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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 스웨덴에 살며 느낀 북유럽의 가치

<스웨덴 스코네 지역의 일반적인 농가 주택 및 창고. 스코네랭가라고도 한다. /Conny Fridh/imagebank.sweden.se>

 

아래는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이다.  평소에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를 할수 있어서 감사하고, 이웃분들 모두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느끼면 좋겠다.  이어진 글은 조선일보에 제공했던 원고의 원본이다.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7/2015052702737.html

분리수거하는 국왕,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재벌… 여기선 일상

이종한 북유럽 커뮤니티 ‘노르딕 후스’ 대표

 

스웨덴에서 살며 느낀 북유럽의 가치

​북유럽 사람들을 처음에 의심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40년 넘는 삶과 비교해 너무나 다른,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도덕책 한구석에서 나올 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소신이라고 이야기하는 북유럽 친구들이 전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스칸디나비아에 갔을 때 단지 디자이너여서가 아니라, 최소한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을 주신 것에 신에게 감사했다. 우연한 기회에 북유럽을 방문했던 것이 우리 가족을 스웨덴에 붙잡는 계기가 됐다.

디자인 박람회에서 평소 좋아하던 유명 디자이너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그는 오히려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는지 놀라워하고 신기해했다. 그게 북유럽이었다. 남을 쉽게 동경하는 마음이라면 스웨덴의 재벌 가문이나 왕실 가족을 쳐다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겠지만, 그들도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일 뿐 나와 견주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국왕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가는 재벌이나 국회의원을 보는 건 이곳에선 놀라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딸아이와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면담하던 날이었다. 나의 역할은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증인’이었다.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무엇이 어려운지” “가장 궁금한 건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내가 끼어들어 대답하려 하자 오히려 “아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냥 듣자고만 했다. 여기선 아무도 누가 제일 성적이 좋고, 나쁜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경쟁하는 시상식도 없었다. 아이 성적이 몇 등인지 알고 싶어 하는 내게, 그 궁금증이 결국 우리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비로소 우리는 아이 능력과 꿈, 행복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경쟁이 없는 스웨덴의 학교가 낯설어 담임선생님께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스웨덴은 뛰어난 아이 한 사람을 찾기보다 대다수보다 뒤처지는 아이가 없도록 골고루 이끌어야 한다는 평등 교육을 실천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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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의 18세기까지의 옛날 항구. 현재는 관광용 여객선과 각 도서를 잇는 정기 여객선의 항구로 쓰이고, 수상 버스와 소형보트가 정박해 있다. /Ola Ericson/imagebank.sweden.se>

이러한 분위기는 협업에서도 반영된다. 이곳에서 협업은 존중을 의미했다. 핀에어 항공사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마리메코나 그릇의 이탈라, 의류의 H&M, 주방용품 회사 스텔톤 등 북유럽 거의 모든 회사는 작은 공방에서 협업하며 생산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한국에서 협업은 한국적 의미로 공동 작업이고, 어찌 보면 하도급 업무일 수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협업은 각자의 업무와 절차, 책임, 수익 등이 빼곡히 적힌 계약서를 의미한다. 그 계약을 또 공식화하고 보증까지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런저런 마찰로 산으로 가버린 이야기는 흔하다.

나는 늘 익숙해 있던 ‘재확인’이란 습관이 결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경험에서 온 결과라는 것을 배웠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약속의 확인은 매너이자 나를 지켜주는 분명함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매번 다시 확인하는 내게 북유럽 친구들은 “약속을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의아해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짓 없는 답을 전하는 북유럽 사회에 와서 약속과 배려의 의미를 처음부터 새로 배운 것이다. 구두 약속이라도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나라. 북유럽의 가치 중 하나인 배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문화적 가치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스케이트장에서 정해진 요금표를 보고 그만큼의 돈을 책상에 올려놓고 스케이트를 가져갔고, 박물관 출입구에서 입장권을 재확인하는 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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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가정의 단란한 식사 모습. /Melker Dahlstrand/imagebank.sweden.se>

1+1의 개념이나 묶음으로 사면 할인이 되는 개념은 이해되지 않았다. 친구 선물을 고르다 점원에게 “10개를 한꺼번에 사면 할인이 있느냐”는 미국식 질문을 건넸다. “곱하기 10이 필요하지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공짜라도 내게 의미가 없는 것이면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금은 살기 좋은 곳으로 동경받는 북유럽 5개국은 역사적으로 아주 외지고 척박한 그야말로 가난한 땅이었다. 어려운 시절부터 생활의 절제와 절약, 그리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 인력을 소중히 생각하는 평등과 존중이 항상 북유럽을 지켜주고 있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북유럽 전통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원한다. 긴 겨울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조명이 발달하고, 캄캄한 겨울 동안 밝은 자연의 느낌을 그 안에서 소중히 연출하는 공간이 우리가 열광하는 북유럽 인테어이다.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트렌드로 유행이 될 만큼 세계는 북유럽 디자인에 열광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그들 삶의 흔적이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상은 길고 어두운 겨우내 밝은 하늘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바람이다.

