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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출산율과 한국의 출산율, 왜 아기를 낳지 않을까?

Photo by Niclas Jessen / VisitDenmark.dk

한국은 아기를 낳지 않는 사회인가.  인구 절벽.  일할 사람이 없다.  이 같은 얘기는 요즘 각종 언론에서 떠드는 소리다.  한 방송사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문제에 불을 지피듯,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주장한 대책도 아울러 뭇매를 맞고 있다.  고학력의 여성이 저출산의 원인일수 있다는 이 주장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결혼을 기피하는데도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 등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여성의 교육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결혼 선택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 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컨텐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나는 이 연구위원의 의견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출산의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는다고 떠드는 것도 무척 우스운 일이지만, 그 대책이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해서 이 사람을 당장 해고 조치하는 것도 상당히 황당하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한국식 교육으로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나온 대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다른 연구위원이 다시 같은 연구를 한다고 해서 다른 대책이 나오기 힘들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고의 모순을 태생적으로 갖기 마련이다.  마치 원인을 앞에서부터 근본으로 추적하듯 역발상을 한 대책은 출산의 기피는 결혼의 기피로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로 생각하였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이를 갖고서도 부모의 역할을 기피하는 부모나 아기를 낳기만 하면 장래 노동력으로 자동 성장하는 인간의 노동 재료화 사고가 바닥에 깔려있다.  그리고 결혼을 상향 하향으로 생각하는 흥정이나 한 사고를 공공기관에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주의적 사고도 가지고 있다.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은가.  한 흐름을 누군가 바꿀 수 있고, 그것도 정부의 힘이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문화도 반드시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컨트롤 함으로써 문화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흔히 공감을 받는 리더 주의, 집단 사회의식이다.  이 류의 대책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도형 대책은 비슷하다.

출산율의 저하는 아기를 낳지 않아서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같은 말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이 없기에 자신 외의 존재에게 쓸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자산은 경제적 자산뿐 아니라 여유, 사랑, 안정, 행복 같은 무형의 자산도 크다.  결혼이 상향 하향의 바람을 탄 것은 미래를 확실히 하려는 욕심이다.  혼자 노력하느니 둘이하면 더 좋지 않은가라는 단순한 수학적 계산이고, 이것도 결국 미래에 대해 보다 나은 점을 가지려는 욕심이다.  당사자들은 발전이라 말한다.

북유럽의 사회를 보자.  1995년에서 2005년까지 바닥을 치던 출산율은 2.9%, 0.5%, 1.9%였다.  현재 한국의 1.2%보다 더 낮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현재는 스웨덴 1.7%, 노르웨이 1.9%, 덴마크 1.8%를 기록한다.  이것도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미국보다 더 높은 수치며 OECD 국가 중 최상위 순위다.  사이언스 노르딕은 노르웨이가 다른 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와 견주어도 왜 출산율이 높은가에 대해 기사를 썼다.  스웨덴이나 덴마크같이 노르웨이 역시 1980년대 후반기에는 적은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다.  점점 상승하던 출산율은 현재에 이르러 정점을 맞았으며 이로 인해 노동 인구 또한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오슬로 대학의 Eirin Pedersen은 왜 노르웨이의 남녀가 아기를 갖는가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면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체가 패키지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지원과 복지 정책.  아기를 맡기고 돌보아줄 사회적 지원과 항상 연락할 수 있는 지원시설 등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경제적 지원 외에도 문화적 이슈가 있다.  “복지국가라는 이름은 우리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독일 동료는 ‘스칸디나비아의 좋은 삶이란 의미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성립할 수 없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생각하지 않는 아이와 함께라는 문화는 출산에 큰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국가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복지 국가라는 말이 그저 맞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신뢰를 주는 것에 있다.  장래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며, 어떻게 교육받을 것인가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도, 장래도 아기로 인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오히려 노르웨이의 문화를 위해서, 내 가족과 완성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중요한 사항은 가정의 행복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이 행복은 객관적이며 상당히 구체적이다.  평등한 사회에서 내 아기가 평등하게 자라고 나와 같은 행복을 가질 것을 알고 있다.  더 똑똑하게, 더 많은 지식으로 무장하고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회적 리더로 내 아기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눈에 보이는 길을 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의 아기가 큰 사람, 더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에 따라 나라에서 아무리 지원을 해도 모자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반성이 어떤 나라들은 필요하다.  마치 닭과 달걀 같은 상황 아닌가.  사회가 좋으니 그 사회에 맞도록 내 아기도 키울 수 있다와 사회의 구성원이 깨닫고 그들이 사회를 구성해야 좋은 사회가 된다가 서로 누가 먼저일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남녀평등적인 사고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육아에 남녀가 있을 수 없고, 누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필요한 사람인가는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차별될 수 없으며, 아기에 관한 일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수 없다.  보통 일찍 출산을 하는 중산 노동자 그룹은 25세에서 30세 이전에 출산 시기를 맞는다.  고학력 전문직 그룹은 35세가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직업군에 따라 아기를 출산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그에 따른 차별은 없다.  오히려 전문가의 그룹에서도 일찍 출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나이 많은 부모가 더 힘들게 육아를 한다는 사실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임금과 노동 상황도 비교적 평준화되었기에 더 돈을 벌거나 일할 시간에 쫓겨 아기를 늦게 갖는 경우는 없다.  이 룰에는 일반 노동자나 고위 공무원, 전문직 사무원도 동일하다.  다시 말해 내 아기가 다니는 탁아소나 유아원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아기들도 같이 다니고, 같은 육아 시스템 안에서 같이 자란다는 것이다.  더 돈을 벌어 갖는 사교육은 고사하고 누구나 같은 환경에서 안정된 육아가 최고라는 생각이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흐름을 이민이나 정책으로 단시간에 바꿀 수 없다.  흘러간 시간만큼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여 자연스럽게 바꾸어야 한다는 바탕 사고가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바꿀까.  단기간의 생각으로는 아기를 낳을 환경이 필요하다.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자금과 시설을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  의무 교육을 탄생에서부터 시작하고 초등학교 이전까지는 지원금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 단기간의 정책은 자금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이미 정부나 지원 기관의 손을 벗어난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문화는 하루에 만들어질 수 없다.  아기들이 앞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미래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글에서 노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정확히 보여주어야 지금의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살수 있다고 주장했듯이 아기들이 어디에서 교육을 받고 어떻게 자랄 것인지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아기가 제일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삶을 바랄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고와 국제적 상식을 소유한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훌륭한 기초적 상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욕심으로 뒤틀린 비상식이 성공으로 비치는 상황이다.  공부를 할 수 없는 지력임에도 왜 대학을 가야 하며, 유학은 무엇이고,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 보다 취업이나 공무원에 목숨을 거는 이상한 사회다.  내가 누구인지, 왜 그 일을 하는지 보다, 남들은 그 일을 어떻게 보는지, 자랑거리가 있는지 따지는 멍청한 사회다.  한국에서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좁은 사회다.  자신이 얼마나 비루한 사고를 가졌는지 조금만 살아보면 느낄 일이지만 달리던 관성으로 죽을 때까지 가족에 대해 사랑한다 한번 말 못 하는 걸 당연하다 핑계 대는 사회다.  출산은 정상적인 사고이고 동물적 본능이다.  누구는 똑똑하지 않아서 출산하는가.  자신이 상황에 핑계에 둘러댈 거리 찾는 이 시간에도 한국의 사회는 더 뒤틀어지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네가 나보다 더 똑똑한 탓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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