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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변화해야 한다. 촌스러운 미국중심의 사고는 끝났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60년대의 미국이 더 이상 아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풍요한 나라였다.  아시아의 각 나라는 물론이고 유럽의 이름있는 나라들까지 가난에 허덕였다.  이들이 보기에 세계대전을 마친 후 그 보상이라도 하듯이 풍요를 누리는 미국은 천국의 환영이었다.  한국은 그 허상을 그리워했다.  그 당시는 허상이 아니었고, 실체였으니까.  또 60년이 지난 지금 바라보면, 그 당시는 아무도, 단 한 사람도 미국을 비판하며 그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단 한마디의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찌든 가난에 몸부림쳤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미국의 풍요는 일상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개인마다 소유한 커다란 자동차에 에어컨이 장착되었고, 70년대까지 한국의 마을에 한 대 있을까 말까 한 GE 냉장고가 각 가정마다 놓여있었다.  오븐에는 항상 주부의 빵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볼 수도 없었던 아이스크림과 야외 자동차 영화관이 즐비했다.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 고개를 들었고, 가장이 혼자 버는 수입은 넓은 집과 두 대의 자동차, 조금 도시의 외곽으로 나간다면 수영장 딸린 저택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이즈음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는 다른 나라들이 한참 국가를 재건하던 시기, 전자 기술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창업 단지가 되어갔다.  세계의 기축통화를 가진 장점뿐 아니라, 넓은 영토와 자체 소비를 충분히 만족시키던 인구, 그리고 미국인의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미국은 제국이 되었다.  단지 창의적인 사고나 자원뿐 아니라 세계를 리드하고 발전시키는 독보적인 축으로써의 미국관이 세계의 발전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었다.  그것은 대국으로서의 포용과 이해, 관용, 균등 같은 동양적 사고로도 넓은 생각이었고, 충분한 추종자들을 불러 보았다.  해외의 미국 동경자들은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열심히 개척했다.  잘 갖춰진 사회 시스템 안에서, 또 무한 생산력을 가진 소비 사회에서 그 이민자들은 발전할 수 있었고 그것은 다시 미국의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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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 국가에서의 미국 이민으로 개척된 미국은 국가 초기 수많은 농산물을 생산했다.  이민자들이 주로 생업으로 삼던 농업과 그 부산물의 생산은 자급을 넘어 잉여의 생산으로 치달았다.  그들은 남는 농산물을 팔 곳이 필요했고, 그들이 그렇게 미워하던 본국의 돈 많은 귀족들, 자본가들, 중간 도매상들이 주 구매자가 되었다.  미국 이민자들이 그렇게 피하려고 했고, 싫어했던 본국의 귀족들과 다시 만나면서 그들의 사고는 바뀌었다.  예전의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가 아닌 사업 파트너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들은 평등했고, 어떤 면에서 우위에 있을 수도 있었다.  세습된 작위에 의한 평등은 이룰 수 없었지만, 자본으로 키워진 힘이 평등을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이는 미국의 큰 가치중 하나이다.  부가 선하다는 사실.  부는 힘을 만들고 영향력으로 나타난다는 자본주의의 실현이었다.  개척에 의한 발전, 평등한 조건으로부터의 균등한 기회, 누구나 부지런하다면 살아나갈 수 있다는 근면 정신 등이 미국의 가치이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의 정치 경제 시간을 통해 교과서에서 배운다.  물론 나도 수업을 들었다.  이것에 같은 조건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조건 없이 사람을 대하는 관용, 이해 등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리더들은 사회의 낙후된 점들과 이웃을 항상 관심 있게 바라볼 책임이 있으며, 그것이 미국인으로서 하나의 조건이다.  교실에서도 훌륭한 모범생들은 칭찬받고 리더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학우들을 보살피고 같이 손잡아 주는 관용도 요구된다.  리더의 지도는 당연한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리더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무도 술이나 바람피우는 이웃의 치부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어도, 리더의 치부에는 철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리더는 일반 사람과 달라야 하며, 그것이 지극히 옳다.

