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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국과 비교한 북유럽 식생활

Susanne Walström/imagebank.sweden.se

문화와 더불어 물질적인 풍요가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진다.  먹는 것에 관해 지표를 내는 통계도 있고, 단순히 먹기 위함이 아니라 소통의 수단으로 식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유럽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식사나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프랑스조차도 오늘날의 프랑스식 요리를 즐기게 된 것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근세라는 산업 혁명 이후에나 일반인들이 요리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일반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요리에 관해서는 삶의 여유가 없었다.  물론 일부 지주, 귀족에게는 흔히 있는 맛이라거나 색다른 것이라거나 한, 맛의 세계가 있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운송이 극히 어려워서 각 지역에 있는 식재료들로 요리가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맵다는 영문 표현인 스파이시, Spicy는 향신료가 들어갔다는 스파이스를 형용사화 시킨 것이다.  중동과 인도의 향신료로 대표되는 식재료들은 오늘날 흔히 보는 후추, 고추를 비롯하여 커리의 원료가 되는 수십 가지의 향신료와 민트, 베이질 같은 이탈리안 허브가 포함된다.  이런 식재료와 육류, 생선, 각종 야채 등이 활발히 교류되는 근세 이전에는 지역적인 농산물로 식생활이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육류가 풍족한 지역의 문화나 인종적 특성을 보면 채식 위주의 지역과 차별성을 보인다.  북유럽은 이런 점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척박한 지역에 속한다.  육류의 소비가 제한되었던 한국에 비해 북유럽은 야채와 곡물의 빈곤을 겪었다.  모두 삶의 방식과 지리적인 특성 탓일 것이다.  이에 비해 신생국인 미국은 음식에 관한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중세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빈곤을 겪지 않았고, 이주민들이 대부분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큰 땅덩어리만큼이나 지역적으로 다른 식생활이 발전되었다.  아직도 북동부 미국의 음식과 중남부의 음식은 크기나 조리방법에서 아주 다르다.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다가 미국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던 간단하고 신속히 먹는 음식들은 대도시를 위주로 생겨난 최근의 문화이다.

