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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미니멀리즘, “작은 마을에서 탄생한 영원의 아름다움, 오레포쉬”

Photo from Orrefors.com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 크리스탈을 제외하면요.”  손에서 작업 중이던 크리스탈 덩어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오레포쉬의 유리 디자이너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크리스탈이나 유리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예쁜 화병이나 유리컵을 애용하는 사람이라면 오레포쉬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레포쉬는 공방이자 제품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스웨덴을 북유럽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크리스탈 유리 공예 왕국으로 만든 것은 오레포쉬의 역할이 크다.  (내용 줄임)

한국의 전통적인 모임에서는 은수저나 도기류를 닦는 일이 흔했다.  제례 의식에 쓰이는 제기들은 더욱 정성스럽게 닦고 또 닦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각종 그릇들이 모임을 빛내는 것은 물론, 주인의 정성까지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같은 수고를 나이프나 포크 같은 식기류와 각종 글라스에 쏟는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각종 화병이나 유리 조각품, 큰 샹들리에, 주문 제작한 코냑이나 와인병 등이 생활의 여유를 보여 주는 액세서리였다.  이런 식기들을 20인용, 많으면 40인용씩 갖추고 식탁 옆의 China Cabinet이라는 식기장에 진열하던 것을 주부의 큰 자랑으로 여기던 문화도 있었다.  그 이전부터 크리스탈과 유리 제품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치품이었지만, 스웨덴 오레포쉬의 유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수요도 증가했다.  오레포쉬는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량 생산 라인을 갖추는 동시에 소량으로도 생산하는 다양화를 이루었다.  오레포쉬 제품에서는 높은 품질과 뛰어난 디자인이 당연한 일이다.  현재도 오레포쉬는 최고 품질의 크리스탈과 유리 제품을 생산하며, 그 안에서도 완성도에 따라 A, B 또는 C 등급으로 나뉘어 가격의 큰 차이를 보인다.  A급과 B급을 금방 구분할 수 있다면 무척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다.  아주 미세한 점 같은 공기 방울 하나를, 그것도 등급이 낮은 한 세트 속의 단 한 개의 제품이 가진 오차를 찾기 위해 한참을 눈 아프게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내용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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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유리공예는 250여 년 전인 1742년, 오레포쉬와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Kosta, 코스타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유리 공예 기술은 유리와 유리를 붙여서 만드는 것이었다.  오레포쉬에서는 1726년 초, Lars Johan Silversparre, 랄스 요한 실버스파레가 용광로와 제철에 관한 허가를 받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로 Orrenas, 오레나스 호수로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의 “Orrefors, 오레포쉬”라는 이름이 생겼다.  1898년에 계속 이익이 감소하는 제철 대신 그 지역에 넘쳐나는 목재와 인력을 이용하는 유리 생산으로 회사의 방향을 바꾸었고, 이것이 바로 유리 공예 회사인 오레포쉬가 탄생한 과정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유리병, 램프갓, 유리컵, 향수병 같은 단순한 유리 제품만을 생산했다.  그 후 오레포쉬는 유리 기술자와 디자이너들을 대규모로 모집 하였으며, 유리 공예 기술과 미학적인 측면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0년 Johan Ekman, 요한 에크만이 회사를 매입하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전까지 오레포쉬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디자인이 오레포쉬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것을 느낀 에크만은 1916년에 Simon Gate, 시몬 게이트와 Edward Hald, 에드발드 할드를 오레포쉬에 합류시켰다.  이들의 합류로 오레포쉬는 “최고의 기술과 선택받은 디자인”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완성했다.  사실 두 사람의 디자인은 달랐고 취향마저 달랐다.  프랑스의 화가 마티스와 함께 수학했던 할드는 프랑스 예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자유로움과 모던함을 가지고 있는 화가였다.  게이트는 초상화와 풍경 화가로서 전통적인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했다.  누가 봐도 그들의 협업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스칸디나비즘 안에서 훌륭하게 화합할 수 있었다.  (내용 줄임)

이 당시는 모더니즘과 독일로부터의 바우하우스 기능주의와 맞물려 북유럽만의 디자인과 색깔을 찾기 시작하였다.  단순하고 절제된 선만으로도 화려함과 세련됨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며, 특히 유리 가공 기술로 다다를 수 있는 극도로 얇고 투명한 극한의 한계까지 디자인을 끌어올렸다.  오늘날 북유럽 미니멀리즘의 기초가 된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이 오레포쉬에서 실험되었고, 세계 속에 북유럽의 유리 공예를 알리는 오레포쉬가 된 것이다.  1919부터 1922년까지 오레포쉬는 정교한 장인 기술과 독특한 디자인, 기능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제품들, 일반적으로 널리쓰일 수 있는 제품라인, 예술품의 경지에 오른 작품들 등 여러 방면의 제품과 기술을 보유하였으며, 1925년 파리 박람회에서 오레포쉬만의 “최고의 기술과 선택받은 디자인”이라는 꿈을 이루었다.  아직까지도 유리 공예에서는 1910년부터 20여 년 동안 게이트와 할드가 개발하고 발전시킨 기술들이 널리 쓰이고 있다.

260년 동안 스웨덴의 유리공예는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아 왔으나 현대로 들어오면서 산업 구조와 소비자 취향의 변화로 과거의 눈부신 활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레포쉬는 현재 갤러리로 컨셉을 바꾸어 소품종 소량 생산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 공예품 생산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에도 이곳을 방문해보면 100여 년 전의 작품이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돼있다.  실보다 앏은 간결한 선 하나로 큰 몸뚱이를 감싸 안은 스웨덴 미니멀리즘의 정수라 불리는 유리 공예를 직접 볼 수 있다.

유리 공예에 관한 “최고의 기술과 선택받은 디자인”이라는 꿈을 가지고 100년 전 요한 에크만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여행했을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우거진 가문비나무숲 속에서 농가의 목초지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차분히 걸어보기 바란다.  반짝이는 호숫가에서 멀리 석조 담장을 바라보며 티끌 하나 없는 신선한 공기를 호흡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곳에서 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맑은 크리스탈과 유리 공예가 탄생했는지 느껴보면 좋겠다.

 

참고 사이트
오레포쉬 스웨덴 공식 사이트 : http://www.orrefors.se/
오레포쉬 미국 공식 사이트 : http://www.orrefors.us/
http://www.glassfromsweden.com/
위키피디아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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