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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북유럽의 “유명해진다”에 대한 다른 생각

Photo by Tove Freiij / imagbank.sweden.se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의 끝자락이다.  수십 년간 계속 그래 왔다는데 요즘 대형 관공서가 몰리며 거주 인구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의 생김새나 상가들의 시스템은 첨단과는 좀 멀어 보이는 구식 동네다.  한 일이 년 전 동네에 게장 집이 문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기도 했고, 한국 음식과 너무 떨어져 산 탓에 난 푸아그라보다도 더 값지게 생각을 해서 자주 방문을 했다.  무엇보다 신선하고, 값이 쌌다.  친구들과 만나며 게장을 배 터지게 먹는다는 것이 한국에서도 상당히 비싼 일이란 걸 알고 있던 내게도 그렇게 큰 부담 없이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길 한참이 지났다.  당연히 유명해졌고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보도를 한 후부터는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며칠 전 동네 산책을 하다가 긴 줄을 보았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인 떡집이었다.  다가가 주인 할머니께 여쭈어보니 방송에 나와서 그렇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온 후부터 줄 곳 단골로 다니던 떡집이다.  그 이전 한참 전부터 할머니는 소박한 떡집을 해오셨고, 몇 년 전부터는 큰 아들이 힘에 부친 어머니를 도와 여러 가지 떡을 개발했다.  전통적인 떡 외에 현대적인 맛과 재료를 시도했고, 판매도 온라인으로 넓혔다.  그 당시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떡집만 하던 것들을 비롯해서 평소 솜씨 좋던 할머니의 예쁜 떡들을 사진으로 두고두고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던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빵집에 밀리고, 요즘 사람들은 떡을 안 먹는다던 그 트렌드를 단골 위주와 온라인으로 넓힌 첫째 아들의 사업 수완을 난 만날 때마다 추켜세웠다.  동네 상점 모두가 단골집인 우리 가족이 늘 첫 번째로 꼽는 떡집이었다.

ricecake

북유럽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다.  인종이나 옷차림에 상관없이 잘생기고 몸 건강한 보기 좋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스톡홀름은 매너 있고 옷차림마저 첨단 트렌드인 모델들이 걸어 다니는 도시같이 느껴진다.  꽤 많은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스웨덴 출신이고 러시아 슬라브 계열과는 또 다른 감성이 느껴진다.  나는 광고일을 꽤 했었어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툭 터놓고 말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그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 너무 놀란다.  왜 자신이 아름답냐는 것이다.  자기는 한 번도 자기가 예쁘거나 매력 있다고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 개성을 살릴까, 무슨 풍의 옷이나 화장이 어울릴까 고민한다고도 한다.  북유럽의 미인, 미남들은 자신이 잘생긴지 모른다.

천재적인 디자이너들을 만난다.  그들의 일뿐 아니라, 생활이나 습관들도 배울 것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면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그렇게 배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좋아하면서 겉으로 빼는 것이 아니라 깜짝 놀랄 정도로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서 다른 유럽이나 미국과 교류가 많았던 디자이너는 좀 그러려니 하지만, 순수한, 소위 은둔 고수 같은 예술가들은 정말 순박하다.  이런 것도 얘기하며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신은 유명해지고 갑자기 큰 수입을 올리는 것이 싫다고 한다.  한국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내용이다.

계장 집은 유명해진 이후 가격을 2,000원 올렸다.  그리고 잡다한 반찬거리나 밥에 추가 비용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몇 달 후 2,000원이 또 올랐다.  이젠 서울의 싼 식당에서의 게장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신선함은 그대로이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집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반겨주시던 사장님의 모습이 언제부터 보이지 않게 됐다.  흔히 흘러가는 맛 집의 흐름이다.  아마 게장 집의 사장님은 사업을 했던 것 같다.  맛이나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그 유명함에 취할 목적으로 사업을 한 것 같이 보인다.

떡집의 할머니는 그저께 주문을 하러 갔을 때, 연신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셨다.  떡을 싸던 큰 아들도, 방송 후 도와주러 온 둘째 아들도 미안하다 하셨다.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떡을 만든 분이다.  남들이 다 망한다 했을 때, 난 이제 좋다며 콧구멍만 한 가게 주방에서 고물을 묻히던 분이다.  그러면서 떡에 대한 사랑과 하나 둘 늘어나는 단골에 뿌듯함을 느끼던 분이다.  내 딸들이 자라는 걸 봤고, 첫째 아들이 시도하는 부산스러운(?) 짓들을 떡에 대한 애정으로 최대한 간소화 시키던 분이다.  단골에게 충분한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것, 지금 필요한 양을 줄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드리지 못하는 것, 예약이 요즘 조금 복잡해진 것에 늘 미안함을 말하신다.  대기업에서 몇천 개의 오더가 들어오고, 사람들에게 충분히 드릴 양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바쁘고 단골들에게 미안해야 하는지 아쉬워하는 눈치다.  유명한 것이 삶에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이 차이다.  북유럽에서 유명해지고 수익이 단기간에 올라가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그것보다 차분히 자리를 지키는, 그래서 한 계단씩 나아가는 게 더 의미 있고 행복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떡집 할머니는 한국에서 북유럽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오랜 경륜과 깊은 사고, 삶의 굴곡이 그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북유럽에서는 부모로부터 이 사고를 직접 경험한다는 사실이 부럽다.  떡집은 아마 큰돈을 벌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형 떡집이나 프랜차이즈로 갈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들이 일로부터 자유롭고, 인생에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 하루하루 행복하단 사실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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