각종 인종과 문화가 섞인 미국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문화를 찾는다는 것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 것이다.  내 할아버지의 음식을 기억할 수도 없고, 다른 문화를 가졌던 어머니의 음식이 그것을 이어올 수도 없다.  그래서 아시아, 유럽, 중동, 인도, 태평양 국가 들의 음식들이 막 뒤 섞여있는 가운데 자신의 입에 맞는 것을 고르고, 또 그것을 직접 요리하는 법은 알 수가 없으니 즉석식품과 패스트푸드 같은 외식 산업에 입맛을 맞추게 된다.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최고의 맛을 선보이기 위해 눈에 안 보이는 각종 첨가물과 자극적인 향신료가 첨가되고, 본국의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 탄생한다.  그래서 실제로 멕시코의 타코, 인도의 맛살라, 한국의 냉면, 일본의 돈부리, 베트남의 쌀국수와 미국의 것과는 완전히 맛이 다르다.  오히려 더 맛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의 중요성은 요즘 삶의 질을 비교함에 있어 상당히 비중 있게 생각하여야 한다.  사람의 생활이나 문화적 측면은 물론 신체 발달이나 지능, 성격, 체질, 질병, 유전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학교 내 탄산음료 판매가 중단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급식도 가급적 즉석식품을 피하라는 지침이 있지만, 통조림을 데운 것도 요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미국식 요리를 생각하면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정책을 어린 시절부터 교육하는 이유는 국민 건강과 그에 대한 기하급수적인 비용 부담 때문이다.  미국 내 모든 음식은 짜다.  심지어 음료에도 과다한 소금이 들어간 것이 있다.  짠맛은 맛을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리고 중독성이 있다.  단맛과 더불어 짠맛에 어려서부터 길들여지면 나트륨 섭취가 당연히 과해지고, 각종 성인병과 비만, 스트레스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또 가정의 입맛은 대를 이어 계속 이어지므로 지금 당장 이를 고치려 해도 적어도 한세대인 30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기준으로는 콜레스테롤과 비만의 판정을 받고도 남는 신체 기준이지만 미국의 비만 판정은 너그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건강까지 너그럽지는 않았던지 건강보험과 의료의 예산은 계속 증가하여 왔다.  특히 비만과 관련된 성인병은 중하 계층에서 더욱 심하기 때문에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의 식생활 또한 그리 오랜 역사가 있지 않다.  우리가 요즘에 아는 궁중의 어느 음식을 수십 년 전만 해도 누가 먹어보았으며, 알기 조차했을까.  삼겹살과 소시지가 없으면 밥을 안 먹겠다던 아이들이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가.  한국의 먹거리는 미국의 인스턴트 위주의 식사를 서양식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중국음식으로, 냉동과 해동을 거듭한 생선살을 일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한국 고유의 음식을 퓨전이라는 향신료 섞기로 치즈를 뿌린 불고기나 사람이 먹어서는 안되는 매운 화공약품을 넣은 볶음 음식을 맛집이라고 소개한다.  미국으로 이민자들이 처음 음식을 들여올 때는 장단점과 또 어울리는 다양한 첨가 식품도 같이 수입하였다.  그래서 이탤리안 촌의 음식이나 인도인들 마을의 음식은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 고유문화조차 이해하기 싫거나 단지 돈벌이에만 눈이먼 상인들에 의해 국적 없는 자극적 음식이 되었고, 다름을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문맹자들의 추종으로 가짜가 진짜를 없애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의 비만 문제는 단지 남의 일이 아니다.  성인의 살빼기 열풍과는 반대로 어린이의 비만과 성인병은 걱정의 수준으로 보인다.  단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다양성의 문제일 것이다.  흔히 듣던 골고루 먹어라라는 말은 절대 진리이다.  맵거나 국물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 빵으로 한 끼를 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 외식에는 반드시 고기를, 그것도 기름 뚝뚝 떨어지는 불에 탄 고기를 꾸역꾸역 한입 가득 먹어야 잘 먹었다는 사람, 하루건너 라면을 안 먹으면 큰 일나는 사람들이 다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음식은 그 나라와 계절에 맞게 발전된 것이다.  고유의 우리 한식은 그렇게 맵고 짜지도 않았고, 혓바닥이 데이도록 뜨겁게 먹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기름에 절인듯한 음식을 한 끼 건너 먹는 일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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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ne Walström/imagebank.sweden.se

북유럽의 5개국은 가난에 찌들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리적 요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원과 기술로 세계무대에 서는 오늘이 있게 되었다.  각종 세계음식이 다 진열된 북유럽에서도 즉석식품의 열풍은 그리 크지 않다.  북유럽 사람들이 비록 여가 시간이 많아도 특히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사 먹는 것이 더 맛있어서가 아니다.  북유럽 따뜻한 가정의 아이콘은 식구가 모여 먹는 식사시간이고 그 음식은 가족의 사랑으로 만든 것 이어야 한다.  집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건강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야채며 향신료도 적당히 하게 된다.  그 입맛은 그대로 이어지고, 학교에서조차 주방에서 요리하는 급식은 가정식과 별 차이가 없다.  그 차이는 크다.  청소년기 이후 급격하게 체중과 비만이 되는 서양인들이어도, 북유럽의 2-30대의 비만은 아주 의외의 일이고, 토박이 북유럽인들은 더욱더 건강하다.  우리가족이 북유럽에서 생활하던 한동안 코카콜라와 혀가 녹을 정도의 달디단 디저트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얼마 전 방문한 미국에서 다시 만난 음식들을 반가워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먹기 전 한 번은 괜찮을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내가 즐기던 음식이었는데도 말이다.

음식의 균형은 무슨 말로도 부족하다.  아이의 성격, 공부, 가정의 화목, 사랑은 물론이고 건강과 미래까지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확대 해석이라고 꾸중을 하여도, 그 음식을 마련하고, 가족을 생각하고, 그것에 관해 얘기하고 양보하는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진다면, 그래서 수 십 년이 흐른다면 그 가정조차 변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한국도 배불리 먹었다.  더 먹고 싶은 욕구보다, 한없는 욕심보다 차분히 여유를 즐기며 생각하며 감사하고 맞이하는 식사 문화가 올 때가 된 것 같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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