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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나라들이 뭐 대단한 것들도 아니네, 편하게 쓰는 에세이

Photo from The National Interest / Reuters

글 쓰는 것에 눌리기 싫어하는 시기가 또 온 것 같아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날려본다.  비속어에도 이해를 부탁드린다.  코로나로 전 세계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만 잊어버리면, 축복받은 일요일 아침처럼 보였다.  아침마다 노르딕후스 웹과 소셜에 들어가서 지난밤 뉴스들을 읽는데, 선거철이긴 한가보다.  트윗의 내용들 중 대부분은 저 잘났다고 떠드는, 그것도 어디서 가져온 글 한두 줄로 싸우는 경우고, 나머지는 한 1% 정도 그래도 자기 얘길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것도 애완견과 옷 뭐 샀어요하는 자랑질임을 보면 참 자신의 얘기는 할 말이 없는가 보다.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야 자신을 알고 그래야 뭐 전할게 있다는 흐름으로 이해하지만 이건 정확히 습관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는 습관.  그래서 트윗은 남 얘기 따오기, 특히 인스타는 남이 볼걸 미리 예상해 보기가 아니던가.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그것들로 세상을 바꾸어 보자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단으로 소셜을 이해하셨다면, 전혀 아니다.

그다음으로 간 뉴스가 스웨덴인데, 트럼프가 어제 스웨덴이 실시하는 집단 면역이라는 것은 “절대 따라 하면 안 되는”으로 규정해 버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트럼프가 참을 수 없었을 게다.  입이 간지러워서.  난 처음 스웨덴 뉴스를, 한 두 주 됐나 보다, 듣고 나서 “이런 미친놈들”이란 소리가 입 밖으로 자연스레 나왔다.  “죽을 사람은 일찍 죽이고, 나머지를 살려보자.”거나 “또 없는 놈들만 먼저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와~ 나도 파쇼 성격이 어느 정도 있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 국가 집단 주의자가 아닌가 한참 후에 생각이 들었다.  나도 변했다.  이걸 좋은 말로 수용이라고 하던가, 또는 교화?

전혀 다른 두 방향으로 가는 시스템이 있다.  그 속에 한국은 끼어있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그런데 한국은 어찌 보면 중국 쪽이었다.  집단체제로 전체 사회를 이해하고,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부모 같은 시스템이었다.  “자유”라는 단어를 보면 상황에 따라 단어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다.  중국에서 공산당을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한다는 뉴스를 봤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현재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짓을 했다는 해외 중국 학생을 포함한 중국 내 집단의 구성원들을 보고 놀랐다.  뭐가 이상하냐는 태도.  태어나면서부터 사상과 이론 교육이 뼛속까지 젖은 국가관에서는 뭐 하나쯤 할 수도라는 사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건 뭐 정부기관에서 누구 하나 붙잡아 때려도 맞을만하니까 그렇겠지라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매 맞는 아내는 맞을만하니까 맞았고.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집단 사고다.  트럼프가 “모든 중국 학생은 스파이다.”라고 뱉은 말과 정확이 같은 수준의 현상이다.  트럼프는 정확히 기획하고 쑈를 섞어 뱉듯이 했다는 것과 “뭐???” 같이 얼떨떨하게 뭐가 뭔지도 모르는 그냥 처맞아도 왜 맞는지 모르는 그 상황의 차이라고 밖에 다름이 없다.

