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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일과 행복의 상관관계,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인가 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인가

Photo by Guillaume de Basly / imagebank.sweden.se

극히 일부분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직업을 갖고 노동을 하며 산다.  또 극히 일부분이라도 정신적인 노동을 포함하면 일을 안 하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 단지 변화된 것일 뿐 인간과 일의 관계는 수 만년 전과 같다.  북유럽에서는 아주 저학년의 초등학교에서부터 직업교육과 인성교육이 동시에 시작된다.  교육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는 시간까지 더한다면 유아원 시절부터라고 생각한다.  가장 근본적인 컨셉은 인간과 노동은 뗄 수 없다는 것, 모든 직업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변의 직업에서 그 역할을 배우고, 부모나 이웃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내 첫째 딸아이의 첫 번째 드림 직업은 선생님, 둘째 딸은 버스 운전사였다.  자신같이 환경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스웨덴어와 교육 환경에 익숙하게 지도하는 선생님에게서 존경이 일어났고 그 발자취를 따르고 싶어 했다고 한다.  둘째 딸은 두 칸짜리 긴 굴절버스를 수많은 버튼으로 도배된 버스 운전석에서 모두 조종이 가능하다는 호기심과 항상 비슷한 시간에 탑승하는 이웃들에게 짧은 인사와 웃음을 보이는 운전기사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고 한다.  나는 전선을 관리하는 전기 기사가 멋있어 보인 적이 있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바위 지질로 전선 지중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주요 전선들은 모두 지상에 노출돼 있다.  폭설로 휘어진 전선을 청소하고 장비를 관리하는 일이 멋져 보였다.  큰 키에 너무도 탄탄한 체격을 가진 북유럽 청년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변 장비를 관리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고소득에 대한 세금이 많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시작한 경력으로 인해 나중에 연금을 받을 시기가 오면 전문직 직업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도 있고, 보장된 근무 시간과 두 달의 휴가 등 평생 잡으로서의 장점도 뛰어나다.  그럼 왜 오랜 학습과 교육투자를 하여야 하는 의사나 변호사, 또 전문직 엔지니어 같은 직업을 하려고 할까?  이것이 나의 의문이었다.

안식년이란 말을 아는가.  오랜 근로를 한 후 일 이 년간 휴식을 가지며 다음 단계의 근무를 위해 여유를 갖는 시간이다.  한국에서는 아주 일부의 직업들만 이 시간이 허용되며, 그 시간마저도 그냥 놀거나 해외에서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대학교수들, 종교인들, 공공기관 간부 등을 제외하면 이런 시간이 참 없는데 이 안식년에 무엇을 하려는지 그 계획을 알면 과연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북유럽의 안식년에는 대부분 봉사를 한다.  그 지역도 아프리카 등의 오지나 전쟁터가 많다.  왜 그렇게 훌륭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이 쉴 시간에 쉬지 않고 봉사를, 그것도 고생길 뻔한 오지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의문이었다.

이런 나의 궁금함은 직업교육을 받지 않았고 기업가 또는 전문가 정신이 결여된 것에 기인한다.  북유럽의 모든 직업은 소중하고, 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오직 나의 취향과 능력으로 결정한다.  직업군 내의 소득 격차가 한자리 숫자라는 북유럽의 소득구조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오랜 공부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취향이란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란 말이고, 그 이유는 내 선택이다.  나는 한 직업에 관해 그 이유와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은 절대로 소득에 의한 선택이 아니란 것이다.  바로 의무감, 사명감 같은 사회를 위한 직업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목적 때문이다.

대통령이 환경미화원보다 훌륭한 직업인가.  의사가 버스 운전사보다 더 필요한 일인가.  만일 대통령이 더 훌륭하고,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아주 잘 한국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더 많이 버는 것이 더 행복하고, 승진이 거듭될수록 더 훌륭하다는 직업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이것은 일부만 그렇다.  의심스러우면 찾아보라.  모두 되고 싶고 갖고 싶은 위치에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황들을 발견할 것이다.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할 수도 무거운 스트레스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성향 때문이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사람이 가진 그릇이나 시야 등으로 말하지만, 나는 책임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아주아주 필수 덕목은 책임감이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들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직업이란 생각이 들고 사업이란 생각이 들면 그들은 괴로워진다.  생명의 순간을 다루는 응급센터의 의사들은 손끝에서 삶이 오갈 수도 있다.  그 엄청난 책임감을 이거 얼마짜리라는 숫자가 머리에서 떠오르는 순간 그 직업은 재미 없어진다.  단순히 돈 버는 수단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모든 초등학생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거짓말은 오늘날에도 흔하다.  그 훌륭하다는 말은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명제를 두고 말해야 한다.

내 그릇이 어떤지도 모르고 목표만 크면 허황된 사람이다.  아무리 작은 일에도 만족을 못하면 그 일이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이 하기 싫은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말은 수천 년간 떠든 헛소리들 중 하나다.  그 일마저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직업들이 있다.  그 일이 왜 그런지 알기도 전에 굳은 선입관이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일을 찾았다.  현재가 그 결과다.  대학생의 99%는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노동자의 99%는 다른 멋진 일을 꿈꾼다.  사회적으로 힘들다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사실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착각으로 생을 마친다.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 사실 더 능력이 있으며, 부모나 환경 또는 운이 없어서 인생이 힘들다고 위안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좋아하는가이다.  만일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일의 목적을 안다면 그들은 행복하고 보다 더 만족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미래가 안 보인다는 그 이유는 내가 좁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비전에서 그렇게 보이고 그렇기에 힘이 나지 않는 이유다.  세계는 참 넓다.  내가 얼마나 좁고 근시안적인지 다른 문화들을 보라.  우리가 어려서 그렇게 좋아 보이던 직업과 사회적 인정은 우리가 성인이 됐을 때 이미 바뀌었다.  앞으로 20년 또는 그 후를 예측할 능력이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천직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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