꿈 같은 햇볕과 따스함이 주어지는 여름에도 그들은 들떠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함을 나누며, 삶의 행복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 사회복지의 안락한 생활,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사회 분위기를 동경하기 이전에 그들의 모습을 이끌어 준 북유럽 사회의 마음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종한 대표(48)는 미국에서 영화와 모션그래픽 전공 후 LA 방송사에서 PD로 일했다. 그 후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3년 스웨덴으로 이사했다. 현지의 문화와 가치에 큰 영향을 받아 북유럽 문화, 이민 교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북유럽의 가치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스칸디나비아의 루크와 안젤라’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북유럽식 가치

우연한 기회의 북유럽 방문이 우리 가족을 북유럽에 붙잡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랜 해외 생활에도 불구하고 항상 무언가 정답같은 인생의 명쾌함을 찾는다. 나와 우리가족이 스칸디나비아에 갔을때 난 내가 디자이너일뿐 아니라 최소한 궁금증을 못참는 성격을 주신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다. 자연과 순박한 삶이 주는 축복과 그로 인한 무한한 만족, 내가 살아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존엄, 주변에는 온통 스칸디나비아 고유의 단순함과 그로인해 끊임없이 솟구치는 아이디어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의 문화와 사회의 가치를 더욱 배우며 단순히 북유럽의 문화도 하늘에서 어느날 갑자기 뚝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북유럽의 디자인을 조금 경험해본 분이라면 기본적인 시각적 요소로 이루어진 단순한 디자인, 기능성, 생동감있는 색감 등으로 대변되는 북유럽 디자인을 알 것이다.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트렌드로 유행을 일으킬 만큼 현재의 세계는 북유럽의 디자인에 열광하지만, 그런 뛰어난 디자인적인 북유럽 요소들은 모두 자연스런 그들 삶의 흔적들이다. 내가 스웨덴에 처음 간 여름에는 하루중 해가 20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백야가 여름을 즐겁게 놀게해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창을 완전히 막아주는 블라인드가 없으면 잠을 청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 백야를 처음 만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밤의 차분함을 느끼게 해주기 힘들었다. 반대로 겨울에는 점심시간이 되면서 벌써 어둑어둑 해지는 하늘을 본다. 캄캄한 밤하늘에 학교를 가고 다시 캄캄한 밤 속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눈보라까지 내리치는 날이면 아이가 돌아오는 하교시간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북유럽의 겨울은 잠시 놀러온 관광객들도 힘들어하는 춥고 어둡고 긴 시간이지만, 오히려 난 북유럽의 그 겨울을 제일 그리워 한다. 그 겨울동안 나는 나의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며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파트너로 일하던 사무실 빌딩에는 내노라하는 게임의 회사들이 입주해 있었다. 북미의 판매시장이 중요한만큼 미국의 엔지니어들과의 공동 작업도 흔히 이루어진다. 그들이 주로 업무에 열중하는 계절은 다름아닌 겨울이다. 미국서 건너온 엔지니어들이 처음에는 잘 적응을 하지 못하다가도, 한두번 프로젝을 겪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공통된 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나와 자주 수다를 떨던 미국 엔지니어는 겨울이면 아예 스웨덴으로 출장을 자원한다고 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겨울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면서 몇 달 걸릴줄 알았던 프로젝이 훨씬 효율적으로 끝나는것을 이젠 모두 즐기기까지 한다고 한다. 북유럽 사람들도 그런 겨울에 순응하며 그안에서 그들의 열정과 꿈을 만들어 간다. 오후부터 어두워 진다고 모두 집에서 일을 내려놓고 숨어지내지 않는다. 그들의 많은 열정과 집약적인 결과가 오히려 힘들어 보이는 겨울에 이루어진다. 아이들도 뛰어나가서 눈을 맞으며 신나게 놀고 있으며, 유모차의 갓난아이는 매일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선다. 어떤 모습의 자연환경이라도 그들은 즐길줄 알고 감사할 수 있다. 꿈같은 햇빛과 따스함이 주어지는 여름에도 그들은 들떠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함을 나누며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상은 길고 어두운 겨울내내 밝은 하늘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바램이다. 미니멀리즘, 기능주의로 말하는 그들의 단순한 디자인은 바이킹 시대를 거치면서 겪어온 그들의 절약 정신과 무언가 부족함에 오히려 작은 것도 고마워하는 전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기좋은 곳으로 동경받는 북유럽 5개국은 역사적으로 아주 외지고 척박한 그야말로 가난한 땅이었다. 어려운 시절부터 생활의 절제와 절약, 그리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 인력을 소중히 생각하는 평등과 존중이 항상 북유럽을 지켜주고 있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북유럽 전통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원한다. 1+1의 개념이나 묶음으로 사면 할인이 되는 개념은 이해되지 않는 곳이다. 친구들의 선물을 고르던 난 점원에게 10개를 한꺼번에 사면 할인이 있느냐는 미국식 질문에 그 점원은 곱하기 10이 필요하지 무엇이 더 필요한가 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공짜라도 내게 의미가 없는 것이면 북유럽인들은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하는 디자인도 각각 최상의 기능과 효율을 가진 필요한 요소들로만 이루어진다. 미니멀리즘과 기능주의의 북유럽 인테리어 공간은 적재적소에 맞는 쓰임새와 아이디이어가 고려된 최소한의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긴 겨울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조명과 캄캄한 겨울동안 잊혀지는 밝은 색상과 자연의 느낌을 그 안에서 소중히 연출하고 간직하는 공간이 우리가 열광하는 북유럽 인테리어이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이라기 보다 북유럽 인테리어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 생활에 표현된것에 불과하다.

