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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간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투명성의 관계

Photo by Morten Bjarnhof / VisitDenmark.dk

노르딕후스의 매달 모임에서 북유럽을 포함한 해외로 이주의 계획이 있는 분들께 그 이유를 물으면, 무엇무엇을 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가장 많이 들려온다.  그다음으로는 한국의 무엇무엇이 싫어서 벗어나려 한다는 답이 뒤를 잇는다.  그 싫어한다는 무엇에는 사람들 간의 관계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큰 비중이다.  어느 직장인들의 조사에서는 부서원들 간의 관계가 스트레스로 나타나고, 이 같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직장 동료뿐 아니라 친구, 친지, 부모, 가족 간에도 일어난다.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말하는 한 사람은 누구와 만나든 상대의 매출을 궁금해한다.  또 어떤 사업가는 어디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누구와 아는지를 궁금해한다.  21세기의 첨단 시대에 아직도 고위층이나 또 요즘 시사 포인트인 청와대(?)를 팔아 하는 얘기가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그런데 이런 것쯤은 다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사고가 전근대적일 수 있고,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 힘센 사람 옆에서 곁을 지키는 사업을 해왔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에는 사람마다 대하는 방법을 달리하는 생각도 해보고, 그 사람이 할 수 있을만한 대화나 화젯거리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머리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이런 부질없는 짓들도 꽤 효과적일 때도 있고 나를 우월한 대화의 위치로 만들어 줄 때도 있었다.  허세를 보다 고급 허세로 대하고 과장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술수였다.  이런 상황은 집단적인 그룹에서 흔한 일이다.  그래도 한 번씩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 관계가 힘들구나라고 느낀 적도 있다.  바로 가까운 사람 간의 관계다.  오랜 친구, 부모, 형제, 친척간의 관계는 너무 이해할 수 있는 사이니 그런 스트레스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더한 관계다.  오랜만의 명절 모임이나 동창회, 형제들 간의 회의 중에는 어김없이 불협화음이 들리고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모든 원인의 하나는 기대심이다.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줄 것이라는 자신의 지레짐작이다.  별로 좋지 못한 회사 동료와의 관계에 요즘 잘해주는 동료에게 잠시 호감이 생겼다가 본심을 깨닫고는 실망하는 일이라던가 나는 이만큼 했으니 상대도 이만큼 해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만의 형평 이론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 더욱 큰 실망을 한다.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세계의 사람 대하는 문화는 다르다.  사람 사는 곳이 똑같다고 내 스스로 말해도 그 바탕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상대를 미리 생각하고 나와 비교하여 생각하는 사고는 기대심을 만든다.  그렇다고 상대를 전혀 기대 없이 동물 대하듯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말하고 싶다.  이것은 투명성이란 말로 표현되고, 다른 말로는 솔직, 정직, 사실 같은 단어로 쓰일 수 있다.  이 같은 사고들이 모여서 사람 간의 신뢰라는 큰 가치를 만든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 상대를 미리 지레짐작하는 건 “오버”다.  그 사람을 오래 알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친척이라고 일방적인 신뢰의 기대를 갖는 것은 나의 사고 그릇이 아주 크거나 베푸는 마음이 기본이면 모를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대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각이 바뀌고 상대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된 “무조건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모든 희생과 자식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가 약할 뿐 나이나 건강, 큰 악조건에 들어가면 다 상황이 변하기 마련이다.  형제나 친척간의 솔직함은 믿어 의심치 않으나 그 투명성도 사람에 따라 정도가 있고 바뀌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투명하지 않게, 다른 말로 솔직하지 않고 속내를 숨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가까운 사람들도 그러니 다른 사람은 어떨까라는 의심을 바탕으로 하고 사람 만날 때마다 다르게, 나를 적당히 숨기며, 허세와 사실을 오가는 외줄 타기의 사람 관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사람 간의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그 이유가 이런 능수능란한 관계를 잘 못해서이거나 너무 순진하게 사람을 믿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것이 정답일까.  답은 없다.  불행히도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원초적인 물음에 답을 주는 철학자는 없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문화는 세계에 많다.  투명성을 가장 강조하는 북유럽의 생활 문화가 그렇다.

어느 글에서 한국의 누구나 투명한 사고를 한다면, 각종 사회문제의 거의 대부분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일이 떠오른다.  마치 신들의 사고를 모방한 허황된 얘기 같지만 이것에 가깝게 사는 북유럽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장사를 하는 가게 주인들도 투명한 경영과 사고를 한다.  이렇게 생긴 아주 작은 신뢰는 그 관계가 유지되며 점점 커지고, 기업 간의 나라 간의 신뢰로 발전한다.  한두 번 의견이 같다고, 의기투합하여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같이 먹었다고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그동안에라도 있을 수 있는 변화는 투명성과 연관되고 신뢰라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회사에서 동료를 대할 때, 친구나 친척을 대할 때, 부모를 상대할 때 투명하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어떻다고 그 자리에서 말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지레짐작하지 않아야 한다.  사업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중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포장 없이, 장식 없는 밋밋한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그것마저 말하는 것이다.  그 반응은 내 경험에 의하면 다양하다.  순박한 멍청이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겁을 먹는 사람도 있다.  어떤 대화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반응이 나는 어떻게 보인다고 다시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케미”가 안 맞으면 깨질 것이고 호기심이나 조금의 믿음이 생긴다면 진행될 것이다.  스트레스는 아주 적다.  나는 최선을 매 순간 다하고 있고, 그것도 투명하게, 상대를 인정하며 나와 같이 생각했으므로 더 이상의 아쉬움도 없기 마련이다.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바뀐다.  그 바뀐 모습이 잔상이고 현실이다.  이전의 그 모습, 한번 맺은 그 관계를 두고두고 기억하며 도원결의의 한 장면으로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가 아니면 어리석은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간의 관계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상대의 사실에서 정보를 얻고, 나의 솔직함으로 관계가 이어진다면 섣부른 기대나 관계의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투명한 삶의 방식은 결국 가장 나를 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연관 글을 참조 바란다.

북유럽 문화와 투명성의 관계, 그리고 개인의 삶
http://www.nordikhus.com/%eb%b6%81%ec%9c%a0%eb%9f%bd-%eb%ac%b8%ed%99%94%ec%99%80-%ed%88%ac%eb%aa%85%ec%84%b1%ec%9d%98-%ea%b4%80%ea%b3%84-%ea%b7%b8%eb%a6%ac%ea%b3%a0-%ea%b0%9c%ec%9d%b8%ec%9d%98-%ec%82%b6/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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