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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의 관점에서 본 박항서식 인생 2막

Photo by Henrik Trygg / imagebank.sweden.se

나는 이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개인 또는 가족이 해외의 문화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것.”  장기간은 현지에서 생활하는 기간이며, 상식적으로 1년 이상을 의미한다.  영구히, 또는 반드시 가족과 같이, 한번 떠나면 못 돌아올 것 같은 이별 등은 아주 큰 오해다.  삶의 움직임이 많고 넓어진 요즘의 생활은 흔히 국가나 문화를 넘나들기 일쑤다.  우리의 굳어진 상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아시안게임의 축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내놓는다.  다음에 한국 팀이 만나게 될 베트남의 대표 팀 감독으로 박항서란 인물이 있다.  그는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히딩크를 떠올리게 만든다.  2002년 한국 월드컵을 빛나게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의 한국 팀 수석 코치로 알려졌고, 그의 친숙한 아저씨 같은 외모만큼이나 그의 웃음을 사랑했다.  그리고 관심 있는 사람들 아니면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U-23 대표 팀 감독과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무 감독과 한국에서의 마지막으로 창원시청 축구단의 지도자를 지냈다.  감히 나는 박항서의 인생을 히딩크 전과 후로 나누고 싶다.  물론 89년 안양 LG와 94년 대표 팀의 트레이너를 지냈지만 그의 지혜는 한국 안에서 머물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국대 인맥이다.  그가 인맥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그 판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지도력과 능력이 발휘되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는 보았을 것이다.  세계적인이라는 말이 붙은 지도자들은 거들먹거리며 푹신한 소파에서 손가락질이나 하는 것이 아니란 놀라움과 함께, 직접 뛰고 더 일하고 더 선수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직접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진 철저한 분석, 데이터의 활용, 자상함, 개인적인 신뢰 등으로 박항서 개인의 능력 또한 훨씬 향상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하기에는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함을 빠트렸다.  머리로 느끼고, 다 알고 마치 히딩크의 분신 정도로까지 자신을 착각할 순 있었지만 현실에서 다가온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은 히딩크가 아니다였다.  주위 누구도 히딩크를 대하듯, 히딩크에게 준 신뢰는 고사하고 2인자의 대접도 없었을 것이다.(한국 회사와의 회의에서 외국인이 참석했는가, 안 했는가의 차이는 크다.)  그는 나중에 선수 출전권마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고, 산으로 들로 구보를 따라다니는 월급쟁이로 전략했다.  그리고 아마추어 수준의 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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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경쟁이 심하고, 문은 좁고, 나이는 들고.  그래서, 그래서 자신보다는 환경이 싫어지고 그렇게 한국 또한 떠나고 싶은 게 이민의 시발점이다.  이해한다.  노르딕후스에서 아무리 이민을 생각하기 이전에 내 목적을 생각하라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등 따습고 배부를 때 다른 도전을 하는 사람은 참 없다.  그래서 목전에 가서야 이민도 생각하는 것이고 사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어찌 보면 다행이다.  박항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축구뿐이었으니까요.”  여기가 박항서의 인생 2막이 결정된 순간이다.  지치고 힘들 때 나를 이루는 단 한 가지를 잊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같이 떨어지는 15년간 히딩크는 되고 나는 안되는 그 이유를 수없이 되새겼을 것이다.  그 결론이 “나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겠다.”였다.  박항서가 가진 무기는 히딩크의 전략적 우수함, 용병술, 자상함, 애정, 신뢰의 가치에 한국적인 “같이 가는” 정을 섞은 것이다.  더하여 외로움을 겪은 인간의 성숙함, 겸손함, 그리고 가장 큰 절박함이 있었다.  그가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특징에 대한 데이터를 만든 일이다.  그리고 문화적 개인주의를 함께하는 신뢰로 바꾸었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개개인에게 맞는 충고를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한국 음식을 거부하고 선수들과 같이 밥을 먹었으며  국가로부터의 격려금을 선수들과 똑같이 나누어 썼다.

너무 인간적이라고 느낀다면, 북유럽의 바이킹이 천 년 전에 이미 실행한 이야기를 잊은 게 분명하다.  팀웍은 개인에게서 나오며 그 개인 간의 신뢰는 필수적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가치를 박항서는 깨달은 것 같다.  그가 한국에서 아무리 해도 안되던 히딩크의 마법은 베트남에서 깨어났다.  왜냐하면 박항서가 베트남에선 히딩크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뢰는 선수의 자신감으로, 할 수 있다는 여유로 나타났고, 박항서의 전술, 엄밀히 말하면 히딩크에게 배운 기술을 양념으로 더했다.  아주 살짝만…  재료가 양념을 쭉 빨아들이듯 효과는 지대했다.  나는 그의 꿈을 이해한다.  그리고 어찌 되든 그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이미 정한 사람이다.  박항서의 마음은 이미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베트남이든 한국이든, 또 아프리카 어디든 그의 인생은 행복을 향해가는 그냥 길일뿐이다.  이것이 이민의 이유다.  내가 사랑하는 목표를 향해 걷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기착지.  그곳이 이민해야 할 나라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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