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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자연, “자유롭게 자연에서 뛰노는 말괄량이 삐삐”

Photo by Lena Granefelt / imagebank.sweden.se

부모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바쁘다.  지식을 배우게 하고, 사회에 적응하게 하고, 훌륭한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데 모두들 열을 올린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갇힌 공간 안에서 주어진 많은 것에 몰두하게 된다.  배운 대로 얌전히 그리고 열심히 여러 가지 교육이란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갇혀 살고 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비로소 안도감을 갖는다.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속에 답답함으로 꽉꽉 쌓여가는 응어리들을 생각지 못하고 어른들만의 생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나 역시도 북유럽에서 아이와 함께 열심히 뛰기 전까지는 그런 응어리들을 알지 못 했다.  심지어 내 맘속에도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었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큰 지 몰랐다.  내가 살던 아파트 뒤편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고, 바로 앞 산속에 썰매를 끌고 나가 눈 위를 아이들과 신나게 내려올 때, 자연은 모두가 뛰어놀고 싶은 가장 멋지고 완벽한 놀이터이자 낙원이란 걸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예쁘게 색칠되고 꾸며진 놀이터의  놀이기구들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맘껏 제공되는 자연 속에서 북유럽의 아이들은 자기 맘대로 정해진 놀이기구를 가지고 논다.  바위를 오르고, 언덕을 내려오고, 풀밭을 뛰고,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마치 아프리카 들판을 뛰노는 야생 동물들처럼 자유롭게 노는 북유럽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더욱 행복하다.  얌전히 갇혀있는 아이들에게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안도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매일 이어지는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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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from Wikipedia.com / astridlindren.se

1945년 동화책을 통해 한 마리 야생 동물처럼 스웨덴 아이, 삐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스웨덴 작가 Astrid Anna Emilia Lindgren,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2002)이 Pippi Långstrump, Pippi Longstocking, 삐삐 롱스타킹을 통해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소녀 삐삐를 처음 세상에 소개했을 때, 그 당시 스웨덴 어른들은 삐삐를 편안하게 바라보지 못 했다.  교육받지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혼자 살아가는 괴짜 소녀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많은 부모들이 의문을 던졌다.  1940년대 아이를 생각하는 북유럽의 교육 가치관은 현재와는 많이 달랐던 과도기였다.  어찌 보면 매일매일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며 아이들을 어찌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한국의 현실이 그 당시 북유럽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라야 한다는 “해답” 찾기에만 관심을 두었던 1940년대에 자유롭기만 한 삐삐의 등장은 스웨덴 부모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용 줄임)

첫인상의 삐삐는 괴물 같다.  그래도 여자아이로 보이는데 어떤 부분을 꼬집어서 굳이 예쁘다고 해야 할지 보는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삐삐의 모습은 하나도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을 내세우는 어른들 앞에 삐삐는 대책 없는 말썽꾸러기, 세상의 문제아로 보인다.  주근깨의 못난 얼굴에 무엇을 믿고 저리도 당당한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정작 그런 답답한 사람들의 시선에 삐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이리저리 만들고 정형화시킨 정리된 생활과 서로 눈치 보기 바쁜 겁쟁이들이 한심하고 불쌍할 뿐이다.  삐삐는 평화로운 곳, 자연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산다.  마음대로 뛰놀고 나의 느낌대로 안길 수 있는 자연과 동물 친구들이 삐삐와 교류할 수 있는 “진실된” 친구들이다.  그리고 삐삐는 식인종 섬에 갇힌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제외하곤, 현재 갖고 있는 소중함 이외에 더 바라는 것도 없다.  (내용 줄임)

앞뒤가 안 맞는 모습과 뒤죽박죽인 삐삐를 보며 우리는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아이라고 부른다.  다듬어지고 정리된 모범생 친구들 토미와 아니카를 통해 우리도 함께 삐삐에게 동화되어 간다.  아픈 린드그렌의 딸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위로도 맘껏 뛰놀고 하루하루를 자연과 함께, 동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며 씩씩하게 꿈을 펼치는 삐삐의 모습이었다.  스웨덴에는 린드그렌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책이나 TV가 아닌 아이들만의 공간에서도 느끼게 해주는 두 곳이 있다.  스톡홀름 시내 안 의 Djurgården, 율고덴 섬에 위치한 “Junibacken, 유니바켄” 과 남쪽의 작은 도시 Vimmerby, 비메르뷔에 있는 ”Astrid Lindgren’s World,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이다.  나는 삐삐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두 곳을 모두 찾아갔었다.  머리로 쉽게 상상해 보는 잘 꾸며진 놀이동산일 거라는 나의 예상이 여전히 틀에 박힌 사람들의 복잡하고 재미없는 잣대라는 걸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유로운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린드그렌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그림으로 그려냈던 Marit Törnqvist, 마리트 퇴른크비스트의 일러스트로 가득 차 있는 유니바켄은 동화 속 나라 그대로이다.  “Storybook Train, 동화책 기차”를 타고 하늘을 날으며 멀리 떠있는 린드그렌의 동화를 보고 듣는 기분은 마치 어릴 적 잠자리에서 소곤거려주시던 엄마의 숨결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삐삐가 살던 집, Villa Villekulla, 빌라 빌레쿨라의 무대가 펼쳐지면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함께 뛰놀던 주인공 삐삐가 된다.  아이들에게만 꼭 맞춰진 아담한 크기의 마을이 어른들에게는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꼭 맞춰진 세상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세상은 비메르뷔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에 가면 더 넓게 펼쳐진다.  모든게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 온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만 쉽게 드나들고 구경할 수 있는 건물들을 보려고 나는 담장너머로 겨우겨우 얼굴을 들이밀고 허리를 구부렸다.  어른들의 사이즈에 맞춰졌던 불편했던 세상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그곳에서 진정한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한편에는 커다란 거인의 집이 있다. 린드그렌의 단편집 “Nils Karlsson Pyssling flyttar in, Simon Small moves in”의 이야기에 맞춰서 그 안의 주인공들처럼 거인의 나라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곳 역시 잘난척하던 어른들에게도 버거운 곳이다.  오히려 무서워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거인의 커다란 가구들을 신나게 오르내린다.  세상의 기준은 언제나 다르다는 걸 느끼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놀이동산이다.  모두가 마음 편히 움직이는 곳은 자연이었다.  넓은 풀밭 위에서 여러 가지 작고 커다란 세상을 구경하고 나온 가족들은 드디어 하나가 되어 함께 뛰고 논다.  삐삐 복장을 하고 맞이하는 사람과 함께 진정한 말괄량이가 돼서 각자의 느낌 그대로 즐긴다.  결국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편안히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맞춤형 무대는 자연이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삐삐의 이상한 모습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를 자연에서 뛰어놀며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사이트
위키피디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공식 사이트 : http://www.astridlindgren.com/en
스웨덴 공식 홍보 사이트 : https://sweden.se/culture-traditions/pippi-longstocking-rebel-role-model/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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