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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스웨덴 난민 수용 정책의 위기, Cultural Integration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나?

Photo: 스웨덴 텐스타 지역 마켓의 뒤편

지난해 북유럽 스웨덴에선 총선이 있었다.  우파 보수당의 약진이 돋보인 선거 결과는 예상된 결과였지만, 현재 전 유럽이 고민을 하고 있는 문제를 다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최근 영국까지도 끌어들인 그 문제는 난민을 포함한 이민 정책이다.  인간애와 존엄이 사회의식에 살아있는 유럽에서 난민 문제를 외면하는 일은 결코 없다.  어찌 보면 현대의 인간주의가 만들어낸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되고, 지리적이니 경제적이니 하는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또 인구가 부족한 선진국의 상황과 맞물려 이민 정책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고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민 문제를 바라보는 큰 하나의 틀은 자국의 경제와 상황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난 총선에 관한 이야기는 링크를 참조 바란다.

북유럽 스웨덴의 선택, 인종 화합 정책은 끝나는가

http://www.nordikhus.com/%EB%B6%81%EC%9C%A0%EB%9F%BD-%EC%8A%A4%EC%9B%A8%EB%8D%B4%EC%9D%98-%EC%84%A0%ED%83%9D-%EC%9D%B8%EC%A2%85-%ED%99%94%ED%95%A9-%EC%A0%95%EC%B1%85%EC%9D%80-%EB%81%9D%EB%82%98%EB%8A%94%EA%B0%80/

블룸버그에서는 “스웨덴, 수십 년간의 화합 정책 실패”라는 제목으로, 북유럽 스웨덴의 최근 치안상황을, 특히 난민을 포함한 이민 문제와 연결시켜 보도했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모든 이민자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시각도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같은 선진국이, 그것도 풍부한 상식과 지식 경험이 넘치는 국가에서 마저 야기할 수 있는 이민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 경험이 건국의 바탕이 된 미국에서부터, 단순노동자가 부족하다고 혹시나 하는 대안을 이민에서 찾으려는 순진한 국가까지 이민 문제에 자유로울 순 없다.

Burhan Yildiz, 부르한 일디즈는 스톡홀름 외곽 Tensta, 텐스타와 Rinkeby, 링께비에 거주하는 4,000여 명 크루드족 난민의 지도자다.  그는 지난 선거에서 난민 출신 이민자 중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이 스웨덴 민주당에 투표한 것을 알고 있다.  스웨덴 민주당은 작은 정당이었으나 좌우파 거의 동석인 가운데, 독보적으로 캐스팅 보트를 거머쥔 극우 정당이다.  당연히 이민을 반대하고 스웨덴의 정체성을 지키자는 우파다.  상식적이지 않은 난민 출신들의 선택에 그는 “우리는 범죄에 분노합니다.  지금까지 스웨덴의 모든 정당이 이민 정책에 실패했습니다.  스웨덴 민주당은 자국의 법을 지키거나 존중하지 않는 모든 이민자들을 내쫓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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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 Around라는 여행 지역 검색 웹에서 보여주는 스웨덴 스톡홀름과 인근 지역의 치안 주의 상황

 

