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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국 유럽, 자율에 의한 사회의식

한국 미국 유럽, 선진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꼭 필요한 시민의식의 개혁 https://www.nordikhus.com:47780/?p=5126

한국 미국 유럽, 미국과 북유럽 사람들의 삶의 목표  https://www.nordikhus.com:47780/?p=5222

진도 해상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며, 북유럽에서 드는 생각 https://www.nordikhus.com:47780/?p=6280

약속과 법을 믿고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한국인의 생각 – 한국의 한 신문기사를 읽으며  https://www.nordikhus.com:47780/?p=6306

 

기술의 발전으로 큰 즐거움을 얻습니다.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고국과 미국의 뉴스가 생중계로 연결되고, 화상 전화로 업무 회의를 합니다.  블로그의 제 느낌은 무한의 시간 루프를 따라 고국에 전달됩니다.  그 반대의 길로 또다시 고국의 냄새를 느낍니다.  이렇게 좋은점 뿐 아니라 좀 몰라도 좋을 것들도 같이 옵니다.  아픔, 문제점, 고민…  제가 동동 구르는 발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고국과 동기화됩니다.

저는 그 간의 짧은 소통에서 참 많은 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와는 다른 삶의 사람들, 다른 나이의 사람이 하는 말들, 또 그들 모두가 모여 내는 큰 목소리를 구별하여 다 들을 수 있는 상황들…  추상적인가요?  한 공간 수천이 모인 목소리는 자신의 말도 안 들립니다만, 그래서 오히려 더 헸갈릴때도 있습니다만, 좀 떨어져서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면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다 들리고 그것을 모아서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는 신기한 능력도 생깁니다.

자율이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스스로 한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말입니다.  책임도 집니다.  실패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늦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길이 가장 효율적이고 뭐고 하는 어느 경영 수업 시간에 들었을 것 같은 말장난 같은 단어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장년의 사람들, 고생도 좀 알고 인생도 좀 알 것 같은 나이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지식과 젊음으로 무장된 청년층의 사고의 고령화는 심각합니다.  제가 표현한 사고의 고령화는 그 나이의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늙어버린 사고를 가진 사람의 안전제일주의, 눈치 보기 만을 따라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인생을 바꾸기 위한 설계 같은 중요한 일을 위해, 증명되지도 않은 경험과 눈속임으로 돈벌이에 나선 선전꾼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에 진정한 의견으로 다가가는 사람을 오히려 의심합니다.  닫힌 귀는 열리지 않습니다.  물어보면 대답하고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사회도 마치 학교의 수업입니까?  내가 주장하고 그런 것들이 모여 많아지면 모든 다른 사람은 다 그것을 들어 주어야 합니까?

갑, 을이란 불평등을 들었습니다.  지배와 종속이라는 사회주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노동법을 악용하여 그렇게 할 수 있는 음성적 인정이라고 또한 이해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한국이 역사적으로 수직적 지배에 익숙한 문화이므로 오히려 더 맞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나뉘어야 하는 흑, 백에 참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의 정, 반을 보며 그 외의 소수는 무시되고 흡수될 수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는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인가요?  자율성은 언급한 대로 책임을 함께 가지는 개념입니다.  수평적 사고와 협력 관계를 이루기 위한 절대 필요 사항입니다.  스스로 길을 좀 가보는 것이 출발 전 이것저것을 다 따지는 불신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입니다.  상위라 함은 더 깊은 수준의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을 자신의 계획과 형편에 맞게 사고하여, 스스로의 책임하에 실행하는 것이 자율적인 삶입니다.  창의적인 사고이기도 합니다.  대중과 타협하고, 인기몰이를 위해 마음에도 안 드는 개념을 자신의 것이라 스스로 속이며 나아가려는 피동적 삶을 생존이라는 최대 비교치의 단어로 묵살합니다.  남 눈치 보기는 결국 스스로 피동적 인생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종속을 구체화시키는 속박입니다.  자율적 사고는 스스로를 동등한 자격으로 누구에나 평등한 인격을 만드는 일입니다.

북유럽의 사고는 이렇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가정 내의 파트너이며, 인격체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최대한 평등한 시야와 사고를 위해 교육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절대적인 사고와 지식을 가지지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모든 사고를 Internalization, 내면화 교육으로 스스로 감싸 안고 숙성시키는 고민을 하도록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가장 강조하는 평등과 자율입니다.  잘못된 습관은 부모로 부터가 절대적입니다.  이 단계를 끊어줌으로써 스스로의 사고를 하게 하고,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사고를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자녀를 인격으로 대하고, 절대 절대 나의 사고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 가족으로 내 인생의 동반자일 뿐, 나를 위한 어떤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든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며,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잘한 일은 그들의 몫입니다.

스스로 책임지고, 봉사를 업으로 하는 공무원, 인기나 표보다 내 지역의 행복을 위해 몇 년간 일하고 싶은 정치인, 무얼 가르치는 것보다 어떤 사고를 해야 하는지 길을 알려주는 선생님, 내 아이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남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같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지도하는 부모님, 회사가 시청률이나 판매 부수 올라가는 것보다 언론이 가야 할 균형을 생각하는 언론인, 그 외 마음속으로 기도해주는 조용한 국민…  아직 먼 이야기인가요?

쟤가 나 때렸어요, 쟤 때문에 그래요가 언론의 수준인가요?  안 그러고 가만있으면 바보 취급당하고, 그런 사람들을 이때다 싶어 누르고 짓밟고, 그 사이 돈에 눈먼 장사꾼들이 활개 치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분야 모든 사람들이 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남이 안 해도 좀 묵묵히 길을 가는 그런 모습이 그립습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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