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iving / 일반 / 북유럽 국가들이 살아가는 방법

북유럽 국가들이 살아가는 방법

Photo from REUTERS / Lehtikuva Lehtikuva  (좌에서 우로) 핀란드 교육부 장관 Li Andersson 32세, 경제부 장관 Katri Kulmuni 32세, 총리 Sanna Marin 34세, 내무 장관 Maria Ohisalo 34세

국가가 유지되고, 때로는 발전과 쇠퇴를 경험한다.  국가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발전한다는 것인가.  나는 이 답을 개인에게서 생각한다.  국가 경영이란 큰 단어도 결국 사람이 시작하여, 그 사람들이 이룬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발전하는가 같은 문제는 공평하지 않음에 근거한다.  원래부터 비옥한 자연환경을 가진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국가들은 그다음 단계를 생각한다.  이 시점부터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발전한 국가들이 주목받을 때다.

나는 현시대의 국가 성장 요인 중 혁신성이란 말을 좋아한다.  고대의 노동 집약적, 근대의 기술 집약적 산업 구조 속에서도 혁신성이란 말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돌을 나를 때에도 혁신성이 높은 집단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더구나 현재 같은 “초” 시대에는 아이디어와 실행, 그리고 응용 분야에 발전의 의미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같이 좋은 혁신이란 가치도 사람들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구겨지는 회의 메모와 같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혁신성이 뛰어난 나라들이다.  여기서의 혁신은 새로운 관습이나 변화를 선도하거나 기꺼이 이해하려는 태도다.  새로운 트렌드, 기술, 문화, 사상 등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여러 가지 가치들을 주도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바탕은 사회적 관용 때문이다.  누가 새로운 말을 하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 자신의 취향이 아닌 해외 문화도 한편으로 필요하다는 이해, 사람이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나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겸손, 그래서 한 사건이 자신에게 큰 위해를 가하거나 재해의 수준이 아닌 이상 사회적 변화는 좋다는 긍정적 마인드가 사회적 관용이다.

이번 실시한 핀란드의 총리와 내각의 개편은 전 세계가 놀라는 사건이다.  젊어도 너무 젊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역시 핀란드”를 외쳤다.  총리로 지명된 산나 마린이 34세인 것으로 시작하여, 전체 내각 주요 인사 20명의 평균 나이는 47.5세, 그중 여성 장관은 11명이었다.  내각의 구도를 보면 젊은 30대의 여성 장관들이 주요직을 리드하고 40대 이상의 경험 있는 관료들이 받쳐주는 모양새다.  내가 이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는 이유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이 이상한 내각을 국민들이 지지할 정도로 사회적 관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정치는 등대일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등대가 밝을수록, 신뢰가 높을수록 국민의 배는 그 등대를 향해 발전이란 행동을 취한다.  이것이 정치이고, 국민을 움직이게 하는 희망을 주는 행위다.  핀란드의 내각이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적다고 실패의 확률이 올라가는가.  반대로 나이 들고, 경험이 있는 내각이 모이면 모두 성공하는 정치가 가능한가.  핀란드의 이번 내각은 국민의 관용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룬 희망이다.  정확히 어려운 시절을 겪었을 때 혁신과 국민적 이해로 헤쳐 나왔던 핀란드의 역사와 같다.

사회적 관용과 혁신성에 관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비추어 보면, 미국의 혁신성은 아주 일부고, 나머지는 그럴 수 있겠다는 이해를 가진다.  일본의 경우는 전 국민이 관료주의에 빠져 혁신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끌고 나머지는 이를 알면서도 무시한다.  의외로 세계에서 혁신성이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전 국민이 아이디어에 넘치며, 실험적인 도전에도 익숙하다.  이것이 트렌드며, 기술, K pop, 화장품과 K 상품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참 힘들다.  사회적 관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집단, 나이, 학벌, 경험, 신분 등에 자신을 맡기고 산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오기 힘들고,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도 자신이 믿던 사고 때문에라도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농산물 보호 정책, 노사 협력, 특정 단체의 이기적인 주장 등은 그들의 투표권과 맞물려 전 국민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낀다.  오래전 한 신문에 우마차를 타고 가며, 핸드폰을 하는 중국의 한 농촌 사람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기자는 발전과 오래된 구식의 반증쯤으로 생각했겠지만 지금 한국의 모습에서 같은 장면은 수없이 많이 있다.  사는 곳은 21세기, 생각은 18세기쯤의 상황이 수없이 떠오른다.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먼저 해야 할 문제 같다.

나는 다시 주제로 돌아가 북유럽 국가들의 혁신성이야말로 지금 그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난민의 문제들, 혼란들, 사회의 범죄들.  나도 깜짝깜짝 놀라는 새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인내에 한계를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 북유럽 국민들이 감내하고 있는 그 인내심에 존경을 표할 때가 많다.  아직 모든 뉴스거리들이라도 사회적 관용 안에 있다는 소리다.  이것에 수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만일 사회적 관용 수치 같은 것이 가능하다면 난 다른 문화권의 그 짧은 프라이팬 달구는 시간보다 100배쯤은 더 높게 주고 싶다.  그 인내의 시간, 사회적 관용으로 이해되는 그 시간에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삭이고 다시 생각하는 사고의 경험을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이해는 희망으로 바뀌고, 이 동의를 모두 믿고 움직인다.  이것이 북유럽 사회의 발전이다.  내년에 이어 대부분의 화석 관련 내연기관이 없어지는 10여 년 후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렇게 바뀐 북유럽 사회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용을 바탕으로 수백 년간 혁신을 이룬 북유럽 국가들이 단지 생활과 업무 관련 환경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현실로 보여줄 그 순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by Luke

You may also like
부정부패한 북유럽 사회
덴마크 : 스웨덴 = 대한민국 : ?
정상과 비정상의 사회
한국이 북유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