일디즈는 55세로 스웨덴에서 29년을 살았다.  그가 사는 텐스타에는 약 9개의 선거구가 있으며, 19,000여 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난민 출신 이민자들이다.  대부분은 투표권이 없으나 있다 해도 투표율은 56퍼센트에 못 미친다.  스웨덴의 평균 투표율은 87퍼센트다.  텐스타와 링께비 지역은 스웨덴 스톡홀름 경찰의 23지역 중 “특히 주의를 요하는 지역”이다.  그들 스스로는 “Ghetto”나 “No Go Zone”으로 부른다.  나도 가끔 방문하던 텐스타는 겉으로는 아무런 다름을 알아채지 못한다.  단지 스톡홀름의 활기찬 분위기에 비하면 조금 느리고 사람들이 여럿 모여 다니는 정도다.  모든 상점은 외국어 일색이고, 튀기는 음식이 없는 스웨덴에서 내가 유일하게 닭이나 다른 튀김을 구할 수 있었던 곳이다.  값도 비교적 싸고, 거의 대부분의 식료품이 다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느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여성은 거의 히잡과 부르카로 온몸을 감고 있다.  특히 검은옷의 덩치 큰 사람들과 코너에서 만날 때는 나 스스로도 안 놀라야지 하며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절대로 오후 3-4시가 넘어서는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분이 일정하지 않거나 불안한 삶을 산다는 점과 혹독하게도 어려운 인생을 한번 겪었다는 점에서 좀 “험악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마디로 잃을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민주당은 17.5퍼센트를 차지했다.  캐스팅 보트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이며 3번째로 큰 정당이 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스웨덴 국가주의다.  특히 다른 정당과의 협력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어찌 되었든 스웨덴의 국민은 보다 보수적이고 강력한 정책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스웨덴 민주당의 Paula Bieler, 파울라 비엘러 의원은 이 “특히 주의를 요하는 지역”으로부터의 지지가 큰 몫을 했다고 말한다.  “제 지역구인 웁살라는 한두 구역 정도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 지역이 안심할 수 없게 됐죠.  총격전과 갱들, 살인과 범죄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갑자기 여성들이 집에서 직장 가기도 겁나진 것입니다.”  Uppsala, 웁살라는 스톡홀름 북쪽의 교육 도시로 웁살라 대학이 위치해 있으며, 한때 스웨덴의 수도였다.  이곳은 또 19세기 지식인들이 “스칸디나비아 주의”를 주장하고 의결했던 역사적 도시다.  이후로 스웨덴과 북유럽이 고유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스칸디나비아 항공, 북구 연합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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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민주당의 지미 오케손 대표

 

그러나 실상은 어떨까.  뉴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실업률이 증가하고, 학교 시설이 낙후돼가고 있으며, 강력 범죄율이나 사회 전체가 평행선을 달리는 사회가 되었는가?  2017년 한 경찰 집계에 보고된 이웃 간 범죄는 61건으로 2014년의 55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범죄 예방국이 조사한 “특히 주의를 요하는 지역”은 2006년에서 2011년까지의 18.3 퍼센트에서 2012년에서 2017년까지의 17.2퍼센트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중의 선입관은 그렇지 않다.  사실 총기가 관련된 사건은 2011년 17건에서 2017년 40건으로 증가했다.  또 스웨덴 국민은 복지 국가로서의 삶에 의아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비엘러 의원은 스웨덴의 복지 정책에 감사해 하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위해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많은 세금을 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스웨덴에서 2015년과 2016년, 인구 천만의 국가에서 15만 명이 넘는 난민 영주권이 허락되었으며, 매해 그 기록을 경신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동안 정부가 난민 이민자들을 지방에 숨겨온 것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었으며, 이제 도시에나 또는 어느 스웨덴 지방에서도 난민 출신 이민자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범죄율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며, 전국적으로 약 50만 명에서 60만 명이 “특히 주의를 요하는 지역”에 거주한다고 말한다.  스웨덴은 전통적인 화합 정책을 펴는 유럽의 나라이며 실제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해야 한다는 주거 정책을 강력하게 펴는 나라이다.  아무리 부자 동네여도 꼭 저 소득층용 임대 아파트를 건설해야 하고 기꺼이 수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화합 정책은 당연히 스웨덴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난민의 급증으로 난민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문화적 화합을 통한 스웨덴으로의 흡수 같은 장기적 목표들은 휴지가 되어 가고 있다.

