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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역사, (4)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현대

북유럽 역사, (1)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바이킹 시대까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18

북유럽 역사, (2)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중세 시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22

북유럽 역사, (3)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근세 시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41

First World War

세계 제1차 대전중 스칸디나비아 3국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중립을 고수하였음에도, 영국의 독일 봉쇄정책에 따라 전쟁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 했습니다.  그러나 각국은 전쟁 중 주요 물자 공급라인을 맡아 연합군 측에 군수 물자를 조달하였습니다.  노르웨이는 큰 수송단을 보유하고 영국에 물자를 공급했는데 독일의 공격으로 선단에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덴마크는 광산지역인 Øresund, 외레순드 지역이 아직 독일의 영향 아래 있었던 까닭에 남부 Jutland, 유틀란드 지역의 일부 소수 민족 그룹은 독일군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전후 20세기 중반, 사회 민주당이 집권한 스웨덴과 덴마크와 노동당의 노르웨이는 정책적으로 복지 정책을 발전시켰으며 현재까지 그 기초는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Second World War

전쟁 초기 연합군과 독일 양쪽 진영은 서로 다른 쪽이 스칸디나비아에서 영향권을 갖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영국은 스칸디나비아가 전장이 되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독일의 침공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독일은 노르웨이의 철광석과 대서양으로의 직항로인 부동항을 갖기를 원했으며, 덴마크는 다음 목표였습니다.  몇 개월간의 침공 계획 후, 1940년 9월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동시에 침공합니다.

두 나라의 대항은 사뭇 달랐습니다.  덴마크는 침공 2시간 후 단지 16명의 전사자를 내며 항복합니다.  최소한의 사상자로서 전쟁을 막고 독일의 상당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정책의 덴마크와는 달리 노르웨이는 끝까지 저항합니다.  연합군의 지원 병력에도 불구하고 1940년 10월 국왕 Haakon 7세와 내각은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며, 노르웨이 군은 항복을 선언합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덴마크의 선택은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일로부터 최대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 왕권 및 정부 내각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독일은 북유럽과 아리아인들 같이, 덴마크를 같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국가의 하나로 취급했으며 실질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독일에 의해 덴마크의 정부는 와해되고 맙니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덴마크의 경우보다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독일 반대파들은 제거되었고, 정부는 붕괴되었으며 Nasjonal Samling,  National Unity, the Norwegian fascist political party라는 독일의 꼭두각시 정당과 내각 대통령이라는 베를린의 직속 하부기구를 두었습니다.  집권당이던 노동당은 나치의 엄격한 통제 아래 명목만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 노르웨이인들의 생산 활동은 굉장히 활발했으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아 이때 축적된 재원은 후일 국왕 복귀와 함께 이루어질 국가 재건에 큰 일조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역사학자들은 이 당시의 재원은 현재 노르웨이의 사회 기반 시설과 국부에 큰 기여를 했다고 여기며, 그 당시의 항해사 및 해운 관계자들은 노르웨이의 영웅이다 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독일의 침공을 피해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면에는 스웨덴 정부가 나치의 주목을 피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언론을 설득하여 나치에 관한 비판 기사를 없앴으며, 1943년까지 나치에게로 오가는 모든 물자에 대해 영토 내 통행을 허가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한편 연합군 측에도 때때로 물자를 공급했으며, 덴마크에서 피신을 한 유대인들에게 망명을 허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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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재건 기간

전후 스칸디나비아의 각국은 중립국의 표명으로도 국가의 안전은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Scandinavian Defense Union, 스칸디나비아 방위 연맹의 설립에 각국은 동의하고, 국가의 유지와 정책과는 별개로 3국에 대한 침공이나 외부 공격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공식 제안된 의견은 1948년 – 1949년 스칸디나비아 위원회의 결정만을 남겨놓고 있었으나, 미국과 소비에트 연맹과의 냉전과 그에 따른 North Atlatic Treaty Organization, NATO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각국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투표에서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NATO에 가입하였으며,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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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

북유럽 국가들은 1952년 Nordic Coundil, 북구 국가 연합, 2년 후에 Nordic Passport Union, 북구 여행 자유 국가 연합을 설립합니다.  1972년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처음으로 EU의 전신인 European Economic Community, 유럽 경제 위원회에 가입합니다.  1년 후인 1973년 스웨덴도 가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European Union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Euro에는 핀란드만 가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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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References

1. “Ukrainian Net”. The Outcomes Of Establishment Of Roman Catholic Church Structures And Church Power In Norway And Scandinavia. Retrieved 28 June 2005.
2. Ziemke, Earl F. (2000) [1960]. “The German Decision to Invade Norway and Denmark”. Command Decisions. CMH PUb 70-7. Retrieved 2 July 2005.
3. BYU History of Scandinavia
4. Derry, T.K. A History of Scandinavia: Norway, Sweden, Denmark, Finland, Icelan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79. ISBN 0-8166-3799-7.

5. H. Arnold Barton, Scandinavia in the Revolutionary Era 1760–1815,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ISBN 0-8166-1392-3.

6. Elise Charlotte Otté – Scandinavian History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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