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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안정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Photo by Martin Heiberg / VisitDenmark.dk

북유럽은 사회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그 사회 시스템 중 한국이 유독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복지 시스템으로 북유럽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들 중 하나다.  복지 시스템이란 말은 수십 년 전 시작되었고 이론적으로는 100여 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유럽과 네덜란드의 복지 시스템은 Social Democratic, 사회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호주, 캐나다 등의 Liberal, 자유 구조 내의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의 존엄, 평등,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세금제도와 그 정확한 실행에 근거한 제도라는 의미와도 같다.

복지 정책은 의료, 교육, 생활, 연금 등의 큰 가지와 그 안에 세세한 작은 정책들로 나뉜다.  출생부터 의료지원을 받는 병원에서 태어나서, 아동 지원과 교육 지원으로 성장하고, 국립 교육 지원으로 학습과 사회인으로 교육받고, 직업과 실업 지원, 주거 지원, 저소득 지원 등으로 일생을 살다가, 은퇴 연금, 노인 주거 지원, 의료 지원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생이 국가의 복지 정책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왔고,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이 시스템 안에서 충분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한다는 조건만 맞는다면 그렇다.  이는 한국에서 “안정”이라는 의미로 생각되기도 한다.  과거 일본이나 한국에서 행해졌고 현재에도 몹시 목을 매는 종신 고용, 고용 보장, 은퇴 후 소득 대책 등이 안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학 1학년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공무원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많고, 장래의 꿈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직업군으로 선택되는 걸 보면 무척 답답하고 슬프다.  그들의 장래가, 한 젊은이의 미래가 단지 먹고사는 것에만 치우치는 짧은 안목이 얼마나 스스로를 후회하게 만들지 알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공무원은 나라의 살림을 이끌고 따뜻한 국가를 유지하는데 중요하다.  그 사명감과 무한한 책임감이 없이, 아주 작은 부가 가치인 “안정”만을 생각하는 공무원은 무슨 미래를 볼 것이며, 국민을 위해 그 어떤 도전적인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싶다.  또 눈에 쉽게 보이는 안정적인 수입이 기대되는 직업들이 과연 자신의 일생을 수십 년간 투자할 정도의 애정이 있는가도 중요하다.

나는 북유럽의 복지 정책을 단지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보고, 그것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자신감을 얻고,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란 신념을 주는데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사실, 북유럽에서 흔히들 말하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조금 도전을 하려다가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앞서고, 새로운 기술혁명을 만들 수 있을까.  뭐하나 꿈꾸다가도 망하면 그것 봐라 안정적인 일을 해야 했었다는 자조적인 비아냥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 누가 자신의 인생을 투자할 수 있을까.  비록 정부가 자금을 주어도, 기업이 창업 기금을 융통해도 그 꿈은 안전과 또 안전, 돌다리를 두드리다 걷지도 못하는 사업이 될께 뻔하다.  안정은 좋은 일이지만, 안전하고 희망적인 창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의 의미를 새기고 같이 고민해주는 친구 같은 정부가 필요하고, 실패를 오히려 칭찬해주는 격려 어린 이웃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안정이고, 젊은이의 창업 도전이다.

비록 창업으로 꿈을 삼지 않아도, 여러 분야, 기초과학, 예술, 인문학 등 돈 안되는 분야로의 꿈이 살아있는 사회가 다양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볼 수 있음은 당연하지만, 과연 누가 그 길을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답은 초등학생 수준에서 머문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보고, 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들을 어려서부터 살핀다.  이것이 세계화인가, 또는 탈 한국화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자신의 꿈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럴 수도 없고 자신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당연한 것이다.  내 친한 친구 한 명은 분야에서 꽤 유명한 저명인사다.  교수도 겸업하고, 공부를 아주 좋아하는 지식인이다.  그도 신념이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큰 수익을 바라볼 수 있는 직업이었음에도 그는 학생들과 학문,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믿는 소신가였다.  그의 삶의 철학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강단에서 항상 그의 신념을 강의하곤 했었다.  금년까지 그게 좋았다.  시대는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은 바뀐다.  진리는 영원하다지만 시간이 흐르기까지 그것이 진리인 것은 모른다.  그의 강의는 어느 순간 비판의 대상으로, 모욕과 불평등의 상징으로 철저하게 비판받았다.  교단에서의 퇴진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마저 일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누구에게도 옳다고 믿었고, 그중의 한 사람은 나였다.  지동설이 천동설로 바뀌듯이 세상은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세상으로 들어섰고, 그 오해는 내 친구가 고스라니 받아야 했다.  은퇴, 퇴임, 낙향, 이민… 별 고민을 다하며 수개월이 흘렀고, 지난 성탄절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그는 한참을 울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일 그렇다면 본인만 그렇게 믿고 있는 거다.  그 믿음이 자신이나 신이 아니라면, 만일 그것이 사회의 변화나 유행에 근거한, 인간들이 만든 그 무엇중의 하나라면 10여 년 안에 바뀔 확률이 높다.  존경받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혐오 직업이 되고, 변호사의 대부분이 직장인의 수입이 안되는 사회를 상상했었는가.  전공을 막론하고 9급, 7급 공무원에 목을 매는 사회를 꿈이나 꾸어 보았는가.  앞으로 10년 앞은 어떨까.  그때 다시 난 일을 잘못 골랐다고, 누가 좋다길래 부모가 하라길래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나 하며 은퇴를 할 건가.

안정이란 말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상당히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조건은 안정을 찾았으니,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가만히 죽은 듯이 있자와 이제 미래가 보장되었으니 내 의미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의 두 가지 길이 있다.  북유럽은 후자로써 각종 지원이 그 길을 택한 사람에게 맞추어져있다.  그래서 새로운 창업이 일어나고, 실패에 교훈을 얻는다.  그것이 기업가 정신,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삶의 철학이다.  내 존재의 이유다.  인간이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써의 의미가 부족해진다고 생각한다.  쓰레기 한 장을 줍고, 법과 세금을 지키는 작은 실천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 남겨 호랑이 가죽 같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과 삶을 사랑할 것이다.  안정은 끝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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