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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인간, “가장 인간적이었던 절규, 뭉크”

Edvard Munch (1921) / Wikimedia.com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이용하는 대표적 항공사인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사 외에도 NAS, Norwegian Air Suttle, 노르웨이 항공사가 있다.  빨간색 동체 앞부분이 인상적인 비행기들을 운영하는데, 그 비행기의 꼬리 날개를 보면 북유럽의 유명 인물들이 그려져있다.  이 항공사는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서, 도전했고, 이룩했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들을 선정했다고 말한다.  그 인물들 중에서도 제일 처음으로 선정된 인물이 노르웨이뿐 아니라 세계적 사랑을 받는 Edvard Munch, 에드바르트 뭉크 (1863-1944) 이다.

누구나 The Screem, 절규라는 그의 작품은 보았으면서도 그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라거나 작품 속의 모든 것이 그의 일생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오늘날 비춰지는 북유럽의 환상적 이미지와 그가 겼었던 시대의 개인적인 우울함과는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의 숨은 아픔들은 아티스트라고 하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만 유독 뭉크의 작품들을 보면 기괴하고 과장된 환영들이 많이 보이곤 한다.  자연주의자였던 뭉크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본 후에 그린다.”라는 말을 했다.  (내용 줄임)

뭉크가 인간적인 감정의 고민과 고통 속에서 평생을 지낸 것은 몇 가지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시골마을 Løten, 뢰텐에서 태어난 그는 여느 아이들과 같이 보였다.  그러나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Oslo, 오슬로로 이사를 온 5살 무렵 결핵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후 같은 병으로 누이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인 Christian, 크리스티앙은 우울증과 광적인 종교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가족 누구와 이별을 한다는 사실보다, 아버지와의 갈등, 예측불허의 심리상태 등 인간적인 감정들의 혼란을 어린 시절부터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 줄임)

뭉크는 “나는 인간이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두 가지를 모두 물려받았다.  결핵과 정신 질환이다.”라고 자신을 비관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Royal School of Art and Design of Christiania, 후일 왕립 오슬로 예술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예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인생에 대한 설명과 그 의미를 나에게 해주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는 그 당시의 보헤미안 문화에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마치 자신의 악몽 같은 경험들을 수긍하고 받아드리고자 하는 모습과 같이 보였다.  대학에서 뛰어난 감성을 보였고, 자연주의, 인상주의 같은 여러 화풍을 시도한다.  19세기 말의 북유럽은 아직 산업의 물결을 타기에 이른 시기였다.  그리고 그가 활동한 20세기 초는 세계열강들의 싸움 속에서 가난과 함께 살아가던 암울했던 시간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거칠 때까지 유럽과 세계 주요 강대국들 속에 북유럽의 예술도 그들을 따르고 흉내 내기에도 벅차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자연의 악조건과 계속되는 전쟁과 가난 가운데 북유럽은 그들만의 모습으로 살아갈 미래와 신념을 찾기 시작했고, 예술이나 디자인에서도 북유럽만의 색깔과 방향을 찾아간 시기이기도 하다.  (내용 줄임)

사람들이 그의  The Scream, 절규 (1893)는 그를 표현하는 대표작이자 그의 인생을 절망적으로 인식하는 단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 느꼈을 절망 속에서도 그걸 이겨내기 위한 길을 항상 찾았다.  그가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는 평범함이라 할지라도 그는 작품을 통해서 그의 영혼을 표현함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가 친구와 같이 길을 걷다가 느낀 감정을 표현한 절규는 그를 둘러쌓고 있는 자연이 갑자기 변하는 공포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역작이라 칭송받는 절규는 그가 탄생시켰지만 그 이후로 몇 년간 그에게 다시 정신 질환을 가져다주었고, 다시 사랑이란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해 포기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많은 호평으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뭉크는 오슬로의 피욜드가 보이는 Åsgårdstrand, 오스골드스트란트에 별장을 샀다.  그는 “행복한 집”이란 이름을 붙이고 20여 년간 이곳에서 매년 여름을 보냈다.  (내용 줄임)

The_Scream 1893 The Scream, 절규 (1893) / WebMuseum at ibiblioPage

뭉크는 누구나 아는 예술가지만 한편으로 누구도 모르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를 평생 따라다녔던 정신 질환은 공포였다기 보다 그를 이끄는 힘이었다고 느낀다.  그는 “내 정신 질환과 병들을 빼면 나는 노 없는 배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내 고통은 내 일부였고, 내 예술이었다.”라고 회고한다.  후일 그에게 쏟아진 비판들, 특히 미완성으로 남겨둔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들에 관해 혹시 그가 그렇게 남겨둘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의 상태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말이다.  뭉크를 존중했던 독일의 정치가이자 작가,  Walther Rathenau, 발터 라테나우는 그를 “정형, 투명함, 우아함, 온전함, 그리고 리얼리즘에 대한 냉혹한 경멸심을 가지고, 그는 가장 미묘하게 영혼을 볼 수 있는 재능의 직관적인 힘으로 작품을 그린다.”라고 극찬했다.  뭉크의 삶은 어릴 적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북유럽의 시대적 상황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현재 북유럽의 발전된 모습이 걸어왔던 길처럼 자신만의 색깔과 삶의 방식을 찾아나갔고, 그 어떤 유리한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가고 굴복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북유럽 노르웨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뭉크가 공포에 떨어야 했던 절규는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서 느껴야 할 기본적인 본능을 가지고 꿈을 꾼것이 아닐까 한편으로 생각한다.

참고사이트 에드바르트 뭉크 공식 사이트 : http://www.edvardmunch.org/

스미소니언 매거진 : http://www.smithsonianmag.com/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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