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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생각하는 다홍치마와 상대적 비교

Photo by Mstyslav Chernov / wikimedia.com

어제와 오늘 기사에서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동안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에는 한국이 북한보다 오히려 살기에 힘들다는 고민이 있다고 한다.  또 시리아의 난민으로 우루과이에서 난민 지위가 인정되어 정착한 사람들 중 일부는 너무 살기가 힘들다며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도 실렸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나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적이라는 말의 큰 영향력도 되새기게 되었다.  입장과 환경은 조금 다르지만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정착한 이민자들과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환경은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다.  그중 한둘씩 섞여있는 고위직, 부유층의 욕심은 오히려 기사화되지도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팍팍함을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해도 모두 고위직 부유층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자유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사회적 경쟁, 본인의 능력, 타인과의 상대적 생활 비교 등 여러 가지 자유 경제체제의 가치들을 습득하고 나서 본인이 그에 미치지 않음을 깨닫고 보니, 그냥 그런 북한이 오히려 편하지 않겠는가 하는 회고일 것이다.  우루과이는 좀 사정이 다르다.  난민 중 고위 부유층들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 자리를 잡았다.  남미의 가난한 나라 우루과이에는 무언가 기대고 비빌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처음에는 우선 생사를 건진 선택 없는 정착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문화에 정착한 난민들과 정보교환을 통해 나는 무언가라는 후회와 그 나라에 대한 동경이 또 일어났을 것이다.

​사실 탈북자나 우루과이의 시리아 난민이 얻는 정보는 틀린 것이 많다.  다른 나라가 천국도 아닐 것이고, 북한으로 막상 다시 간다 해도 본인의 위치는 보장되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떡을 모두 바라보는 정신적 어린이들이다.  이는 과거의 목적과 이유를 모두 잊고 다홍치마 만을 찾아다니는 욕심쟁이들이다.  그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미안하지만 없다.  그들에게 지상 최고의 복지와 장기간의 유급휴가, 환경, 교육 시설 등을 마련해 준다면 만족을 할까.  나는 절대로 만족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과의 비교나 어쩔 수 없는 타협으로 마지못한 인생을 산다면 지구 상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Sawssan  Abdelwahab, who fled Idlib in Syria, walks with her children outside the refugees camp near the Turkish-Syrian border in Yayladagi Photo by  Zohra Bensemra / REUTERS

​스웨덴에서 많이 들은 질문은 “살기 좋은 미국에서 왜 오셨어요”였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좋은 나라들 다 살아보셨는데 왜 한국에 오셨어요”이다.  이 질문의 바탕에는 “한국은 아직 안 좋아요”가 깔려있다.  탈북자나 난민들이 그 나라를 떠날 때는 도착지에 대한 무지개 꿈이 있다.  왜 무지개 꿈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현지보다 못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본인의 미련을 버리려는 보호장치 일수도 있다.  그곳과 정을 떼려는, 그래서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는 희망일 수도 있다.  힘든 환경은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받는다.  고통이지만 얼마 지나면 잊어버리는 인간의 시스템이 과거 생각하기 싫은 것들을 떠나 금방 새로운 곳에 적응하게 만들어 준다.  빠른 적응은 비록 본인이 스스로 능력자라 생각하지만 단지 화학적 시스템에 의한 반응에 불과하다.  지극히 감성적인 비교와 선택이 어우러진 결정이다.  이는 지능이나 적응력과 관계없는 잔머리이다.

​개구리는 올챙이를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큰 변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지난 일을 선택적으로 잊을 수 있는 기억의 지우개라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적응하고 살고 느껴야 할지 항상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이민자들은 그들과 비교 불가의 환경이다.  그렇다고 사고의 수준마저 비교 불가는 아니다.  지내는 매 순간마다 북유럽을 외치는 유럽 내 한국인들도 보았고, 미국을 치켜세우는 캐나다나 호주 이민자들도 수없이 보았다.  그들을 서로 바꿔주고 싶은 생각도 했다.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리려는 생각은 비겁하지만, 큰 고통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고 나를 지키는 정당성이다.  나는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탈북자나 난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생각과 이민자들도 다홍치마와 이민지 비교 쇼핑을 하는 순간에는 어느 나라에도 만족하지 못함을 느끼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단지 커다란 이슈에만 생각나는 일은 아니다.  매 순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홍치마가 아닌지 나 자신도 돌아보게 한다.  세상에 다홍치마는 없다.  없는 다홍치마를 찾아다니는 우매함보다 세상의 중심을 나로부터 시작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해외로 발을 넓히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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