모두 둘러앉아 평등하게 식사를 함께하는 뷔페식사는 바이킹들의 선상 식사법이었고, 혼자 모든 생산을 할수 없어서 자연스레 서로 도움을 주며 생겨난것이 협업, 즉 컬래보레이션이다. 디자인의 단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손이 필요하다. 의상, 제품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요즘 유행하는 게임이나 컨텐츠의 디자인도 그렇다. 핀에어 항공사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마리메코나 그릇의 이탈라, 의류의 H&M, 주방용품 회사 스텔톤 등 북유럽 거의 모든 회사는 작은 공방을 시작으로 협업을 통해 생산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에서 작은 공방을 통해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는 박람회를 경험하였는데, 서로간의 흩어져 있는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들이 그곳에서 만나 생산과 판매로 이어지는 컬래보레이션의 무대였다. 내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의 회사들도 모두 작던 크던 협업이 이루어 졌다. 협업은 한국적 의미로 공동작업이고 어찌보면 하청 업무일수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협업은 각자의 업무와 절차, 책임, 수익 등이 빼곡히 적힌 계약서를 의미한다. 그 계약을 또 공식화하고 보증까지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결국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서로의 업무를 다른 문제없이 잘 끝내는것이 최선일 테지만 이런저런 마찰로 산으로 가버린 이야기는 흔하다. 북유럽에서 협업은 존중을 의미한다. 평등을 바탕으로한다. 너와 나는 다를 바가 없고, 너보다 내가 나을것도 없다는 확고한 관념이 자리잡았다. 그곳에서 협업으로 한다는 일은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개성을 지켜주는 배려이며, 바로 그런 마음이 협업을 통해 완성된 북유럽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끌어주는 힘이란 것을 알았다. 약속과 배려의 북유럽에서 나는 늘 익숙해 있던 “재확인”이란 습관이 결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경험에서 온 결과라는 것을 배웠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약속의 확인은 매너이자 나를 지켜주는 분명함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매번 다시 확인을 하는 내게 북유럽 친구들은 “약속을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의아해 하였다. 사배려나 의미없이 바로바로 내뱉는 상대방의 반응을 오히려 믿고 안심하던 내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짓없는 답을 전하는 북유럽 사회에 와서 약속과 배려의 의미를 처음부터 새로 배운 것이다. 구두 약속이라도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나라, 북유럽의 가치중 하나인 배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의 바탕이 없으면 절대 나올수 없는 문화적 가치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스케이트장에서 정해진 요금표를 보고 그만큼의 돈을 책상에 올려놓고야 스케이트를 가져가며, 박물관의 출입구에는 입장권을 재확인하는 인력이 필요없는 사람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 딸아이와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면담하던 날, 나는 그저 담임 선생님과 딸아이의 대화에 함께 초대받은 증인으로만 참여한 경험을 했다. 언어와 교육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스웨덴의 첫 학교에서 나와 딸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과 딸 그리고 내가 참여한 첫 면담은 딸아이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학교에서 무엇을 좋아하고 어려워 하는지, 스스로 어떤 궁금한 점들이 있는지 등의 여러 질문이 선생님과 딸사이에 대화로 이어질뿐 나는 아이의 부모로서 들어주고 참고하는 분위기였다. 선생님의 질문에 내가 끼어들어 대답을 하려하자 오히려 내게 딸아이의 의견과 대화가 가장 중요하므로 우선 아이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자는 선생님의 조언이 이어졌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의 교육 시스템중 가장 큰 목표는 모든 일상의 문제나 현상을 자신이 스스로 받아들여 생각해보는 내면화이다. 즉, 각자의 맘속에서 부터 이해되고 받아들여 진 후 의미나 가치를 인정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같은 질문이 주어져도 생각중 답이 나올수도, 안나올수도 있고 각각의 개성에 따라서 전혀 엉뚱한 답이 나올수도 있다. 이 내면화의 목적은 주어진 모든 문제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생각해보고 책임지는 습관을 어릴적부터 익히는 것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스웨덴의 학교에서 놀랍게도 눈싸움은 금지사항이다.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눈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무조건 “하지마”란 명령이나 반복학습을 택하지 않는다. 눈싸움이 어떤 나쁜 결과를 줄 수 있는지,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를 줄 수 있는지 등을 아이가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가르친다. 마음에서부터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학습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에 열광하지 않는다. 아무도 누가 제일 성적이 좋고, 나쁜지는 궁금해 하지 조차 않는다. 각자의 아이는 서로 다른 능력과 모습을 인정받고 각자의 길로 걸어가는 교육을 받는다. 