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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신뢰, “오늘도 계속 이어지는 이케아의 상상”

Photo by IKEA

사람들은 크건 작건 많은 일을 한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세계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는 말인 동시에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넘어서는 공감을 받았고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증명이다.  많은 사상가들, 발명가와 사업가들이 그 꿈을 이루었고 현재에도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주변의 것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이 달라지게 되는 원인보다는 단순히 달라지는 주변의 상황으로 판단한다.

IKEA, 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 이케아는 아구나르드시의 엘름타르드 마을에 사는 잉바르 캄프라드라는 약자이다.  창업자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들을 회사 이름으로 만들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를 제외하고 이케아의 문화를 모른다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알려진 기업이다.  이케아는 가구회사가 아니다.  문화를 파는 기업이고, 사람들의 상식을 깬 도전을 지금도 계속하는 혁신적인 회사이다.  자주 바뀐다는 혁신이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창업자가 생각한 낮은 가격, 새로운 판매 방식, 문화와 연계된 상점 등으로 꾸준한 신뢰를 받는 기업이다.  Småland, 스몰란드의 Älmhult, 앨름훌트 지역은 스웨덴 남쪽의 농촌 마을이다.  1926년 태어난 잉바르 캄프라드는 다섯 살 때부터 이웃들에게 성냥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수량으로 사면 더 싸진다는 유통의 규칙을 알았고, 가격은 그대로 이면서도 좀 더 싸게 그리고 수익을 지킬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깨달았다.  그는 청소년 시기이던 1943년, 이케아라는 이름으로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했다.  필기류, 카드, 소품류들이었다.  가구가 이케아의 판매 품목으로 들어오고, 카탈로그가 제작되었다.  오늘날 유럽에서 왜 이케아의 카탈로그가 성서 다음으로 많이 보는 책인지, 왜 가구 부품들을 차곡차곡 넣어 박스로 파는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상점이 없는 상태에서 주문 판매를 먼저 시작했고, 그렇기에 사진과 설명이 잘 되어있는 카탈로그는 필수였던 것이다.  우편으로 배달을 시작하고, 먼 곳으로 상품을 보내기 위해 부품들을 잘 정리해서 팔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구매자가 직접 가구를 조립해야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남은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의 생각은 내가 가진 자원을 이용하는 사업을 원했다.  거의 모든 북유럽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스몰란드의 농부들은 농사일이 한가해지는 철이 되면 그들이 좋아하는 목공일을 시작한다.  나무를 다루는데 익숙한 북유럽 사람들이 가구를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취미같이 여겨진다.  그들의 제품은 조립 전 포장하여, 판매를 하였고 이케아만의 특징으로 디자인, 조립 가구, 그리고 홍보를 택했다.  (내용 줄임)

i03 Photo of IKEA, 1943

이케아는 세계 48개국에 38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매년 약 5억 명의 방문자들을 맞는다.  이케아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 또 수많은 부품들, 협업하는 다방면의 디자이너들, 각국의 생산지, 매년 세계 소비량의 1%를 소비하는 나무나 각종 부품들의 공급과 거미줄 같은 물류 시스템 등은 이케아를 하나의 학문으로 보고 연구하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혁명적인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에서 이케아는 전체 이케아 그룹의 한 부분일 뿐이다.  IKANO, 이카노 그룹은 이케아를 소유 관리하는 Inter IKEA, 인터 이케아 그룹과는 별개로 금융, 투자, 개발, 건설을 담당하는 그룹이다.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하여 많은 아파트들이 이카노의 이름으로 팔린다.  미리 설치된 가전제품 및 설비들은 이케아 가구 라인과 가전제품, 생활 라인이 설치되어 이케아의 갤러리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잉바르가 생각한 사업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이케아는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객과의 유대를 소통의 이미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초기의 목표를 이루고,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그는 다른 나라로 진출하며 단순한 목표를 벗어나 문화 판매 전략을 덧붙였다.  (내용 줄임)

i05 Photo by IKEA

아직까지 경영에 참여하는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고객에게 유익한 것이, 결국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케아의 그룹 구조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주식회사라는 구조로 회사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에 기업 공개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구두쇠의 욕심 또는 탈세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그가 이야기한 주식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각, 철학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미 세계 부호 중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더 싸게 공급한다는 그의 생각, 멋진 디자인의 가구를 팔고 생활에 친숙한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주주들의 영향을 받는 주식회사보다 개인회사를 고집하는 이유이다.  이케아는 매년 트렌드를 이끌 컬렉션을 발표한다.  수많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이미 익숙한 이케아는 제품 디자인이라는 트렌드를 넘어 기능, 소재, 색상, 가능성 등의 영역으로까지 역할을 넓이고 있다.  이케아의 많은 상품들은 이미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다.  다양한 색상이나 소재를 통해 북유럽의 디자인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양이나 남미의 고유 디자인이 이케아에서 소개된다고 해도, 이미 북유럽 디자이너의 눈으로 한번 걸러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정통성과는 거리가 멀다.  고유한 창작이나 전통을 이야기하기에는 이케아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케아의 본연의 목적은 누구나 쓰기 쉽고 싼 가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디자인을 이용한 평범한 가구였다.  이제 누구나 북유럽식 디자인을 접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케아만큼 큰 역할을 한 기업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같은 서양의 문화여도 멀게 느껴졌던 북유럽의 디자인을 북미의 가정으로 가져왔고, 다른 문화권의 식기와 침구들을 동양으로 이끌었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상상했던 이케아의 미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이케아를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알고 또 한 번쯤은 경험해 보기도 했다면, 또 이것이 그가 상상한 그의 계획이라면 그는 욕심쟁이였음이 틀림없다.

 

참고사이트
위키피디아
이케아 공식 사이트 : http://www.ikea.com/
이케아 박물관 : http://ikeamuseum.com/
인터 이케아 그룹 공식 사이트 : http://www.inter.ikea.com/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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