미국의 문화는 수많은 것들이 녹아있는 곳이다.  아시아뿐 아니라 이슬람, 유럽, 아프리카의 어느 것도 미국의 사고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존중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을 공평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신의 백성이라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그에 복종해야 한다.”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이란 국가는 개인의 사고를 실천하는 국가 정책을 가진다.  그래서 낙후되고, 열악한 국가에 도움을 주며 인권이나 민주주의 이상에 관해 다른 나라들에게 지적질을 해댄다.  미국적 사고로 보면 지극히 옳은 생각이다.  리더의 책임이니까.  그 바탕은 물론 자신도 포함하여 균등한 조건과 평등한 사고를 바탕으로 해왔다.  자국을 희생하면서 세계를 돕는 박애주의는 비록 없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를 균형 있게 하려는 미국은 한편으로 정의였고, 법과 같은 존재였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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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이어 어제 다시 미국은 미국사에 다시없는 횡포를 부렸다.  인접국 멕시코와 국경 전쟁을 선포한 이후 다시 시리아와 이라크를 포함한 아랍 7개국에 대한 미국 입국 선별책을 행정명령을 통해 실천했다.  이는 단순 테러 의심자나 이슬람 불순 세력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 체류자, 미 영주권자, 관광객, 친지 방문자 등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수백 명을 구금하고, 일부를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단지 192명의 혼란이라고 축소하고, 멕시코의 국경 문제는 언젠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고 보도했다.  그 이전에는 자국의 기업들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이미 체결한 무역 협정인 TPP를 탈퇴하고 NAFTA까지 관세 적용으로 방침을 세웠다.  자국의 이익에 자국의 리더가 나서는 것에 나는 이견이 없다.  만일 있다면, 미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이전의 미 대통령과 행정부 지도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는가.  미국이 이민 국가의 가치를 존중하며 평등과 존중의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정치를 하고 있음은 모두 인지하는 사실이다.  그것에 보다 넓은 관용으로 당장 미국에 손해가 나더라도 다른 것으로 보상받는 대국적 견지를 펴고 있었음은 또 다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20세기에, 바탕이 되었던 이민자의 힘과 미국적 가치로서의 이해로 지금까지 미국이 선진국의 선진국, 세계의 리더가 된 사실을 잊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이제부터 미국의 역할은 그저 지역 강국으로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정책으로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

미국은 태생부터 세련되지 못한 나라다.  세련이란 단어를 학술적보다 감성적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보다 앞서고, 보기 좋은 외모에, 뛰어난 매너, 넓은 이해심, 교양이 충분하고, 세계 문화에 익숙하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이고, 유머 있고, 지적이며, 깔끔한 사람들이 아니다.  직업적 오해가 있을지 몰라도, 시골 농부에, 소나 닭을 키우는 농장 인부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조상이 그랬고, 그중 도시에서 좀 배운 1%의 미국인이 이끄는 나라다.  미국은 3-4%의 초극빈층과 3-4%의 부유층으로 사회구조를 이룬다.  3-40%의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중하층과 3-40%의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중상층이 대부분이다.  부유층 3-4%의 아주 일부분은 리더 그룹이다.  사회, 정치, 문화, 예술, 기술의 첨단 미국을 이끄는 사람들이고 이들 대부분은 3-40%의 중상 계층과 이민자에게서 나온다.  약 6-80%에 이르는 중산층은 과거와 비교해 요즘 상당히 위태위태한 시절을 겪었다.  특히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3-40%의 중하층이 십여 년 전부터 이어지는 경제 불황으로 자신이 중산층이 아니라는 불안을 겪었다.  있을 때는 넘치는 너그러움이 궁해지면 차지는 법이다.  원래 있는 사람들은 경기에도, 불황에도 튼튼한 울타리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과거 미국적 여유에 젖은 위기 불감증 그룹에서는 수차례 다가온 경제적 위기에 한껏 움츠렸고 그 대안을 내 것 챙기기에 나섰다.  미국인 60% 이상의 대부분은 자기의 나라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대학 조사에서 약 반수 이상의 캘리포니아 사람이 도박도시인 네바다 라스 베이가스를 제외한 어느 미국 주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한 주도 유럽의 몇 나라를 합한 면적이며, 국가적으로 사계절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두 개의 대양을 인접한 (대서양과 태평양) Coast to Coast 문화가 있으며, 나라 내에 4시간의 시간대를 가진, 그리고 국가의 자원이 거의 무궁무진한 나라이다.  한 마디로 미국은 세계이고, 세계를 보기 위해 굳이 해외까지 가지 않더라도 모든 게 미국 내에 있는 나라이다.

