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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시각에서 본 한국내 갑질의 이유

Photo by Kim Wyon / VisitDenmark.dk

갑질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약 시 갑과 을로 두 상대를 줄여 표현한 단어란 이야기를 듣고서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문을 넣은 자가 마음이 바뀌어도 그 계약에 적힌 내용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고, 계약이란 일이 없음에도 상대를 평등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왜 받아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 노르딕후스도 계약을 할 일이 많아지고, 사회에 적응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갑질이란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그런 점에서도 감사하게 노르딕후스는 다른 한국 내의 계약 조건과는 다르다.  갑질은 고사하고, 평등하지 않은 일, 지나친 기울기, 부가 조항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감히 “을”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평등을 계약에서 실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협업이나 주문의 관계는 평등해야 하고, 상대가 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첫째이고, 노르딕후스가 제공하는 일에 대해서 대안이 없다는 독점적 위치에 있다.  이 경우는 다시 을의 반격 같은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상식이 존재하고 초등학생의 가치로도 판단되는 사고의 수준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갑질은 오랜 한국의 문화 사고 가치이다.  수직사회의 불평등과 신분제의 시대까지 여행할 필요도 없다.  천직이 존재하고, 성공은 다른 사람을 이끄는 일이란 사고도 오늘날 존재한다.  과거 한국의 개인은 그 범위가 자신의 영향력과 일치한다.  내가 높은 직책의 고관대작이면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식구, 친척까지도 그의 영향력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내 집안의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곧 나를 향한 괴롭힘이란 생각이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수직 문화에서 나는 이끌고 다른 사람은 이끌림을 당한다.  그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직책이나, 자본, 군사력 같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고는 오늘날에도 수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연관되지 않은 다른 이에까지 행해지고, 그 수위가 무척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갑질의 Definition, 정의다.

경찰이 무력으로 용의자를 제압하거나, 심지어 총으로 상해를 입히는 경우라도 갑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어느 한마을에 불리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갑질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갑질과 다른 이유는 어느 한 부분에 대한 불공정이 상식적으로 이유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수를 위한 이유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갑질은 정치력, 공권력으로 불리지 갑질이란 말은 없다.  언어폭력과 부당한 요구, 이기적인 자기주장, 자신의 힘을 일과 상관없는 경우에 쓰는 경우, 고의적으로 자신에 유리한 판단을 하는 경우는 모두 갑질이다.

갑질의 이유는 위와 같이 자신의 힘을 관련 없는 이유에 쓰는 경우다.  그것에 이유는 수직사회의 권위 속에 숨은 이기적인 욕심이다.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대중의 관심에 의해거나 조직의 변화 구조 속에서 자신이 커왔고, 무수한 경쟁과 좌절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했던 이유가 그저 “내가 잘 먹고 잘 살자”라는 유치한 성장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승진을 하고, 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왜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그 이유라는 쳇바퀴 도는 질문과 답으로 그저 앞으로만 달려왔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에 스승이 찾기 힘든가에 대한 답이다.  능력 있고, 따라 하고픈 사람들은 언제나 넘쳐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한두 번 그 사람을 만나면 들것이다.  기업가 정신, 정치가의 윤리, 더 쉽게 말해 인생철학이 없는 텅 빈 가슴의 능력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힘과 상대의 힘을 천성적으로 잘 분석한다.  모양의 부풀리기나 변신 같은 거짓을 통해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더 많은 힘을 갖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고릴라의 몸짓과 비슷하다.  그것이 정부의 공권력이나 기업의 예산이어도 마치 자신의 힘으로 쓸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진다.  영원할 것 같은 지위나 기업의 위치는 그러나 몹시 순간적인 현상이다.  한 개인은 그저 나라와 국민, 대중, 다른 기업의 일을 해주는 노동자에 불과하다.  대통령도 장관도, 어느 공무원도 절대 그들의 힘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 상대 기업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어느 타락한 공무원이나 종교인들이 정부의 힘과 신의 말씀을 사유하고 이용하는 것은 위법 행위일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망상이다.

이를 이용하는 행위, 또 그 대상이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 시기, 장소임에도 자신이 항상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는 행위, 그 가족이나 주위 인사들도 마치 그 우산 속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하는 행위 등이 갑질을 양산한다.  북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펴고 있는 평등의 사고는 누구나 그 범주에 들어간다.  심지어 국왕도 국민에게 빌린 왕권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 총리, 어느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같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이 일을 맡고 나면 어떻게 될 수 있다는 욕심을 눌러선 결과다.  이 같은 자연스러운 한국의 갑질은 하루에 고칠 수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요즘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서로 말을 하는 문화로 바뀌다 보니 떠드는 것이지 오랜 옛날부터 존재한 가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고가 깊어지면서, 개인의 윤리의식과 자각이 생기면서 바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위, 높은 이란 단어에 지금 유아를 가진 부모들이 집착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두 세대가 흐르기 전 급격한 사고의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갑질이 궁금하고, 경험해 보면서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끄적인 메모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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