다문화 정책이나 이민 주의 정책 같은 외부 문화의 화합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만일 이런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면, 자국의 문화가 바뀌는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스웨덴이 주장했던 문화적 흡수는 강력한 교육과 사회적 평등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문화적인 교육으로 다른 문화를 스웨덴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고는 스웨덴으로써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나타난 문제는 자신의 현재 상황이다.  총 인구의 5%가 넘는 무지의 난민들이 갑자기 자국 내에 섞였을 때의 상상은 하지 못했다.  무지의 난민이란 내 표현은 차별이다.  이 차별은 그 개인의 존엄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고, 존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 교육을 받은 인간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난민은 국적자가 아니다.  아주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인간성을 보장조차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전쟁이나 내전을 겪고, 극심한 범죄의 희생자들이 있는 반면에 가해자들도 버젓이 그 안에 존재한다.  신분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40이 넘은 한 난민이 주장한 나이는 11세다.  13세가 넘지 않아야 정밀 심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약 6개월이 넘게 스웨덴 내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농구나 축구를 특히 잘했다고 한다.  그의 치아를 정밀 검사해서 나온 추정 나이는 40대 초반이다.  그들의 종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파나 특정 사이비로 많이 갈라지는 특성은 광적으로 변할 소지를 항상 가지고 있으며, 정통 교도에게도 배척을 당하는 입장이다.  이것이 특히 더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난민이 되었다는 이유도 있기에 그렇다.  스웨덴이 주장한 화합 정책이 과연 백지의 상태에서도 스웨덴의 상식이 통하는 상태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자국민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민들이 인정 많고 한없이 인내하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지만, 내 이웃의 수상한 사람을 위해 내 주머니를 비우는 성직자들은 아니다.  오히려 합법적 이민자들의 난민 반대는 더 심하다.  같이 엮기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난민을 포함한 이민 주의 정책이 위협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복지 정책에 있다.  아프리카나 중동을 출발한 난민들은 목적지가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지역이 목표다.  같은 유럽이라도 이민 정책에 덜 너그러운 동유럽이나 남유럽은 그들의 목적지가 아니다.  브랙시트 전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북유럽의 덴마크나 스웨덴이 목적지다.  그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복지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지역에서의 정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개인마다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난 난민 출신 이민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일은 당장 없다.  실제로 스웨덴의 게토라고 불리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약 47퍼센트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 내의 67퍼센트에 크게 못 미치는 숫자다.  이들 중에도 대부분 1000,000 크로나, 약 $11,000의 연간 수입에 그친다.  나머지는 복지의 몫이다.  화합 정책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문화 흡수 정책은 실패했다.  요주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민자 들이다.  이민자 구역인 텐스타에서는 하루 종일 걸어도 스웨덴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지역 거주민 중 한 사람은 정부가 가끔씩 던져주는 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거주자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나 문화적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에 교육에 투자를 해도 졸업전 학교를 떠나는 실정이다.

모든 난민 출신 이민자들이 갱과 연결이 돼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상당히 많은 수가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이민자 출신 중 약 15,244명의 갱들의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스웨덴 출생자이거나 2세대 이민자들이었다.  또 이들은 출생 지역에서 영향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마약 관련 범죄자들도 마찬가지다.  또 이들의 범죄는 점점 더 포악해지고 조직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란계 난민으로 본국에서 경찰이었던 Rostami, 로스타미는 스웨덴 요테베리의 게토에서 거주한다.  요테베리의 갱들은 스스로 갱들이 경찰 업무를 수행하며, 다른 갱들을 없애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갱들인 러시안, 이탤리언, 보스니아 갱들이 대상이다.  겁이 없어서인지 다음 세대의 갱들이나 다른 갱들과의 공생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요즘 갱들은 문화적으로 섞인 아이들입니다.  폭력이 그들의 언어지요.  세력을 넓히고 사업같이 갱을 운영하는 전통적인 것과는 많이 달라요.  그들은 하루만 왕처럼 살길 바랍니다.  내일이 없어요.  내일 죽어도, 다음 달에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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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스웨덴의 화합 정책은 가능한 위험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같은 문화적 네트워크 속에 넣어주고, 교육을 시키고, 언어와 적응력을 키우고, 직업 훈련을 시켜서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게토는 존재했다.  원하지 않았어도 그 안에 살던 스웨덴 사람들은 게토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그 수가 스웨덴 사회의 충분한 여유로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은 사방이 꽉 막혔다.  스웨덴의 집값 상승이 그 원인 중 하나다.  스톡홀름 내 거주 지역은 2012년과 비교하여 작년에만 44퍼센트 올랐다.  2000년과 비교하면 세배나 뛴 것이다.  로스타미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별문제가 없었어요.  난민 지역이 생기면 다른 곳을 알아보고, 대출을 더 받아서 이사하면 그만이었지요.  요즘은 그게 안됩니다.  아주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 아니면 시내에서 그렇게 자유롭게 이사할 수가 없어요.”

