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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와 한국의 세대 갈등론과 근본적인 노인 복지를 위한 개인주의

Photo by Helena Wahlman / imagebank.sweden.se

한국이 조금 늦었다.  세대 갈등 이론은 서구에서 이미 2010경에 시작되어 2014년경까지 무수한 소문을 만들던 이론이다.  한국에 조금 늦게 다가온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이 젊은 나라여서 그랬다.  그러나 최근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었고, OECD 국가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상위권이다.  이제 슬슬 입 밖으로 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지난 동안 한국 내 노인, 행복, 가족, 질병, 자산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설문조사의 대부분은 오류가 무척 많다.  말 안 하는 사회, 잠자코 있어야 중간이라도 가는 사회의 무서운 교육은 아파도 안 아픈 척,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체면치레에 수백 년이 흘렀다.  그 이유는 한국은 역사를 통틀어 국가가 개인을 앞서는 보편적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애국이고 희생이고 고귀하며 자랑스러운 대국적 가치로 교육받았고, 그렇지 못한 침착한 개인은 비겁자로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아니라고 정말 외치고 싶어도 한국의 집단 따돌림은 문화고 역사의 산물이다.  삶에, 그래서 섞임이 중요했고 미지근한 공자, 맹자의 비겁한 쇼를 천여 년 간 숭상했다. (학자로서의 존중과 그들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들과 같이 깊은 이론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

서구의, 특히 유럽에서 시작된 세대 갈등론은 노인과 청년의 갈등을 바탕으로 한다.  “화려하고 건강한 노인과, 삶에 찌들고 비참한 청년”으로 대비되는 사회의 모습에서, 조금 과장되어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갈등을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지 다루고 있다.  세대 갈등론은 문화를 바꾸어가며, 북유럽으로 미국으로 아시아로 퍼졌고, 그 이름도 세대 음모론이나 세대 전쟁론 같은 섬뜩한 이름으로까지 바뀌었다.  그러나 노령인구 증가와 청년 출산율, 실업률에 근거한 미래 갈등 예측이라는 면에서 비슷하다.  미국의 앙코르 재단은 노인 관련 연구 지원을 하는 신생 단체다.  2016년 발표한 조사를 보면, 인종과 이민의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을 문제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우려와는 반대로 현지에서는 생각한다.  북유럽의 이민자 급증과 그로 인한 갈등이 마치 사회 전체를 뒤덮는 것 같이 생각되고, 미국의 총기 문제가 전 사회에 불안을 심어주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그것은 좁은 소견의 탓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국민들은 갈등과 그 해결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경험들을 미래 국가 사회를 위한 장점으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36% 정도의 선택으로 떠오른 세대 갈등에서, 인종과 종교 갈등이 거의 과반을 차지했고, 부자와 빈자의 소득의 차이, 이민자와의 문화적 갈등이 거의 비슷한 선택을 받았다.  그다음의 가장 적은 수의 선택이 세대의 갈등으로 10% 미만의 선택을 차지했다.  나는 서구 문화의 세대 간 갈등은 비교적 갈등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의 갈등이 만일 더욱 붉어진다면 기존 가족 문화를 흔들 수도 있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왕이 부덕하여 기후가 좋지 않고, 질병이 생긴다는 소문을 믿는가?  때마다 하늘에 기우제를 올리던 풍습을 지금도 하고 있는가?  나는 기억한다.  지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비판의 시선을 보낼 때마다, 왜 이 정권에선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냐라고 비웃음을 보내던 세인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불이 나고, 태풍이 불고, 다리가 끊어지고, 배가 침몰한 것이 대통령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만, 하늘이 우주가 영험한 신력으로 나라를 지켜준다는 맹신에 비추어 보면 아직까지, 21세기의 첨단 ICT 산업에서도 점을 보는 앱이 있을 정도다.  이것의 예는 누구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그저 이벤트, 역사적 왕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병이 들고 치매가 걸린 것이 자식이 잘못 봉양한 것인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노인들과 세인들은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 자식들을 향해 경고성 언사와 꾸짓음을 보냄으로써, 혹시 자신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소리 내기”는 집단으로 일어난다.

