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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역사, (2)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중세 시대

북유럽 역사, (1) 개요 및 역사의 흐름 – 바이킹 시대까지  https://www.nordikhus.com:47780/?p=5918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문명화

AD 800, 9세기 이후 바이킹들의 영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외부 문화들이 유입됩니다.  문화의 불모지와 같았던 바이킹들에게 유럽 서남부의 문명들은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 것 같은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이킹들은 신화에 의한 믿음이 존재했었습니다.  Norse mytholgy, 후일 Scandinavian mythology로 불리는 북유럽의 신화는 번개의 신 Thor, 토르나 지혜의 신 Ordin, 오딘 등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의 신의 영역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신을 인간의 친구, 연인 또는 가족의 한 명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기독교의 전파 이전의 고대 종교의 역할을 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학자들에 의하여 Germanic paganism으로 재 인식되고, 토르, 오딘, 프리그, 프레야 등 여러 신들의 이야기가 정리됩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킹들의 신화 신앙은 극히 이교도 적인 행위이자 생활 양식이었지만 단순히 전설로만 취급 당하기에는 그 뿌리가 상당히 컸었습니다.  현대에 다시 Neopaganism으로 확대되어 일반적인 이야기 중의 많은 모티브를 제공해주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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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신앙을 갖던 바이킹들은 마침내 기독교를 만나고,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980년경 덴마크가 Herald Bluetooth에 의해 기독교 국가가 되고, 노르웨이에선 Olaf Tryggvason과 Olaf 2세 국왕의 재위 기간 중인 995년-1030년에 기독교화 됩니다.  1000년에는 아이슬란드가 기독교를 수입하였으며, 스웨덴은 조금 늦은 1164년 Uppsala 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전파됩니다.  반도의 전역이 기독교화 됨은 고대 신앙에서 근대로, 국가의 면모를 갖추는데 큰 힘으로 작용했고, 유럽 사회의 공동 일원으로의 문화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거의 동시대에 같은 기독교 문화를 수입한 각 나라들은 바이킹 시대만큼이나 같은 시대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후일 국가 제도나 국기 등 제국의 면모를 마련함에도 거의 같은 문화를 공유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아쉽게도 바이킹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좀 더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Kalmar Union

칼마 동맹은 1397년에서 1520년까지 계속된 3국 동맹을 말합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의 왕국은 하나의 왕조 아래 정치, 경제, 문화의 교류를 이끌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한 동맹의 이유는 막 서북방향으로 세력 확장을 시작한 독일의 세력을 발틱해에서 막자는 이유였습니다만, 당시 핀란드 지역을 식민지화하던 스웨덴은 혼자 일방적인 책임을 지는 것과 덴마크 마가렛 왕조의 독선적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동맹은 1430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여 1523년 파기될 때까지 문제를 야기했고, 동맹국과 스웨덴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을 야기하였습니다.  1520년 덴마크 Christian 2세의 스웨덴 침공은 스톡홀름 대학살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이 사건은 다시 스웨덴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결코 항복을 하지 않던 스톡홀름은 결국 1523년 덴마크의 철수로 Gustav Vasa는 스웨덴 국왕의 자리에 올랐고, 노르웨이는 1814년까지 Oldenburg 왕조 아래의 덴마크-노르웨이 동맹에 남았습니다.  1397년 한때 동맹의 총 인구는 3백만 명을 넘을 정도로 강성하였으며, 이들 모두는 최근까지 전투를 경험한 바이킹의 후예들이었습니다.  독일의 세력 확장은 저지되었고, 비록 일시적인 동맹이었지만 북유럽 국가 간의 동맹의 필요성과 그 효과가 입증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근대 스칸디나비즘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계기도 마련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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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 전쟁

