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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감성과 감성의 쳇바퀴를 바꾸는 방법

Photo by Hans-Olof Utsi / imagebank.sweden.se

2018년 한국 트렌드의 하나로 만족이 뽑혔다.  지난해들의 단어였던 가성비나 효율을 따지는 단어들이 비로소 개인의 취향에 맟춰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북유럽 감성”이란 단어는 지난 10여 년간 유행하는 단어다.  감성은 느낌이고, 생각이다.  즉, 인간이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 특히 북유럽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 북유럽 감성이다.

개인의 생활은 당연히 그 문화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북유럽 문화 속에서의 느낌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또 어떤 한 현상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느낌일 것이다.  이런 느낌은 삶의 여유가 있을수록, 내 시간을 그 느낌에 투자할수록, 또 개인이 더 감성적인 성격일수록 더 깊은 “느낌”을 받는다.  이 반대로 내가 항상 바쁘고, 여유가 없고, 메마른 감정을 가지고 있을수록 감성은 마르고, 북유럽 감성의 의미도 멀어진다.

그러면서 나는 왜 북유럽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북유럽 감성은 어느 한 예술이나 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구조, 생활 방식, 전통, 예절, 식생활 등의 모든 일상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북유럽 감성의 근원은 문화이고, 감성의 전달자는 일상생활이다.  그리고 그 감성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은 개인들이다.  이 두세 가지의 큰 원인이 비로소 개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감성적인 통로고,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이 가장 주관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에 있다.

단순히 어느 문화에서 시간을 더 준다고 감성이 살아나는 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는 질의 차이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고의 수준은 질이 있다.  와~ 맛있겠다는 감탄도 감성이고 개인의 느낌이지만, 음식을 보고 순간 스쳐가는 자연과 이웃, 내 현재에 대한 만족, 그 순간의 행복 같은 여러 부과적인 것들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는 생활을 오래 해 왔다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지기 힘들다.  또 현재의 나는 하늘에 떠오른 드론의 사고가 아니라, 다시 말해 절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옆 테이블의 어느 장신구나 다른 생활의 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에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감성의 작용이 아니라 판단과 비교의 작용이다.  사용되는 뇌의 부분이 다르다.  흔히 생각이 많으면 느낌이 많고 감성적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북유럽 감성은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상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북유럽에서 사람들이 더 감성적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감성을 느끼는 방법 중 가장 큰 것은 나를 중심으로 절대적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란 말이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나라는 존재는 그 문화에 평균적인 상식과 예절, 사고 수준을 가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가 좋은 것이 다른 타인에게 이해가 되어야 하며 문화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상식의 범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느끼고 싶은 감성의 뿌리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뿐 아니라 문화도 번역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가치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고, 또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꿈에 보이던 어느 문화에 대한 사랑은 혼자만의 망상이었고, 얘네들 왜 그래를 외치며 다른 문화를 비판한다.  아주 일상적인 경험일 것이다.  여행은 여행이니까.  한 문화 내에서 어느 느낌을 받으려면 그 문화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문화의 언어란 생활이고 음식이고, 그들의 일상 모습이다.  한두 번 같이 식사한 몇 사람이 한 문화를 대신한다는 믿음을 가지면 참 맘 편한 생각이다.  그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대화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오랜 투자가 필요하다.  현대의 한국에서 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 조금 살며,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북유럽 감성에 대해 궁금함이 넘침도 알았다.  내가 위에서 얘기한 말들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이해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현실이 달라서 그렇다.  북유럽을 이해하려는 그 투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각하다 보면 자꾸 내 현실과 만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시작하기 수백 번, 때려치운 것도 수백 번 하며 수십 년을 그냥 보낸다.  왜 당장 불편한 게 없으니까.  뭐 써먹을지도 모르는데…  아주 한국적인 본전 심리가 돋보인다.  손해는 안 보려는 문화와 학습이 안 보이는 투자는 낭비라고 인식한다.  느낌은 사치일 수도 있다.  혹독한 생존에서의 느낌은 오히려 본능만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글의 생존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정글의 적자생존 속에서 살아가려고 스스로 만든 덫에 지금은 내가 뭐 하는 짓인가를 느끼고 다시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감성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미리 배운 도둑질같이 스스로 투자하기는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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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스웨덴 말뫼에서 요테보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그린 그림이다.  누구나 현실에서의 발전을 생각하고, 여기서는 감성적인 발전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신적 투자에 대한 경제적 문제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쳇바퀴를 평생 반복한다.  나는 작은 사고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것에 의한 감성의 경험을 만족이라 부른다.  그 만족에서 현실로의 루프가 하나 그려지고, 그 만족에 의해 조금이라도 바뀐 내가 결국 경제적인 발전으로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의 변화가 빨라도 하나의 루프가 회전하는 데는 수년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의 만족과 경험이 비로소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더 자신의 능력마저 변화시키는 데는 그만한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나를 중심으로 북유럽 문화의 모든 것을 느끼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 모두 오기를 바란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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