서구 문화에서의 세대 갈등은 개인사다.  타인과 타인의 문제다.  모든 것이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해결할 수 있고 타협이 가능한 문제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문화 역사적으로 효도와 봉양의 멍에를 짊어지고 산다.  왜냐고 물으면, 나도 그렇게 살았으니까라고 답한다.  노인과 장년 사이의 봉양과 효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에 노인 복지는 있을 수 없다.  그저 효도 받지 못하는 불쌍한 노인들이 복지를 받는 것이고, 손가락질과 혀차는 소리 듣기 일쑤다.  자식은 자식대로 불효자에 부모 병을 만든 나쁜 딱지 붙히고 주위 욕은 들어 마땅한 사람이 된다.  실제 무수히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동안 사회 문제로 나타나지 않았던 건 창피함에 말 안 하고 속으로 끙끙대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치매가 최근 급증한 것과 정확히 같다.

노인 복지는 육체와 정신의 두 가지 측면이다.  밥 먹고 잠자는 것만이 복지가 아니다.  그들이 생활하고 서로 유익하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무엇이 행복할까?  무엇이 노인들을 편하게 해줄까?  돈과 건강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나도 수없이 많은 노인들을 관찰하며 많이 바뀌었다.  노인들은 돈과 건강을 넘어 중장년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이 있다.  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생활을 상상하면 그렇게 우아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없이 달려온 세대가 무슨 사회생활, 여가, 레저, 사교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떠든다.  떠들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떠든다.  그 일에 가장 큰 제물은 주위의 불효자 들이다.  내 자식이 그 욕을 듣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입을 닫는다.  그러다가 한둘 자식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노인들은 자유롭다.  혼자의 사회생활이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다.  자식도 마찬가지로 부모를 모시기에 힘이 부치지만 노인 요양 시설에 보내는 건 불효라 생각한다.  주위에서 눈치도 보인다.  그래서 노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생활의 관계가 노인이 되면서 끊어진다.  스스로 만든 오지랖에 자신이 밀려나는 꼴이다.

노인이 혼자만의 생활을 평생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강의 이유가 가장 크지만, 노인성 치매 같은 질병도 이유가 된다.  그 원인이 왜 자식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 요양병원에 가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요양 병원에 입주한 노인들의 자식들은 매일매일 지성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리지 않은 사람들인가?  부모는 50년 후 그 자식에게 받을 것을 계산하여 출산하지 않았다.  태어난 자식들도 앞으로 내가 짊어질 멍에를 상상하며 계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 상상의 계약은 한국 사회를 넘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낳고,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기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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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설문조사 중,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결혼과 건강, 그다음으로 자식의 행복과 경제적 안정>

 

노인들은 개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일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럴 일이 없다고, 그 병이 왜 내가 걸리냐고, 아무리 거부하고 소리 질러도 사람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그 늙음이란 현상에 자식이란 이유로 같이 끌고 갈 순 없다.  나는 현대판 고려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몇 세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은 드물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당연하다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 아파트든 요양 시설이든 노인들이 같이 사는 사회에서 이 같은 다른 점들이 결코 잘못이 아니라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주의는 개인을 위한 것이다.  자신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세대 갈등은 세대 간 서로 말이 통한다.  한국에서는 나 자신이기도 한 부모와의 연결선은 끊어지기 힘들다.  그래서 한편으로 문제 같지도 않은 일들을 상당히 괴로워하는 현상도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마치 기우제를 올리는 왕의 정치 쇼와같이, 마치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사람의 이미지와 현실과의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문제 해결 방법같이 문제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좀 당겨지려면, 노인들의 사회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그 사회생활이 노인 아파트나 요양 시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사는 보람으로 나타나야 한다.  자식과 같이 사는 대가족에 가사와 아이 보기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다들 그런 것 같이 알고 사는 노인들이나, 독거노인, 의료 시스템이 필요한 노인들도 모두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고가 생겨야 한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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