트럼프의 생각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미국의 이해를 미국인들에게만 구하는 것이 그렇고, 세계를 보는 시각이 미국 중심적인 것이 그렇다.  이런 사고가 어쩌면 미국을 만든 개척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명문대를 나왔어도 유럽 어느 정치가의 품위를 따르지 못한다.  수많은 단어들 중 상대를 거스르는 단어들만 조사해서 말하는 듯한 트럼프의 언행은 유럽 시골 마을의 노파의 수준보다도 못하다.  무엇보다.  그가 선언하고 실천한 행정 명령들이 너무 즉흥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시정 잡배의 행동 같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급했다.  트럼프는 훌륭한 사업가이며, 유머와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다.  거기까지다.  세계와 트럼프가 어울릴 것으로 판단한 미국인들은 큰 실수를 했다.  중국은 “중화”라는 중국 중심의 사고관을 내세운다.  좋다.  자신감이 맘에 든다.  그런데 누가 그것에 따르는가.  티벳이?  전쟁까지 한 베트남이?  대만?  일본?  설마 한국이?  수천 년간 괴롭힘을 당해온 한국이 설마.  얼마나 우스운가.  외침은 무시로 끝나고, 돌아오는 것은 천박함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 호응을 얻었던 건 그만한 미국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라 단정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 정책이나 레이건의 세계 질서 주의, 케네디의 강한 미국은 그만한 희생이 있었다.  트럼프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행동과 같다.

한국은 미국 바라기다.  지난 60년간 그랬다.  정치와 경제는 모두 미국이 넘겨준 걸 챙기기 바빴고, 교육이나, 철학, 생활 등도 미국의 것을 들여오기 바빴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나마 한국을 나라 취급해주는 미국이 고마웠다고 할까.  그게 미국의 장래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 바라기였던 한국은 일본에 이어 큰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에 맞게 정치와 문화 등이 같이 따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다른 것들은 아직 경제만큼 한국을 일으키는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던 1960년대의 미국은 이제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 이민을 큰 꿈으로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젠 없다.  오히려 아직 미국에 남은 한국 이민자들의 팍팍한 삶을 고국에서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지는 오래다.  역 이민이 더 힘들다는 한국 사람들도 많고, 그것에 못 견뎌 다시 재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의 한국은 두세 가지의 조건을 가지고 시험하고 도전할 여력이 없었다.  안돼도 될 때까지, 되게 하라는 슬로건이 나를 한참 슬프게 만들던 때가 있었다.  집 하나도 못 지을 농토 넓이를 가진 한국의 농업이 헬기로 씨를 뿌리는 미국의 농업과 상대할 수 없다고, 보호 무역의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이 일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응석이다.  세계의 누구도 한국을 가난한 농업국이나 원조를 받는 나라로 기억하지 않는다.  뭐하나 할래도 혹시 망하면 안 되니 그저 남 따라가는 문화가 획일성으로 바뀌고, 개성은 없어졌다.  대학을 왜 가냐고?  남이 가니까.  그것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 인식에도 묻어나고 튀는 것보다 그저 조용히 가만히 있는 문화가 됐다.  미리 알면 다른 소리 날까 봐 얘기 안 하고, 혹시 잘못될 가봐 안전장치 세우느라 시간과 노력 낭비하고, 아무도 모르게 그저 모르게 하려니 공개나 소통, 투명성 같은 것들은 꿈도 못 꾼다.  내가 돈이 많으니 다 뺐고 나 혼자 살고, 다른 사람 필요 없고, 알지도 모르게, 그저 쉬쉬하는 문화가 한국이고, 세계 선진국이라는 서울의 대기업, 기획실, 대표의 사고 밑바닥이다.  정치는, 대통령은?  다른 사람 존중하고, 다 알도록 설명하고, 소통하고 절약하며, 나라 세금 써왔나?  그 기업이 뭐라고, 허가가 뭐라고 줄대고 돈대고 인맥 대고 난리치다가 오늘이 된 것 아닌가.

