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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역사, (3)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근세 시대

북유럽 역사, (1)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바이킹 시대까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18
북유럽 역사, (2)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중세 시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22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19세기 초의 나폴레옹 전쟁은 스칸디나비아를 편가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길 바랐지만 영국으로부터의 침입 이후 분쟁에 개입하게 됩니다.  첫 번째의 Battle of Copenhagen (1801) 이후 1807년의 재침공은 코펜하겐의 직접적인 폭격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와 군사의 대부분이 포로로 잡히는 결과를 낳았고, 이를 계기로 영국의 반대편인 프랑스에 동맹으로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영국의 동맹이었으므로 같은 시기 노르웨이로 공격을 하였으나 성공으로 이끌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후 영국과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Battle of Zealand, Battle of Lyngør, Battle of Anholt 등의 해전을 치렀으며, 영국의 해상 봉쇄를 뚫는데 목적을 둔 Gunboat War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해군력의 영국에 무릎을 꿇고 Heligoland를 영국에 양도하게 됩니다.

스웨덴은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1805년 3차 동맹에 가입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강압에 의해 프랑스의 편에 서게 되었으며 동맹은 위기에 빠집니다.  시기를 같이 하여 러시아는 스웨덴의 영토였던 핀란드를 침공하고 스웨덴에게 양도를 요구하게 됩니다.  튼튼하지 못 했던 Gustav IV Adolf 왕정은 그를 퇴위시키고 그의 숙부였던 Charles 13세를 거쳐, 적국 노르웨이 육군 출신의 Christian August of Augustenborg 왕자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사건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신 왕의 죽음을 뒤이어 스웨덴은 다시 한때 또 적국이었던 프랑스의 Jean-Baptiste Bernadotte를 차기 왕위 (Karl Otto Mörner)에 올립니다.  원래 나폴레옹 휘하의 18명의 장수중 한 사람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스의 반대편에 서서 노르웨이를 설득하고, 나폴레옹의 추격을 피하는 한편 Battle of Leipzig (1813) 이후 덴마크로 진격합니다.

Treaty of Kiel (1814)

키엘 조약은 덴마크로 진격한 스웨덴과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간의 조약으로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굴복하였으며, 덴마크는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대서양의 패로에 아일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그린란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이후 덴마크와의 연합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덴마크의 영향권 내에서 벗어나기로 하였으며, 국왕 Christian Frederik이 하야하고 스웨덴의 국왕을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인정했습니다.

19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산업화

산업화의 물결은 스칸디나비아에도 이어져서, 덴마크로부터 산업화를 맞았습니다.  작은 마을들은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20세기가 될 때까지 농업의 근대화와 낙농 유제품의 가공 처리는 계속하여 발전하였습니다.  스웨덴은 제1차 세계대전중 산업화를 맞았으며, 길게 남북으로 놓인 국토를 종단하는 철로와 도로 건설이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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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Scania의 덴마크, 스웨덴 대학생들에 의해 불거진 스칸디나비즘은 신화시대부터의 문화적 공통점, 언어의 동질성, 바이킹의 후손들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는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서로 통합하여 협력해야 한다라는 운동입니다.  실제적으로 정치, 군사적인 통합은 없었지만 많은 국민들이 이 운동에 동조를 하였으며, 현재까지 이런 풍조는 남아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 핀란드가 없는 이유는 원래 스웨덴의 영토였고, 그 후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으므로 스칸디나비즘은 핀란드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후일 이 운동은 스웨덴에 의해 Nordic Council, 북구 국가 연합으로 발전되고 이 연합에는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덴마크 영인 그린란드, 패로에 아일란드가 가입하였습니다.

1860년경부터 시작된 이민의 시작은 큰 인구이동을 가져왔습니다.  신대륙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란드 등으로 이어진 이민의 물결은 스칸디나비아 내 3백만 명이 넘었으며, 노르웨이는 가장 큰 인구감소를 가져왔습니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에서는 1850년 이후 약 80여 년간 총 인구의 30%가 떠나기도 했습니다.  주된 이민의 이유는 사망률의 감소로 인한 인구 증가입니다.

 

by Luke

 

References

1. “Ukrainian Net”. The Outcomes Of Establishment Of Roman Catholic Church Structures And Church Power In Norway And Scandinavia. Retrieved 28 June 2005.
2. Ziemke, Earl F. (2000) [1960]. “The German Decision to Invade Norway and Denmark”. Command Decisions. CMH PUb 70-7. Retrieved 2 July 2005.
3. BYU History of Scandinavia
4. The Legend of Bonaparte

5. The Napoleonic Wars Exhibition held by The European Library

6. 15th Kings Light Dragoons (Hussars) Re-enactment Regiment

7. 2nd Bt. 95th Rifles Reenactment and Living History Society

8. “Pan-Scandinavianism”. (2007). In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April 29, 2007, from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9. The Literary Scandinavism. Øresundstid, 2003. Retrieved 6 May 2007.

10. Ola Tunander (1999). “Nordic cooperation”, UDA085ENG. In Nytt fra Norge, ODIN – Information from the government and the ministrie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Norway. See also Tunander, Ola (1999). “Norway, Sweden and Nordic cooperation”. In The European North – Hard, soft and civic security. Eds. Lassi Heininen and Gunnar Lassinantti. The Olof Palme International Center/Arctic Centre, University of Lapland, 1999. pp. 39–48. ISBN 951-634-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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