합니다.  자신을 자신으로가 아니라 한군데로 묶으려는 동료의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남보다 잘한다기 보다 자신도 그 안에 있음을 느끼려는 성향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의 국토는 넓고, 전 국민이 넉넉한 인구밀도를 누리며 살기에 적합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길을 안 하였고 그걸 또 자신의 탓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관해 복잡함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 서로에 얽매이고 상대적 비교에 젖어 있음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동창회 모임에서, 한국의 어떤 정치사를 걱정하는 의견이 모아집니다.  또 어떤 그룹은 특정 대학의 입학 제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 업무에 통달할만한 지식적 배경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남이 보면, 특히 북유럽에서, 그 분야의 관련인으로 보일것 입니다.  제 생각은 왜 그것이 궁금할까 라는 것입니다.  정치가 바탕이 돼야 하고, 교육은 내 아이도 달렸고.. 그런 이유의 합리화는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연관을 지으면, 세계 평화와 기아, 난민을 위해 잠도 못 이룰 것이고, 머릿속은 터저버릴 겁니다.

수만리 먼 미국의 경찰 과잉대응을 비판하며, 앞 집의 아저씨가 오늘은 왜 출근을 안 했나 궁금해합니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입은 옷을 따지고, 직장 동료에게 살을 빼라 충고합니다.  밥을 혼자 먹는 걸 눈치 보고, 걸려오지도 않는 전화를 들었다 놨다 하며 남에게 바쁜척합니다.  종교 시설에 가면서도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을까 생각하고, 한편으로 어제 친구가 권해서 억지로 산 옷이 너무 비싼 것이라 후회도 합니다.  나를 지내기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단 한마디, 한 단어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내 아이가 나와 평생을 갈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신경 써서 그 아이가 다 좋은 길로 간다면, 이 세상 범죄자의 부모는 더욱 지독한 범죄자입니까?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은 자신의 손에서 멈춰야 합니다.  자기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는 경솔함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교육을 논하며, 심지어 세계 역사에도 끼어듭니다.  이런 오만함만 줄여도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어에서 이미 포함되다시피 “같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우리가 좋은 것은 좋은 일을 서로 해주는 겁니다.  그러기 힘들다면 나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상대가 싫어하면 나쁜 일입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궁금하고, 남을 무시하려고 일부러 더 합니다.  인간의 본성 중 남아있는 “악”을 자신의 이웃에게 씁니다.  그것으로 힘을 느끼고, 만족감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자신이 좀 더 우월함을 느끼는 것이 혼자 우월한 것보다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노래 가사처럼 한국인은 “고독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싫어합니다.  멋있어 보여도 자신이 그렇게 살기는 싫습니다.  그러나 하이에나 무리 중의 강자가 더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라는 의식에서 조금 멀어지면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종교는 그 특정 신을 믿는다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존중합니다.  매일 행하는 일상생활을 하루하루 반성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세상과 떨어지나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앞날도 걱정해 봅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자신도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된다면, 그것도 조금만 더 일찍 알게 된다면 행복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내가 관심과 행동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남이 행하는 것을 그저 그렇게 알아주며, 하루하루의 삶에 애정을 갖는다면 “행복”이 빨리 다가올 것입니다.  이 간단한 말을, 초등학교만 다니면 알 수 있고 이해되는 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동으로 못옮겨서 그 들 나름대로 “복잡한 한국”에 살고 있을까요.

국가나 그 시스템은 행복의 요건 중의 하나이지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토의 넓이가 국민성에 영향이 적다는 건 덴마크나, 오스트리아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깨달음으로, 가족 간의 사랑으로 빈곤함에도 행복을 찾는 인디아, 도미니카도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꼭 스칸디나비아의 국가적 시스템에서 발견된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은 모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국가였고, 야만성마저 있던 국가들입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해 가장 강조한 것은 따뜻한 마음과 가족입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심, 희생 등은 이웃과 사회를 향합니다.  아내와 자녀를 위해 희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순 없습니다.  또다시 아버지의 일상적인 역할과 희생은 다르다는 걸 적습니다.  조국과 세계를 걱정하기 전에 내 이웃길에 쓰레기를 안 버리고, 멀리 걸어오는 노인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주는, 그런 사소함이 여유입니다.  끊임없는 관심으로 실천하는 것이 희생입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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