그저 잘 되는 사람 따라가 보려고 이리 머리 쓰고 저리 궁리해서 오늘까지는 왔다.  밭 매고 소 키워서 오늘날까지는 왔다.  그다음에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미국은 바뀌고 우리의 모델은 더 이상 없다.  앞서가던 일본도 그 수준이다.  그럼 다시 다른 잘 사는 나라를 따라갈 것인가?  누구?  북유럽?  북유럽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저 행복한 나라이다.  한국의 민도가 북유럽을 이해하고, 그 수준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샌더스도 따라가고 싶은 길이었지 않은가.  미국도 못 이룬 사고의 수준이고, 러시아가 가장 칭송하는 북유럽이 아닌가.  유럽의 사고는 앞과 뒤가 같다.  이유가 있고, 답을 구한다.  그 사람이 승리자이고 지식인이다.  북유럽에선 그걸 공개한다.  같이 한다.  그리고도 처음 답을 구한 사람도, 처음 그 문제를 내고 도와준 처음 사람에게 양보한다.  이게 상식이다.  정의다.  내걸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 주장하며 양보하는 사회다.  그것의 예가 자연이고, 자원이다.  이것도 아주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이걸 따라 한다고, 그래서 북유럽의 행복을 한국에서 실천할 수 있다고…  바란다.  정말 간절히 바란다.  노르딕후스가 이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도전했을 일이다.  그러나 혁명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처음엔 우리 수준을 알자.  좋은 옷에 달러 두둑이 지갑에 가지고 세계에 나가 어깨를 활개치는게 세계화가 아니란 생각을 하자.  촌스러운 농경사회 탈을 이젠 좀 벗자.  남을 생각하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삶을 살고 있나 자각을 해보자.  세계를 보면서 한국이 잘하는 일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그 일들을 세계 어디든 나가서 도전해보자.  그러려고 해도 부족한 여러 가지가 떠오를 것이고 그것부터 도전해보자.  아는 친척, 형제, 후배, 지인 앞세워 뭐 생기지도 않는 신뢰 내세우고 뒤통수 맞지 말고 실력대로 투명하게 일처리를 해보자.  가진 것 없이, 꿈만 크면 큰 꿈을 꾸는 게 아니라 허황된 거다.  자신은 뭐 하나 갖추지도 못하고, 주위 사람 비교하고 무안주지 말자.  세계의 눈으로 보면 다 똑같다.  S대나 Z대나 한심하긴 마찬가지고 교수들도 언제적 기술을 수십 년간 울겨먹나.  그걸 또 따라 하려는 공무원들은 뭐고…  인터넷 정보 잘 찾는 순서의 제일은 정치인인 것 같다.  그 시간에 정책 연구는 할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백 장이건 천 장이건 쓰려면 바뀔 건 너무 많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나…  우린 같은 한국인이고,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큰 발전이라 본다.  이웃을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자.  그게 존중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숨쉬기 편하게 사회를 만들자.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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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fair

    뭔가 속 시원하면서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루크님이 쓰는 것 처럼 저런 부분을 알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묻고있던 생각들이었거든요. 비교, 경쟁, 성과, 독식..
    현재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깊게 인식된 것들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을까요..ㅠ

    1. 이 순간에도 한국은 바뀌고 있습니다. 다만 언제, 얼마나 빨리 같은 조급함이 더해지면 변화의 시간도 길어지고 방향도 틀어질수 있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한국의 가치가 하루에 말들어진것이 아니듯 하루만에 바뀔수는 없습니다. 수세대는 걸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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