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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창의성 교육과 4차 산업혁명

Photo by Cecilia Larsson Lantz / Imagebank.sweden.se

창의성이란 단어에 최근 주목하게 되었다.  모 프로젝과의 연관 때문인데, 한국의 교육 일선에서는 “북유럽이 디자인과 독특한 예술이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 상식으로 퍼진 데에는 특별한 교육이 바탕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래서 북유럽의 교육 제도뿐 아니라 그 내용도 학습하고 한국의 교육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2015년 말부터 나타났다.

한국인 몇 명에게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규정하여 몇 단어로 설명하라고 하면 망설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북유럽 사람 몇 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의 우리들은 매일 답습하는 문화적 습관을 생각하며 비교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오래될수록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그래서 한국에 오래 머물며 관찰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오히려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더 잘 집어낼 수도 있다.  노르딕후스도 이와 같은 과정의 결과물이며 북유럽의 오랜 문화를 꿰뚫어 보고 있다.  북유럽은 창의 교육이란 말이 없다.  교과 과정을 만들어 교육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생각과 사고의 한 부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Internalization, 내면화 교육의 작은 부분이다.

창의성, 창조성, 창의력… 그 단어들의 뜻을 자세히 규정한 학술적 정의도 있으나 나는 새롭고 혁신적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습관을 얘기하고 싶다.  창의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오늘, 빛나는 과학기술을 개발시켰고 그 혜택을 받고 있다.  만일 인간이 창의성이 없는 존재라면 다가오는 내일에는 어느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주어야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움직이며, 생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으로 노동을 한다.  그래서 삶과 행복을 만들고, 다른 사회를 돕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창의성은 자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누가 시키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보다 스스로 즐거울 때 보다 큰 창의성이 발휘된다.  다른 말로는 보다 고부가가치의 사고를 할 수 있다.

한국의 직업환경을 보자.  몇 시간 더 일하고 더 깨끗한가 하는 노동환경을 들추지 않아도, 답답함이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캐주얼 복장으로 출근하는 회사에서 시행전 수십 가지의 복장 규정을 제시한다.  조용히 시킨 일을 꾸준히 하는 기업 윤리에 십수 년 찌들다 보면 천재도 반복에 익숙한 단순노동자가 된다.  머리 깎고 검은 복장에 일본식으로 학칙을 만든 학교를 마친 모범생들이 현 한국 사회의 리더로 자랐다.  창의성이란 사탕발림보다는 단어 하나 더 외우고 남들이 못할 때 따라잡아야 되는 야비(?) 함을 잘한다고 칭찬받던 세대다.  그들이 국회, 법원, 정부 기관, 교육, 기업의 일선에서 오늘 창의성을 외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할까?

북유럽에서 한 시간 가량 들은 감동으로 한국의 교육에 반영이 가능할 것이란 사고 자체가 틀렸다.  다른 사람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실망의 문이다.  창의력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나온다.  쓰레기통 속의 디오게네스가 환경이 좋아서 철학적 사고를 한 것이 아니다.  그의 본성이며 스스로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누구나 즐겁고 하고 싶은 사고가 있으면 창의성은 높아지며, 습관처럼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이디어는 높은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야와 단계에 따라 다양하며 다른 사람과 협업하면 효율이 훨씬 높아진다.  그리고 기술과학같이 첨단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 학문, 모든 활동에 창의성은 당연히 필요하다.

북유럽의 창의성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고를 해야 하는 발판을 교육한다.  새롭거나 혁신적이란 단어는 의미가 없다.  사고 자체가 새로운 것이기에…  어느 상황이나 다른 개인 간의 관계, 사회적 발전, 직업관, 그리고 초등학생도 아는 entrepreneurship, 기업관 교육 등에 바탕이 된다.  유치원부터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시작하는 대인관계, 사회교육, 직업교육,  그리고 고학년의 직업관 교육, 체험 등이 학생들을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시키고, 사회는 그 환경을 유지한다.  한국에서 창의성이 중요한 줄 알았다면, 유치원에서부터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고, 그 바탕이 갖춰진 학생들의 성장과 맞추어 창의성의 주제를 다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시작해도 창의성의 내용을 교육받은 학생이 사회로 나오는 시기는 17년 후이다.  그것도 사회가 그들의 창의성과 직업관을 인정하고 보편적 가치로 바뀌었다는 가정 아래서다.

