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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자연주의 디자인, 자연을 어떻게 즐기고 소유하나

북유럽의 나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자연의 이미지와 자꾸 겹쳐진다.  북유럽의 여러 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갑고 시원한 공기나 드넓은 숲, 흰 눈이 덮인 오솔길 등이 북유럽의 나라들과 함께 연상이 될 것이다.  비록 북유럽의 나라들은 아니라도, 유럽을 포함한 서양과 한국, 일본 등의 아시아의 국가들도 자연과 호흡하며 함께 살아가는 데에 큰 이견이 없다.  인간이 자연을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인간이 바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 주의자들은 자연에 의한 지구의 질서와 역할에 순응할 것까지 생각하지만 현대적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 자연의 역할과 존엄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랜 삶을 통해 인류사를 지켜오면서도 항상 자연을 이용하고, 소유하며, 한편으로는 순응하며 살아왔다.  순간적인 시기에 전쟁과 개발로, 또 자연의 인간에 대한 복수로 인간이 자연을 소홀히 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인간은 그럴 수도 없고 의지도 없다.  오히려 인류가 발전할수록 더욱 자연에 의존하고 치유를 받는 현상이 많아지는 것이다.

북유럽의 자연은 인간과 많이 닮았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푸근하고, 친근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은 낮고, 구름은 변화무상하게 움직인다.  바람, 비, 눈이 쉴 새 없이 바뀌는 계절과 계절의 사이도 그렇고 넓은 평지 뭐하나 심고 싶어도 발에 치이는 돌덩어리 땅인 것도 답답하게 만든다.  북유럽의 사람들도 우리의 눈으로 보면 상당한 거리감이 생긴다.  큰 키에 유난히 흰 피부색도 그렇고 찔릴 것 같은 높은 콧대도 친근함과는 거리가 있다.  미대륙 사람들의 친근한 인사도 없고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북유럽의 자연과 사람들은 이웃, 옆집에서 흔히 만날 것 같은 모습들이 아니다.  그들도 그들의 자연이 지중해나 카리브해의 쏟아지는 태양의 축복이나 무엇이든 다 줄 것 같은 열대의 풍성함과 다른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북유럽 척박한 자연에서 주는 모든 수확이 고맙고, 그 맛은 몹시 자연을 닮았다.  어떤 과일 하나, 농작물 하나 눈이 돌아가게 자극적인 게 없다.  아무리 링곤베리 잼을 빵에 퍼부어도, 그저 달달할 뿐이다.  아침 인사로 아무리 겪은 이웃이어도 살갑게 맞이하는 인사는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순진할 정도로 이웃과 친구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인다.  같은 땅 같은 곳에 같이 사는 사람이란 동지애가 상당히 강하다.

오랫동안 북유럽 사람들은 그들의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경 보호의 측면뿐 아니라 생존의 문제같이 자연을 대하고 살아왔다.  그들이 유럽 대륙에서의 예술이나 디자인을 들여왔을 때에도 그들의 자연과 환경에 맞게 손질하였고,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하며 이용하던 기술력이 결합된 순간이었다.  북유럽의 디자인이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북유럽 디자인은 기능주의와 단순함,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내세웠다.  자연 친화가 무슨 말인지 모를 시절이었고, 왜 넘쳐나는 임업 자원을 그것도 왜 북유럽이 보호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단순 제품과 가구뿐 아니라 북유럽 사람들의 주택, 공원, 건물, 도로 등 여러 인공적인 건축물에 자연주의적인 철학이 접목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느 주택 단지라도 걸어서 몇 분이면 자연을 만나고, 그 자연 또한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래서 미국이나 아시아의 계획도시 내 주택, 공원, 건물의 인공 자연에 비해 유지 보수의 노력이 거의 들지 않는다.

전에 비해 세계의 트렌드는 자연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건축의 경우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어도 자연 친화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시공되고 있으며 주위 환경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노력을 한다.  외형뿐 아니라 공간 내 자연을 느끼기 위해 가구, 소재, 인테리어 소품 등에 자연 소재이거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트렌드로 이미 전환되었다.  이 밖에도 음식, 패션, 미디어 업계의 자연 관련 화두는 항상 관심이 있다.  이제는 자연을 인간이 왜 보호하고 즐겨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떻게 영구히 인간 주위에 자연을 공생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국과 같이 그리 넓지 않은 북유럽의 주택 내에서도 자연 친화적 소재나 화분 같은 식물은 존재하지만, 집 앞이나 이웃 공원에 있는 자연과 그것을 즐기는 노력은 한국과 참 다르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 한구석에도 나무를 심고, 아기자기 가꾸는 것이 당연하고 동네의 모든 도로에 차가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발전 시기를 의도적으로 겪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폴 등은 우리 주위에 원래 있던 자연을 망쳐놓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자연을 멀리하게 만드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자연을 그들에게 다시 있게 하는데 또 몇 세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자연을 우리가 소유하는 방법은 자연과 같이 사는 것이다.  소나무향 진한 숲 속의 경치를 어느 한 곳에서만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 앞 동네 공원에 작지만 소나무향 나는 숲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내 주차금지 표지판의 면적만 치워도 동네 텃밭 몇 개씩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의 도로에는 자연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더 답답해지고 더욱 여유가 없어진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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