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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느끼는 개인의 존엄과 국가의 권위

주변이 시끄럽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경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년 중순부터 시작된 자영업자들의 앓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위로하고, 나도 그렇게 지냈다.  중국발 코로나가 커지면서, 앓는 소리는 절규로 바뀌고 노르딕후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계약 후 진행되던 여러 프로젝이 날아갔다.  그러다가 어제 덴마크의 한 대학교수와의 통화에서 계획된 출장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 출장을 예약하고 나서 덴마크의 공식 채널로 받은 연락은 방문 취소 요청이라 했다.  대한민국과 중국 전 지역이었다.  팬데믹이나 아웃브레이크라는 “질병 대 창궐” 용어가 해외에선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지금의 현실은 내가 3월 중순으로 계획된 베트남 다낭, 호찌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출장은 그 나라의 한국인 입국 불가 정책에 따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도 비슷한 상황이라 서울과 베트남에서 만나는 건 이번에 어려울듯싶다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차마,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베트남과 동남아 국가에서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해 꼼짝도 할 수 없다고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5월로 모든 미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5월도 기약이 아니라 두고 봐야 하는 걸로 서로는 이해했다.

나는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함을 믿는 사람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고 더 나아가 국가가 됨을 지지하는 최소 정부주의자이다.  나는 사람이 당연히 그 자체로도 존엄함을 믿지만, 사람 스스로도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인성과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그런 친구들이 좋다.  아무리 돈이 많고, 학벌이 좋으며, 내가 뭐 기댈 게 있다고 해도, 그 친구가 가진 인성과 상식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면 진정한 친구라고 부추기며 내 모든 걸 털어놓는 사이가 되기 본능적으로 힘들다.  국가는 개인의 발전이다.  나라가 가난해도 그 국가가 신용을 지키며 같이 사는 국제적 상식으로 다가올 때 우방국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나라들이 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해주었나가 국제 관계에서는 더 중요하다.  이것이 우방이고 국가 간 친구가 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개인이 다른 친구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친구를 버리는 일은 스스로의 존엄을 버리는 일이다.  국가라는 단위에선 권위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오랜 친구를 버리고 욕하고 그리고 나에게서 떠나주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친구가 오랜 친구보다 더 좋고 잘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랜 친구는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느라 형제와 자식을 잃은 친구고, 새 친구는 나와 나의 가족을 해쳤던 친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점은 이해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이어지는 정부들마다 그 방향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챙겨주고 더 살갑게 구는 것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이다.  기행을 일삼으며 나 혼자만의 삶을 유유자적 사는 고고한 학의 삶이 동경은 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아픈 친구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박애주의적 사랑이었다고, 그만큼 순수하게 새 친구를 대했다고 하더라도 내 가족은 그 새 친구로 인해 병을 얻었고, 생활은 말도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다 좋아질 거라는 그 말 한마디를 믿고 모든 것 다 내어준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눈에 보인다.  이 가장을 우린 아버지라고 부른다.  내쫓긴 옛 친구는 다른 친구들도 많았는지 나를 욕 하진 않았다.  특히 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일이라면, 내가 가장이라 부르는 내 아버지는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다.  국가에서는 한 국가가 가지는 격과 수준, 그리고 그동안 세계 속의 여러 나라들과 관계를 가져온 그 신뢰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과 같다.  개인의 존엄은 나의 문제이지만 국가의 권위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나온다.  만일 이것도 나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면, 그 위대하던 오만한 독재 국가들은 모두 지상 최대의 나라이며 누구나 칭송해야 마땅하다.  지난 수십 년의 신 국가 체제를 기억하라.  어느 특출난 국가 하나가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을 기준으로 삼은 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지 기억해보라.  지금이 만일 중세나 그 이전의 문화라면 스스로의 생활과 품격을 지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한 국가가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새 친구는 그럴만한 능력도 미래도 없다.  친구들이 없기에 그렇다.

질병 관리 본부의 캠페인 메시지가 기사로 나왔다.  최고의 공무원과 최고의 의료진을 가진 국가, 뜨겁게 움직이는 그 기운으로 바이러스를 물리치자는 캠페인이다.  최고의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공부 많이 한?  머리가 좋은?  또는 넘치는 정책 기획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공무원은 머리를 쓰는 직업이 아니란 걸 정말 모르고 있나.  공무원은 행정가이고, 관리자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닌 관리하는 자리다.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제안과 연구로 나온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시행사다.  공무원은 정직하고, 규칙과 절차를 준수하며, 다른 이야기를 듣고 종합하여 정리하는 자리다.  내가 뛰어난 머리로 남들 다 못할 것 같은 그런 일을 만들어서 국민을 안전하게 해주는 사람은, 국회의원, 정부의 수장, 그리고 학계와 민간의 전문가 들이다.  정신 차리자.  관리가 이름에 들어있듯이 관리를 잘하라.  질병을 없애고, 국민을 안심시키고, 생필품과 의료진을 조정하고, 더 나아가 희망까지 주는 게 질병 관리 본부라고 설마 착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으면 종교단체로 등록하라.  나는 그런 전지전능한 신을 내 눈으로 보면서 따르고 싶다.  나아가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공무원이다.  그래서 오히려 머리가 나빠도, 좀 느려도, 그 사람이 정직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직하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공무원이다.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 우습게 보는 다른 선진국의 느려터진 공무원들,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보이는 그래서 돌머리같이 뭐하나 기획도 못해 보이는 그 공무원들이 더 생산성이 뛰어나다.  더 단순하게, 더 룰대로만 움직여서 그렇다.

나는 개인의 존엄을 믿고 국가란 개인에게 부수적인 장식이라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사람들은 나 이전에 내 국가가, 국가라는 내 옷이 먼저 보이나 보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칭찬하던 북유럽 사람들, 자신들이 뛰어날수록 더 대한민국이 훌륭해 보이던 그 삶들은 현재 패닉에 쌓여있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 친구를 보고 보내는 우려와 정확히 같다.  오랜 친구들과 그 주변 친구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상식에서 대한민국은 국가의 권위를 스스로 던졌고, 난 혼자도 잘한다고 떠들고 있다.  그렇게 우정이라 믿었던 새 친구도 이젠 다른 맘을 보이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나는 슬프다.  내 이웃이 말도 안 되는 병으로 아파서 슬프고, 친한 친구들이 자꾸 날 떠나서 더 슬프다.  내 스스로의 존엄이라 항변하기엔 내가 입고 있는 국가의 권위는 이제 내 발밑으로 흘러가고 있다.  2020년 2월 말쯤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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