창의성이 다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4차 산업 혁명 때문이다.  이것이 4차인지, 컴퓨터와 전자 기술 혁명으로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것이 4차 산업 혁명이 맞는다면 이미 6년 전부터 시작되어 미국과 유럽, 북유럽은 이미 트랙을 출발했다.  4차 산업혁명은 초지능과 초연결이라는 상상의 가치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며, 우리의 미래 환경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인공지능 알파고와 왓슨이 보여준 완벽한 승리는 단지 일자리 몇 개가 대치되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불리던 창조의 능력, 그래서 작가나 예술가가 최종적으로 존재할 직업이란 예측도 틀리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창조를 시작했고 초보적인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았다.  그 인공지능과 사물이 전 세계에 걸쳐 연결되는 Hyper Connected Society, 초연결 사회에서는 현 직업의 대부분이 필요 없는 오락으로 바뀐다.  국가와 지역, 문화에 적응한 시스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암울한 것은 인간이 창의성으로 만들어낼 신 기술들의 경쟁상대는 기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기계와 협업하며 사업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이 시대가 온다면, 그 발걸음이 이미 떨어졌다면 앞으로의 자원은 석유와 농작물이 아닌 창의성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고속 발전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 눈부신 발전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어떤 희생이 뒤따랐는지는 이 대목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 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경험은 자신감과 꿈을 다시 꾸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한국의 빈곤과 같은 시기 한국을 무시하기까지 하며 잘 살았던,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들과 남미의 황홀한 경제 호황은 어디로 갔는가.  그 국민들은 실패했다.  국민은 나태하고 정치는 타락했다.  법과 교육은 오히려 동조하고 같이 침몰했다.  그러나 더욱 참담한 것은 국민들의 기억은 실패를 기억하고 한때 화려했던 과거를 아직도 그린다는 현실이다.  실패 후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운 이유는 실패라는 브레이크가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실패를 잊기가 그렇게 힘이 든다.  그러나 한국의 기억은 좋다.  건전하고 꿈이 있다.  그리고 국가 전략적으로 키운 인재들과 우수한 인프라가 있다.  아마 한국이 과거 핀란드의 발전 시기를 한 부분 띄어서 배울 수 있다면, 덴마크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같이 협업할 수 있다면, 노르웨이의 우직한 미래 투자를 같이 할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스웨덴의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유치원의 교육을 한국의 교육자들이 이해할 지력이 생길 수 있다면…  한국의 미래는 밝다.  선진국, 1위 2위, 수출 총액, 국민 생산 같은 유치한 숫자로 표현되는 사고를 훨씬 넘어서는 한국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외쳐야 한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 사회적 리더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미래의 한국은 자신과 다른 사고를 해야 한다고 깨우쳐야 한다.  한 번에 다하는, 그러면서 모든 게 좋아야 하는 욕심은 “국민성”으로 자리 잡지 못하도록 고리를 끊어야 한다.  다양성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고들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공부하고 스스로 바뀌려는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어려울 것 같은 인문학적 사고들은 참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 이유도, 능력도, 동기도 현재는 희미하다.  그래서 한국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그 변화가 부품 바꾸는 것 같이 쉬운 일이 아니며, 어떤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북유럽의 여러 기관, 회사들이 자신들과 협업을 원하는 상대에게 왜 우리와 일하려고 하는지 묻는 이유와 같다.  “생각을 바꾸는 것” 그것이 북유럽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고하는 것 “It’s Scandinavian”, 북유럽식의 모든 것이란 노르딕후스의 슬로건처럼 한국은 이제 좀 생각을 할 때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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