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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놀음의 선진국은 무의미하다

Photo by Niclas Jessen / VisitDenmark.dk

한국 문화를 비평해봐야 내 얼굴에 침 뱉기란 걸 안다.  한 뉴스에서 각 선진국들의 시민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모습이라며 보여준 뉴스가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중산층은 악기와 외국어를 하나쯤 알고, 이웃을 위해 요리와 봉사를 할 수 있는 정도라고 표현했다.  영국에서는 페어 플레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가지며, 약자를 돕는 사람, 그리고 미국에서는 자기주장을 가지고 약자를 생각하며, 비평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대비되는 한국에서는 빚없는 30평 아파트와 500만 원의 급여, 중형 차, 1억 원 이상의 은행 잔고를 말했다.

이 단편만 생각해서 국민들이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한심하게 느꼈을까 싶다.  과연 그럴까.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은 그 나라들의 시민의식 수준은 우리가 영원히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통계의 오류를 믿지만, 거짓 뉴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좀 극대화된 과장의 모습쯤으로 받아들인다.  난 여기에 북유럽의 중산층을 더하고 싶다.  아무리 북유럽의 이런 중산층 조건들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가 정답이다.  일과 개인의 행복을 조절하며, 이웃과 약자에게 봉사하고, 여름 별장 하나쯤을 가진 사람이라고 난 북유럽 중산층을 보고 싶다.  위의 선진국들과도 더 괴리가 생긴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이다.  내 북유럽 친구들은 거의 이 모습에 가깝다.

이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며 오히려 한국 문화가 속물이 아니라 순진하단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 문화들은 경제의 숫자놀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부자동네가 인심이 오히려 좋다.  우리가 생각하는 돈만 아는 속물 재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다.  원래 부자들은, 돈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것에 연연해 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이것은 한국의 이야기다.  사람 사는 다른 문화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게 큰 다름이긴 하지만…  현재의 선진국은 수백 년 또는 그 이상의 경제적 부유에서 기초한다.  미국은 신생국이지만 유럽 문화를 베낀 카피캣이다.  그래서 유럽의 사고를 짜 맞추고 베껴온 문화의 복제를 했다는 점에서 유럽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부와 사고의 단절을 설명하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이야기한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더 이상의 과거로 마져 거슬러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수 있다면 고려 시대쯤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온몸으로 겪었다.  북유럽은 더 심한 구 소련과의 전쟁, 시민전쟁 등 한국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시기들을 보냈다.  이것도 단절이다.  구세대, 사건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단절이다.  이것을 극복한 사고는 “존중”이다.  남을 인정한다.

왜 유럽에서 얼마나 돈이 있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지, 남을 돕는 것이 왜 각 선진국들의 문화에 조건으로까지 남는지를 설명하려면 내 마음을 오픈해야 한다.  그 돈 따지는 초 자본주의의 미국 문화에서 그렇게 많은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계를 이끌만하다는 고대 지식인의 문화였던 중국과 한국에서 아직까지 내 주머니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부르는지 잠시 생각해야 한다.  “싫다.  남과 생각하든 말든 내 맘이다.  왜냐하면 내가 옳으니까.  그렇게 겪었고, 들었으니까 옳다.”는 현재의 한국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식과 독선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도 크게 공감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식은 지식과 학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현명함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쉽다.  그렇게 판단하고 넘어가는게 내가 편하고, 한 단편의 사고를 할 내 깊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럽 문화의 단절은 세대 간에 이어질 수 있었어도, 한국은 그렇지 않았던 이유다.  그 근거는 한국 문화의 책 읽기, 학습량, 시민 교육기관의 숫자, 여가 생활의 다양성, 자신감과 가정에 대한 사랑 등으로 선진국과 비교해보라.  대학을 졸업하고, 40대가 되기 이전에 얼마나 공부를 하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라.  얼마나 많은 시간 시민 학교 등에서 수업을 했으며, 다른 외국어나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해 보라.  이것들 다 이전에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을 바꿀 수도 바뀔 생각도 없다.  내가 바뀐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경제력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든 척도는 돈이다.

미국에서는 죽은 사람도 돈으로 다시 살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행복은 돈으로 살수 있으며, 대부분의 나쁜 일은 돈으로 막는다는 사고를 가진 미국 문화다.  오히려 내가 얼마가 있어야 중산층이라는 그 가치는 너무 익숙하다.  그러나 이 조사는 경제조사가 아니라 내 삶에 맞추어진 질문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중산층으로써의 삶의 만족과 다른 계층의 만족은 다르다는 것도 인지했다.  소 시민으로써의 삶과 행복, 그리고 그것에 대한 사고를 이미 한 결과라고 느끼지 않는가.  언제부터인가 하면, 수백 년 전부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직접 해주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느낀 것이다.  프랑스의 악기와 요리를 보자.  얼마나 낭만적이며, 그 순간이 상상되지 않는가.  물론 이것을 할 수 있는 주방과 악기 레슨비와 식재료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연한 것 아닌가.  영국의 자기주장과 봉사, 미국의 비평의 마음 등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이야기한 북유럽의 조건은 내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난 믿고 있다.  그들이 일을 통해 행복을 얻는 삶을 이미 살고 있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가 얼마나 평범한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젊어서 산 시골의 오두막집을 수십 년 동안 계속 수리하고 고치는 그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난 직접 보았다.

사회적 소통 부재의 원인 중 하나는 세대 간의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정뿐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현 상태를 풍선의 내구성으로 폭발하려는 불만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막아내는 풍선은 한국 문화의 인내력일 수도, 또는 자신에게 올 손해를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세대 간의 단절로 좋은 점은 사회가 새롭다는 것.  항상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사실 수십 년 전의 조사도 중산층이란 말을 썼으며 가정의 인원수도 중산층의 조건으로 말했었다.  가전제품과 월급은 물론이고.  선진국의 문화에 숫자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먹을 만큼 사는 사람이 다른 곳에 삶의 가치를 둔다면 먹었는가 아닌가는 그저 인사에 불과해진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지도, 한국전쟁을 울겨 먹기에도 70년이 지났다.  난 그때의 선진국을 그리던 사고와 현재 사고의 차이를 모르겠다.  더 공부해야 한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바꿀 뭔가가 있다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런 경험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또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존중이다.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가 아닌 삶을 원하지만 스스로 기계가 편한 삶을 택한다.  대를 이어 그렇게 살고 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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