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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디자이너들이 과연 사회에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

Photo by Luke / NordikHus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를 싸매고 작업하는 세계의 모든 디자이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이것의 발단은 뉴스에서 나오는 외상 의료센터에서의 갈등이 시초가 됐다.  양측의 이야기가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생명윤리가 숫자보다 앞서야 한다는 선서에서의 도덕과 지속 가능을 이야기하는 현대 의료계의 모순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내 생각과 비슷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즐거움과 웃음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있다.  타이틀에 따라붙는 멋스런 이름뿐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정규 교육을 받고 각 분야의 산업에서 일하는 시각, 상품, 패션, 영상 등에서의 디자이너들은 한 번쯤 겪었거나 지금도 갈등하는 순수성에 관한 질문이 있을 것이다.  발전하는 시대에 맞추어 나가기에 디자이너라는 순수성이 정말 사회에 유용한 일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반문이다.

내 아주 가까운 어르신 한 분은 그야말로 평생을 디자이너라고 여기며 산 분이다.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듯이 그 순수성이 지나친 나머지 사업이나 경영에는 참 답답한 삶을 살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골방에서 그린 그림 위에 절망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  또 다른 방향에서는 디자인이란 학문을 경영이란 측면까지 포함시켜 디자인 관리라는 학문의 하나로 발전시킨 미국의 각 대학이 있었다.  이것도 이 십여 년 전의 이야기다.  디자이너가 창작의 작업을 하는 것과 아울러, 프로젝의 지속 가능성, 부가가치, 다른 산업과의 연계 개발 등 지금의 말로 하면, 스타트업과 특허를 포함한 지적 재산권, 그리고 디자인을 섞은 학문이었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렇지만 트렌디하고 변화를 먹고사는 디자이너들은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디자이너로서의 수명은 자신의 능력과 아울러 사회적 인식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이 변화를 좋아하는 관료주의적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낭비가 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송이나 영상 매체의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책임이라는 데스크로 승진하면 기획서나 예산에만 집중하거나, 이것도 싫증 나면 캐스팅이나 정치 같은 이권에 기웃거리는 현상도 있고, 칼럼이나 논설을 하는 소위 위원이라는 뒷방 어른이 됐으면서도 아직까지 현업에 남아있는 듯이 힘쓰는 철부지들도 나타난다.  그래서 순수 시각 디자이너들이라도 책임자나 디렉터의 자리로 승진하면 마치 자기의 연필 한 획, 카피 한 줄이 무슨 큰 영예라도 되는 듯이 호들갑을 떨어주길 바란다.

나는 자연스러운 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분야를 고집하는 디자이너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기에 맞지 않는 시간당 임금과 근무시간이 따로 없는 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면서도 왜 순수 디자인 일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한두 주 전 나와 일을 같이하던 핀란드의 리나와 통화를 했다.  새 프로젝 때문에 내가 먼저 한 연락에 대한 답이었는데, 자신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가 내가 요청한 일을 할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일보다 조금 더 디자인 관리의 업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구조가 좀 다른 북유럽에선 충분히 나오는 얘기이고 내 이런 생각도 이해되기 힘들긴 하다.  혹시 디자이너가 일이 줄거나 생활 보장이 필요할 땐 국가가 책임져 주니까 그럴 수도 있다.

노르딕후스에선 순수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연결하는 일 외에 브랜드와 라이센스를 사거나, 개발하는 3차 서비스도 하고 있다.  내 개인으로서는 항상 중개업자나 옛말로 브로커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가능한 프로젝의 큰 그림을 보고, 라이센싱이 한 단계거나 다음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내가 나서서 주선하진 않는다.  알량한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이라기 보다 내가 더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램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인 페어에서, 또 만나는 신인 디자이너들과 현업인 들로부터 지금 얼마나 노동력을 갈아 넣어 디자인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마치 이런 내 얘기는 배부른 투정같이도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디자인을 하다가 다른 분야, 다른 산업에 대해 더 확대된 디자인 연관 일에 왜 고민이 일어나는가 같은 얘기다.  마치 막내 피디가 승진하고 더 경험을 쌓아서 기획이나 예산업무를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그 염려에 나는 깊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평생을 살며 자신과 같이 변화한 디자인이나 예술 쪽의 한 경험이 지금 얼마나 남아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또 그렇게 변화와 사회 인식에 따라 우리들 주변의 모든 것이 바꾸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개인의 적성이나 애정 같은 직업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수백 명의 각 분야 디자이너들이 우글거리는 미국의 대형 디자인 펌에서 받은 감명보다 북유럽의 창고 스투디오에서 두세 명의 디자이너가 켜논 책상 램프에서 더 감동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감상주의자 일까.  할머니라 불리기에 충분한 디자이너들이 아직도 순수성을 가지고 일하는 그런 스투디오를 보고 싶은 건 내 욕심 때문일까.  순수성을 가진 영원한 전문가들은 정말 그들에게 관리와 변화의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선택만큼이나 순수한 마음 때문인지도 궁금하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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