독일은 스웨덴 보다 더 많은 난민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이다.  지금 현재 인구 10만 명당 경찰의 수는 스웨덴보다 두 배나 더 많다.  더 많은 감옥 시설과 강력한 공권력, 빠른 법 집행 등 스웨덴 민주당의 극우파적 주장이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게토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은 생각이 또 다르다.  현재 32세인 Ahmed Abdirahman, 아흐메드 아브디라만은 소말리아에서 태어나고 스웨덴 텐스타에 거주했으며, 현재 글로발 빌리지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한다.  그는 자기들이 스웨덴의 미래라고 여기며, 스웨덴이 출산율이 낮기 때문에 이민자 출신들이 언젠가는 스웨덴의 주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민자들이 스웨덴식 문화에 대해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유문화를 유지하고, 고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생활해도 충분히 자기들의 나라같이 스웨덴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웨덴의 다음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돼가는 중입니다.  이젠 정치적으로 대화를 시작해도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스웨덴 민주당이 반 이민 정책을 다시 편다고 하여도 스웨덴은 큰 장벽에 박혀있다.  이미 분리 정책처럼 보이는 이민 정책과 갱들, 그들로부터의 문제가 나머지 국가 전체를 지나칠 리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수십 년간 축복 같은 시간 속에서 부와 사회적 관용을 누려왔다.  지금 스웨덴의 법 시스템은 극도로 혼란함 속에 있으며 그 이유 중 하나는 난민 출신 이민자가 너무 갑자기 많아졌다는 것이고, 제대로 사회적 적응 없이 스웨덴 사회로 내보내졌다는 것이다.  시간은 여기서 또 약이 아닌 것이, 점점 더 악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제대로 집고 넘어가야 한다.  앞으로 10년에서 15년이 지나면 “특히 주의를 요하는 지역”은 전 사회로 확대될 수도 있다.  당장의 난민 이민 정책 때문인지, 수십 년간의 반쪽짜리 마음으로 해온 화합 정책 때문인지 깨달아야 한다.  뉴스 기사는 약은 쓰지만 안 먹는 것보다 늦은 것이 낫다며 끝을 맺는다.

스웨덴의 이민 정책은 EU와 연결돼있다.  혼자서 반대를 할 수도 없고, 한다고 지켜질지도 의문인 상태다.  다른 뉴스에서 들리는 독일의 경우는 스웨덴 보다 심각하다.  더 많은 수의 난민 출신 이민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국가의 출산율을 이민으로 대신한다는 사고는 극히 위험하다.  이들 경우처럼 이민자들이 과연 자국의 문화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기본에서부터 의구심이 든다.  특히 난민으로 규정된 이민은 더욱 절차와 검증을 통해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급하게 쉬운 정책을 내놓는 나라들은 분리나 화합 같은 기본적인 틀마저도 고려할 여유가 없으며, 세계 문화와 종교, 가족, 습관에 관해서 백지에 가까운 공무원을 난민 심사 담당자로 두고 있기까지 하다.  인도적 차원이라는 말을 극히 사랑한다.  난민은 살려야 한다.  그것이 기본적 인간애임에는 틀림이 없다.  거기까지다.  자국민의 희생으로 그 난민을 행복하고 평화롭게까지 만들어줄 의무는 없는 것이다.  철저한 신분 확인, 기간제 영주권, 언어와 교육 검증 등을 통하고 쿼터제 난민 또는 이민 정책도 검토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난민이나 이민으로 다문화를 논하기엔 아직까지 너무 어설프고 순진하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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