현재 지리학적 위치인  독일 중부 지역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은 전 유럽이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종교 전쟁으로서 최대 규모와 최 장기적 전쟁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은 후에 각 제국의 힘과 영향력을 재구성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프랑스, 스웨덴의 힘을 늘려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독일에서 1555년 이후 Holy Roman Empure, 신성 로마제국의 카톨릭과 Protestant, 신교파의 대립이 계속되었으며, 1617년 Bohemia, 보헤미아에서  신교 탄압에 반기를 든 신교 귀족에 의한 무장봉기로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전쟁의 양상은 각국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보헤미아 프팔츠 전쟁(1618 – 1623), 덴마크 전쟁(1625 – 1629), 스웨덴 전쟁(1630 – 1635), 프랑스 스웨덴 전쟁(1635 – 1648)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초기 독일 내의 종교적, 정치적 대립에서 출발한 30년 전쟁은 그와 병행해서 싸웠던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 전쟁)과 얽혀서 독일에 정치적 이해관계나 영토적 야심을 가진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의 개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열국의 관여의 크기는 직접 전쟁에 참여한 국가 외에 스위스, 포르투갈, 로마교황, 베네치아, 오스만제국까지가 베스트팔리아 강화회의에 가담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유럽이 관여한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두 Habsburg, 합스부르그가의 참패로 끝이 났으며, 전후 독일의 제후는 황제에 대한 독립의 정도를 더한층 강화하여 신성 로마 황제의 지위는 점차로 명목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는 독립을 최종적으로 승인받아서 스페인의 쇠운도 가속화 시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중세 말기에 신성 로마제국에서 사실상 독립하였던 스위스가 Treaties of Münster and Osnabrück in Westphalia,  베스트팔리아 조약으로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받았습니다.  이에 반해서 이 전쟁에서 최대의 이익을 얻은 것은 프랑스로, 라인강 왼쪽의 영토를 획득하여 국경을 라인강에 도달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낀 오스트리아, 스페인 두 합스부르그가의 세력을 후퇴시킬 수 있었고, 독일의 발틱해 연안에 영토를 얻어 발틱해에 웅비하는 기초를 굳힌 스웨덴도 프랑스 다음의 수혜자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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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체에 있어서 30년 전쟁의 결과는 참담한 것으로, 신성 로마제국은 점차로 명목적인 존재가 된 것 외에, 프랑스, 스웨덴이 할양지의 영유자의 자격으로 제국의회의 출석권을 얻은 것은 외국 세력이 독일에 대해서 정치 간섭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였으며, 직접적인 피해로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인구의 30%에서 90%를 잃었습니다.  이와 같은 피해는 스웨덴 때문에 북독일의 해항을 잃고 상업적 발전에 타격을 입은 동시에, 독일의 후진성을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영토 확장과 Great Northern War

비슷한 시기 스웨덴은 Charles 9세의 지도 아래 영토 확장을 시도합니다.  Ingrian War, Northern Wars, Scanian War 등 몇 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핀란드는 물론 러시아의 일부 지역, 폴란드, 덴마크의 일부 지역까지 진출하여 발틱해의 패권자로 자리 잡게 됩니다.  18세기에 들어오면서 반 스웨덴 파인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스웨덴과 전쟁을 벌입니다.  스웨덴의 독주를 저지하고자 했던 The Great Northern War (1700 – 1721)은 1721년 Treaty of Nystad와 Stockholm Treaties로 스웨덴의 패전을 선언합니다.  그 결과 스웨덴의 영토였던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일부 지역은 러시아로 흡수되었으며, 핀란드는 스웨덴의 영토로 계속 남습니다.  그 후 20세기가 될 때까지 북대서양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패로 아일란드는 노르웨이의 영으로 존속되었으며, 노르웨이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의 일원으로 남았습니다.  같은 시기 덴마크와 스웨덴은 동인도에 진출하여, 영국과 마찬가지로 덴마크 동인도 회사 및 스웨덴 동인도 회사를 운영하였으며 영국의 차 수입 물량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밀수로 유통시켜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북유럽의 제국들은 이시기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화 정책을 같이 펼쳤으며, 북미 대륙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자치 식민지를 두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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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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