내 아이의 성적이 몇등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내게 북유럽의 학교는 성적도 없고 경쟁을 하는 시상식도 없었다. 결국 그동안 나와 아내는 우리의 궁금함과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아이의 성적이 궁금하였음을 느끼고 난후, 비로소 우리는 아이들의 가진 능력과 꿈, 행복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경쟁이 없는 스웨덴의 학교가 낯설어 담임선생님께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스웨덴은 뛰어난 아이 한 사람을 찾기보다 대다수보다 뒤쳐지는 아이가 없도록 골고루 이끌어야 한다는 평등 교육을 실천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사람으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북유럽에서 개인의 성공이나 행복을 획일적인 잣대로 측정하지 않는다. 특히 개인마다 다 다른 행복과 성공의 이야기를 타인의 시선과 잣대로 평가되는것을 불편하게 여기며, 각자 스스로 나만의 행복을 찾길 원한다. 국가는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여건을 마련해 주고,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 비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만족만이 가장 중요한 일하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어느 직업이든 스스로 만족하며, 가족과 함께 자연을 즐기고, 휴가나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남들과 더불어 서로 존중하며 평등하게 살길 원한다. 개인 그리고 가족간의 하루하루 행복이 최우선이며 그 첫번째 행복을 희생하며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굳이 물질적인걸 하나 꼽는다면 외진 시골에 여름 휴가철을 위한 작은 오두막집을 갖거나 겨울철 따뜻한 곳으로 여행가는 여유를 바란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도 사회적 관심과 우월감은 생기지 않는다.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목표와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자인 박람회에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유명 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냈지만, 그는 오히려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는것에 놀라워 하고 신기해 하는 모습이 평범한 친구 같았다. 남을 쉽게 동경하는 마음이라면 스웨덴의 재벌가문이나 왕실가족을 쳐다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겠지만, 그들도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일뿐 나와 견주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국왕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가는 재벌이나 국회의원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북유럽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스타일뿐 아니라 생활에서조차 단순하고, 사고마저 단순하게 살아가는 북유럽 사람들을 처음에 의심했다. 북유럽을 알기전 내가 배우고 산 짧지않은 기간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했던 나와 내 주위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도덕책 한구석에서 나올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소신이라고 이야기하는 북유럽 친구들이 전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유럽에서 그곳의 삶을 마음으로부터 알아가다보니, 그 너그러운 자연의 품과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인간이라는걸 느끼고, 그런 다음 어떤 모습으로 나의 인생을 바라볼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물었을때, 바로 내 입에서 북유럽친구들이 말하던 그 이야기가 스스로 튀어나오는걸 경험하고 놀란일이 있다. 북유럽에 관해 궁금했던 모든 정보를 다 주어도 북유럽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가치를 나의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내면화가 되어야 자신에게 도움이 될것이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 사회 복지의 안락한 생활, 서로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사회 분위기를 동경하기 이전에 그들의 모습을 이끌어 준 북유럽 사회의 마음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회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북유럽 문화와 이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때마다, 나는 우리 각자가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포용력이 가장 큰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누구나 평등하게 대하는 배려는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북유럽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북유럽의 가치와 행복은 그런 마음안에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지켜지고 있고, 비로소 나도 나만의 행복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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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리, 이종한
Nordikhus.com
네이버 블로그, 스칸디나비아의 루크와 안젤라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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