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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춥고 외로운 계절의 아름다움

Photo by Marie Carlsson / TT

한국에서는 막 11월이 시작되었다.  해마다 이쯤이 되면 북유럽에는 슬슬 눈이 오기 시작한다.  북극권 뿐 아니라 좀 북쪽에 있는 마을에도 아침이면 흰 숨이 쉬어지고 발걸음이 걱정되는 때다.  수도인 스톡홀름과 두 번째로 큰 도시인 Göteborg, 요테보리로 가는 길에 위치한 Skövde, 회브떼 그리고 Falköping, 푈쇠핑에서는 그저께 제법 큰 눈이 내렸다.  큰 호수를 사이에 둔 이유인지, 남쪽 지방임에도 이른 눈을 맞았다.  스톡홀름 북쪽엔 남부 지방과 전혀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  지난달부터 간간이 내리던 눈이 Norrland, 놀란드엔 본격적으로 내렸다.  약 20센티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오슬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위치한 Värmland, 밤란드에는 다시 10센티가 그 옆의 Dalarna, 달라냐에도 비슷하게 눈이 내렸다.

추위나 눈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런 계절이 자연이란 걸 안다.  인간도 자연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한 부분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 추위, 배고픔 같은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더욱이 북극권 문화에서 추위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열대에서 더위가 싫다거나 알프스에서 바닷가를 그리는 것과 같다.  자연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면서 적응해야 할 것임을 바이킹들은 천 년 전에 이미 깨달았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도전한다는 말을 안 쓴다.  내가 광산에서 자원을 캐고, 유전에서 원유를 뽑아도 그것은 온전히 자연에서 온 것임을 항상 기억한다.  북극 탐험, 최고봉 등정 등 인간의 한계를 겨루는 이러한 단어들은 내게도 참 어색한 말들이다.  북유럽에서는 북극의 자연을 조사하고, 그 속에 다른 변화를 걱정할 뿐이다.  아무리 자연이 모질었어도 자연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그 개념이 뿌리 속에 박혀있다.

추위나 눈에 치를 떠는 사람들은 막상 북극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궁금함이 있다.  영하 51도의 시베리아 어느 마을 같은 익스트림한 온도가 아니어도 스웨덴에는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가 흔하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추위나 날씨가 아니라 그로 인한 외로움이다.  자신도 모르는 동상 예방을 위해 외부 근무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실내의 생활은 오히려 더 포근하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계절의 외로움이 저절로 생긴다.  한국의 가을에는 누구나 생각이 깊어지고 감성적이 된다는 통념이 있다.  단지 온도 때문에?  가을엔 온도 변화 외에 습도나, 대기 중 냄새, 옷차림, 태양빛의 각도 변화 등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계절을 탄다는 말은 이런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스웨덴의 Dalarna, 달라냐 지방은 노르웨이 쪽에 딱 붙은 위치에 산악 지형이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아무것도, 정말 숟가락만 가진 동네였다.  자원이란 걸 알게 되면서 이곳에 구리광산을 찾아냈고, 너도 나도 광산에서 노동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작업들이 얼마나 인간에게 해로운지, 중금속에 노출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 그런 순박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영국과 미국에는 방사능 물질인 우라늄으로 실험을 하는 어린이용 실험세트와 라듐이 다량 포함된 미백용 화장품이 버젓이 팔리던 시절이니까…  겨울의 혹한이 다가오면 외지에서 온 광산 인부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지만, 그렇지 못한 인부들도 많았다.  생필품 공급이 끊기거나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병으로 시달리면서도 남아있는 인부들을 괴롭힌 건 외로움이었다.  그들의 손은 어느새 구리물의 진한 빨간색으로 물들은 지 오래였고, 낮과 밤이 서로 엮여서 구별하기 힘든 긴 밤에 그들은 나무조각을 시작했다.  딱딱한 굳은살로 사포질을 대신하면서 그들이 만든 조각은 그들이 가장 친숙하게 여긴 말이다.  이 말을 Dalahäst, 달라해스트라고 부른다.  달라냐의 말이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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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Wikipedia

이 조각은 광산 인부들의 우울증 치료제였고, 초기에는 당연히 다 빨간색이었다.  그들은 장식으로,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또는 화폐를 대신하는 동네 돈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알려져서 다른 지역에서 이것을 살 구매자가 나타나자.  광산 인부들은 조각에 더 열중했다.  비슷한 시기 구리광산의 효용성도 떨어지던 시기, 달라냐 지방은 달라해스트가 더 유명해졌다.

한 마디의 아름다운 곡을 만들기 위해 작곡가가 흘린 눈물을 우린 기억하지 못한다.  뭉크의 절규가 그를 완전히 정신 이상자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기억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서 더 아름다운 것이 탄생하는 세상을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외로움과 고통을 더 받아들이는 “수용”이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장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들이 힘들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더 깊이 고통을 느끼고 그 한계를 겪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염세주의적인가?  또는 운명론자같이 보이는가?  북유럽의 문화적 아름다움과 깊은 사고, 그들의 시스템, 생활 등의 모든 것은 그들의 수용에서 나왔다.  자신의 상황이 원망스러운가.  괴롭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가.  누구를 꼭 비난하고 싶은가.

받아들여라.  내가 아직 다른 생각과 어떤 선택을 기대한다면 나는 아직 그 고통의 끝에 오지 않은 걸께다.  북유럽 혹한, 척박한 땅, 적은 인구,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바이킹의 원시생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또 생각한 결과가 지금의 북유럽이다.  그들의 조용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 있고 자신감 있는 그 모습에 난 가끔 눈물이 난다.  세계 대전,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나온 사고, 테러로 인한 희생 등 국가적 슬픔에 오히려 침착한 그들이 오히려 더 가슴 아파 보인다.

아름다움을 원하는가?  더 깊게 생각해보라.

행복을 원하는가?  고통을 즐기는 법을 배워라.

춥고 더운 게 아직 삶에 큰일인가?  조금 더 성숙해져라.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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