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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자연, “가장 덴마크적인 디자이너 핀율과 109체어”

Photo of Finn Juhl’s 109 Chair / from finnjuhl.com

유럽에서 가장 면적이 큰 나라는 어디일까?  흔히 프랑스, 스페인이나 독일을 생각해서 답을 하지만 사실은 덴마크이다.  북극의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흔히 말하는 이런 이야기는 사실 덴마크의 본토는 무척 작다는 걸 반증한다.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정도의 면적에 인구도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서 덴마크는 과거부터 무역과 관련한 상업, 금융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이다.  사람들도 쾌활하고 말하는 걸 좋아해서 자신들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그만큼 자신을 알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문화가 있다.

세계에서 많이 사랑받는 덴마크의 건축가, 디자이너인 Finn Juhl, 핀율 (1912–1989)도 북유럽의 마음으로 공통된 가치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덴마크를 세계에 알리고 인정받는 데에도 노력을 한 사람이다.  순수한 북유럽 가치로서의 눈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다.  지나치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북유럽 고유의 시각을 벗어나서 로마나 이집트 또는 고대인들의 문화를 북유럽의 가치에 접목시키는, 그래서 아름다움을 증대시키는 작업을 많이 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물론 아무런 영향 없이 혼자만의 세계를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덴마크와 북유럽을 이미 넘어 다른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는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가구 디자이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용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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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시각으로도 낯선 모습에 핀율의 초기 작품들은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북유럽의 자연에서 찾은 소재들을 이용하여 극한의 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북유럽 고유 가치인 기능주의가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무렵, 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기능주의와 연결시켰다.  그는 어려서부터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문화나 여러 나라들에 대해 익숙했다.  여러 자연현상들, 문화, 각국의 디자인을 참고 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다양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이집트를 비롯해 일본, 중국, 더 멀리 고대 로마의 것도 있다.  또 그 문화의 상징적인 디자인들을 간략화한 디자인도 보인다.  이들뿐 아니라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고, 서로 유기적인 연결의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그중 어느 것은 상당히 과장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핀율의 미학은 서로 연결되고, 때론 마찰과 어긋나는 갈등이 한 곳으로  이어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곳은 아름다움이다.  (내용 줄임)

오히려 덴마크에서 고전하며, 동료 디자이너였던 Børge Mogensen, 뵐게 모겐슨이나 Hans Wegner, 한스 베그너의 명성에 훨씬 못 미치는 반응을 얻던 무렵, 그를 발견하여 세상에 다시 소개한 사람은 뉴욕 산업 디자인 협회장이었던 Edgar Kaufmann, Jr., 에드가 카우프만 주니어였다.  미국에 불어닥친 북유럽 디자인의 유행을 소개하기 위해 에드가 카우프만은 스칸디나비아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널리 알려진 기존의 유행이나 전시회는 찾아가지 않고, 숨은 인재들과 앞으로 북유럽 디자인을 이끌어갈 디자이너들을 찾았다.  인테리어 잡지에서 핀율의 이야기를 보고, 즉시 핀율과 접촉했다.  1951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Good Design 전시회는 핀율의 소개와 24점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이 전시된 핀율의 무대 같았다.  핀율은 미국에서의 데뷰를 통해, 그가 바라던 대량 생산을 이루게 되었고 그의 전통적 공예에 바탕을 둔 디자인에 대한 성공, 두 가지 모두를 한꺼번에 이루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그는 건축가의 삶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기구 디자이너의 삶으로 살았다.  General Electric사의 냉장고 디자인과 유리, 도자기, 가구 회사들과의 협업을 맡았으며, UN 본부와 부속 건물들의 인테리어와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사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내용 줄임)

그의 1946년 작품 109 chair를 사랑한다.  이 의자를 통하여 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가구는 공간에 단순히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라고 생각하던 그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기능적이기 만한 선과 여러 면들이 직선과 곡선의 교묘한 결합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기능적인 요소들, 즉 팔 뒤꿈치를 위해 좀 더 넓은 면적을 할애한다던가 손으로 잡기 쉽게 홈을 파놓는 등의 사람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물론 소재는 나무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의 작업이 필요하고,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가장 단순하면서 기능적인,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반드시 주어야 하는 숙제들이 109 chair에서 모두 풀렸다고 생각한다.  편안함과 견고성은 물론이고, 의자 자체가 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특히 돋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의자들이 여러 개가 모여 사용될 때 서로의 간섭이나 시각적인 분산 또한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개인적인 공간은 물론이고 상업적인 공간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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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of 46 Sofa and various other Finn Juhl furniture / from finnjuhl.com

그는 어린 시절 예술 역사가를 꿈꿀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 덴마크인으로서 타고난 비즈니스 기질 등이 모두 결합되어 북유럽의 어느 한 나라를 넘어선 디자인을 탄생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는 “나는 언제나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항상 연습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화가, 조각가 또는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염두에 두었어도 나 혼자만의 연습이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도 그의 한계를 알고 그의 꿈을 수정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아주 중요한 북유럽의 가치이다.  누구나 꿈꿀 순 있지만 누구나 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더욱 훌륭한 길들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력을 더하면, 더욱 공부를 하면, 또는 운이 좋으면이라는 위로가 결코 진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어쩌면 핀율에 대한 오해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핀율이 느낀 극한의 디자인을 이루기 위해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또는 한 곳에 모든 집중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재능과 지식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히려 북유럽의 기본적 가치에 부가적인 것들을 더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했다.  누구나 아는 가치들, 방법들을 갈고닦아서 정점에 다가갈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것들과 섞고 다듬어서 새로운 정점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덴마크가 걸아온 길이기에 더욱 핀율의 삶이 덴마크를 닮아있음을 느낀다.

 

참고 사이트
덴마크 공식 사이트 : http://denmark.dk/en/
위키피디아
Finn Juhl’s House : http://ordrupgaard.dk/en/
Dezeen 매거진 : http://www.dezeen.com/
Dwell 매거진 : http://www.dwell.com/
http://www.finnjuhl.com/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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