한국에서 처음에 왜 중국이나 세계 모두를 막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다.  또 정부가 뭔 이유 때문에, 자세히 보면 망하고 있는 경제를 더 빨리 망하게 할 수 없고, 대한민국 경제의 일부분은 그동안 다른 나라들과 수없는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기에 잠시 스톱하는 게 회복하기 힘들어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의 방향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지 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헛수고였는지 아직 모른다.  포인트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세계에 그렇게 헛짓하는 나라가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스웨덴이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헛짓이라고 말했다.  배경은 분명히 스웨덴이 지금 실시하는 집단 면역이라는 정책 자체가 망하고 다 죽어 나갈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때문이다.  나 뿐 아니라 미국, 한국 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강력한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는 꼴이다.  정치적으로는 아주 우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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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스웨덴의 각 언론에는 10,000명의 확진자를 넘긴 가운데 1,000여 명 가까운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다.  “으악~”  이 비율은….  스웨덴 내 전 국민의 아는 사람 하나쯤은 걸렸다는 것과 같다.  그중 이름을 기억하는 한 사람쯤 죽고.  날 좋은 때가 아니면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나라, 전 국토를 뒤저도 여행지에 참 뭐하나 볼 것 없는 나라에서 시내 따뜻한 곳 한편엔 난민들만 쭉 햇볕 쬐는 게 익숙하던 나라다.  뭐 사실 체크니 할 필요도 없이, 하늘 높게 치솟는 그래프와 줄레 줄레 뭐 유명한 타이틀 한 둘을 단 사람들이 “스웨덴은 지금이라도 막아야 한다.”라고 떠든다.  의료인들에게 시간 외 근무 수당이 두 배 넘게 지급된다는 것, 스톡홀름에서 가장 유명한 카롤린스카 대학 병원의 중증 환자 베드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얘기, 전 인구의 약 반쯤 걸려야 끝날 것인가라고 정부를 향해 묻는 얘기들이 가득하다.  물론 이제 다 죽었다 하고 소리치는 이민자들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편으로 조용한 시민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를 믿는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심각한 환자를 집중치료하고 전 국민을 향하는 과잉 관리는 낭비다.”등 이다.  베드에 관해서는 사전 예방의학을 실시하는 스웨덴의 의료 정책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으나, 무조건 정부를 믿는다는 시민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이걸 보고 나는 내가 한국화됐다고 느낀 것이다.  프랑스의 한 언론에서 한국이 집단체제같이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한 걸 아는가?  마치 중국과 같이 보는 그들의 환멸을 느꼈다.  내가 어릴 땐 이런 상황에서 “넌 뭐가 잘나서 그래?”라고 되받아 쳤겠지만 이제 그건 내 품위를 스스로 깎아먹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내 포인트는 다른 생각을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과 정부를 믿을 수 있는 이유로 좁혀진다.

누가 그랬다.  한국 같으면 탄핵이라고.  그동안 워낙 속였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친 것이 뭐 그리 오랜 얘기가 아니다.  남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못 받아들이는 이유는 집단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모두 같아야 하고 다르면 이상한 놈으로 몰아 이지메가 가해지는 일본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 프랑스 언론의 눈에.  왜 한 사람도 정부가 너무 심하게 개인 자유와 인권을 관리하려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한 주제로 모두 귀속된 그 하나.  코로나의 공포다.  공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코로나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는걸 묻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정부를 그렇게 신뢰하는 것은 정부가 책임 있는 조사 결과를 내놨고, 그들이 지금까지 그랬듯 정부가 어떠한 실망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그 누구도 사심으로 돈 떼먹은 적이 없고 그걸 상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투명하다는 말은 이때 써야 한다.  그 누구도 스웨덴 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선거때 외치지 않는다.  당연하니까.  공평하고, 둘 다 아주 이득이고, 이번 기회가 지나면 또 얻기 힘들다는 사업 소개는 어떤가?  “사기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에 자신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정치인들은 서로 오바하기 바쁘다.  아쉬워서 그렇다.  망한 건 다 망했는데, 그걸 요리조리 아닌척하려니 자신들이 한걸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위기라고 말하는 나라들의 수장을 기억해라.  이 위기가 지나면 우린 어떻게 극복하려고 한다고 자신의 기획이 있는 지도자들을 기억해라.  북유럽의 나라들이 복지로 넘쳐나는 희망찬 파라다이스라고 꿈꾸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나라들을 찾아라.  아주 황당해 할 것 같다.  그러면서 상상은 상상에 머문다는 그 말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북유럽의 시스템에서 뭔가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숨죽이고 추이를 지켜보길 바란다.  나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고, 희생자가 얼마나 북유럽에서 줄어드는지 보다 사람들과 정부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가고 어떻게 합의해 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 유럽의 상황은 전쟁보다 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 이것도 내 오바일수 있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의 인생을 산다고 여길 수도 있다.  멀리 보면 하루를 더 살기 위한 노력보다 오늘 충실한 것을 찾는 사고의 차이 일수도 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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