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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스포츠, 그들이 사는 방식

Photo from http://www.abc.net.au/news/ (AP: Natacha Pisarenko)

스웨덴이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메달을 하나 추가했다.  한국도 값진 메달을 받았다.  이번 한국 여자 컬링팀의 보상이 특히 가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과 같은 스포츠 환경에서 이루어낸 수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천재들이라 부른다.  스포츠와 예술같이 인간의 능력을 솔직히 보여주어야 하는 분야는 천부적 재능이라고 부르는 천재성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수영, 피겨 스케이팅, 골프, 양궁 같은 분야의 천재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재들은 기를 수도, 키워줄 수도 없는 타고난 상태다.  그래서 한국의 스포츠가 수십 년간 해온 스포츠의 육성은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고, 폐쇄적이며, 한국인들의 스포츠 정신마저 말살시키는 후진적 사고였다.  마치 “떴다 떴다 비행기” 동요를 익숙하게 부르던 유럽 아이들을 만났을 때의 충격만큼 서양, 특히 북유럽 스웨덴의 스포츠 문화는 나에겐 신앙과도 같은 정도의 충격이었다.  스포츠는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함을 바탕으로 국민 누구나 즐기고 경쟁하며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문화이고, 이 중에서 선호되는 문화가 나라의 스포츠 종목이 되고 역사성을 가지며 나라마다 잘하는 종목이 생긴다.

내 어린 시절 한국에는 태릉 선수촌이란 곳이 만들어졌다.  홍보를 맡은 TV 프로그램에서는 그 안에서 집중적인 훈련과 합숙을 하며 기량을 키우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시설이 좋고 선수들에게 무료로 운영되는 선수촌의 입소 자격은 국가 대표다.  그 국가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체육 관련 학교를 졸업하거나 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한다.  그 당시 체육관련 학교의 학생들이나 학교 체육부의 생활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한편으로 그 선수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유라도 만일 자신의 꿈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그들의 미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수들은 수업은 고사하고 학교마저 나오지 않는, 그냥 운동하고 사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스포츠 분야의 일상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운동선수들은 연습하느라 바빠서 공부도 할 시간이 없고, 그래서 졸업도 못할 실력이지만 그냥 운동한다는 그것으로 졸업도 시켜주는 줄 알았다.  이 말은 지금에는 일부라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운동선수들은 일반 학생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고, 그렇기에 한국에서 운동선수, 특히 국가 대표라는 자격을 얻어 선수촌이란 곳엘 가고 싶으면 일반 사람과 다른 길로 나가야 하는 줄 알았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세계 어느 나라의 선수들도 다 그렇게 국가 대표가 되는 줄 알았다.  떴다 떴다 비행기란 동요가 한국의 누구가 작곡한 것으로 알고,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에 이곡을 고른 것 같이 나는 그렇게 얕은 사고와 편협된 지식으로 믿고 살았다.

너무나 답답할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스포츠는 특권이 아니다.  평등하고 누구나 즐겨야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활이다.  분명하게 등산, 낚시 같은 레저와는 다르다고 이해 바란다.  한국에서 전 국민이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인가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산악회 활동? 폰질?  기묘한 손가락 움직임과 나빠지는 시력을 극복한 인간 스토리?  내 비꼬는 말이 나쁘지만 딱히 할 대답도 없지 않은가.  그럼 그 이전 역사성이 있는 스포츠는 무엇이 있었을까.  또 정말 한국인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나.  모두에게 평등하게라는 스포츠 정신은 가난함에 무너졌다.  있는지도 모를 한국을 알리려는 메달의 집착에 체육계는 편협해졌다.  같이 평등하게 즐겨야 하는 스포츠는 일부만이라도 살아남게로 바뀌었다.  1970년대의 이 사고는 지금 현재 무엇이 바뀌었는가.

내가 사랑하는 스웨덴은 스포츠와 생활이 같은 나라다.  약 9백여만 명의 인구 중 7세에서 70세 사이의 약 3백4십만 명이 각종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고 있고 그 클럽의 숫자는 2만 개가 넘는다.  특히 7세에서 15세 사이의 청소년을 위한 클럽은 12,000개가 넘고 세 명 중 두 명은 이 클럽에 가입해 있다.  스웨덴 스포츠 클럽의 중요한 성격은  “누구에게나 공개”, “독립적”, “비수익과 자발적”, “민주적”, “자발적인 운영과 지도”, “활동적”, “사회에 협력과 도움을 주는 방향”, “정부와 사회로부터의 지원”이다.  한마디로 아주 아마추어적인 개인과 지역민이 스스로 운영과 지도, 경쟁, 발전을 하며 정부와 사회는 이들을 지원하는 형태다.  이 클럽들 외에 개인은 또 운동을 하고 노르딕스키와 썰매로 장을 보러 가는 생활이 일상적이기도 하다.  운동을 싫어하는 나도 한때 동네의 컬링 클럽을 기웃거렸으니 다른 이웃들은 오죽 부지런했을까 싶다.  3백4십만 명의 클럽 회원들은 2만 개의 클럽에 소속돼 있으며, 지역마다 위치한 약 1,000개의 스포츠 지부와 21개의 상위 기부에 연결된다.  스웨덴의 국가 대표 시스템은 지역 클럽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연결된 1,000개의 지부 내의 다른 선수들과 경쟁을 통해 21개의 상위 선수 지부로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상위 지부에는 69개의 국가 스포츠 위원회가 또 연결되어 있고, 국가 대표 선수 및 각종 대회의 운영, 기록, 지도를 담당한다.  스웨덴 올림픽 위원회나 빙상 연맹, 컬링 연맹 등도 이중 하나다.  그래서 선발된 선수들은 직업이 있다.  한국 어느 선수와의 해외 인터뷰 중 기자가 직업이 무엇이냐에 대해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어느 한국 선수가 생각난다.  어느 시청 소속으로 월급 받는 무늬만 공무원과는 다르다.  그래서 스웨덴의 국가 대표들은 순수한 아마추어고, 나이와 직업과 계층에 상관없는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 배우들이다.  과거 한국의 발전기에 영광을 수여받은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는 진부했다.  “가난과 고생을 이기고”로 시작하는 아나운서의 처량한 목소리는 항상 똑같았고, 국민들은 왜 국가 대표 선수 출신은 다들 고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차이다.  아직도 목숨을 걸듯이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다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빨리 세수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계속해 보시기 바란다.  노력은 발전이고, 발전은 바탕이 있어야 생긴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하는 발전이 아니면 그렇게 효율도 좋지 않다.  나는 한국의 전 국민이 어느 스포츠에 빠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선수 누구가 비록 메달권에 실패했어도 그를 이을 선수들은 수만 명이 넘는다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전부 석권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국민 모두 평등하고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으로 삶을 살고, 건강하고 건전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되는 것이 수천 배는 더 값진 일이 아닌가.  스웨덴은 그래서 스포츠에 열광하고 전 국민이 노르딕스키 선수에 가깝다.  마치 네덜란드의 전 국민이 스케이트 선수들인 것 같이 말이다.

스포츠는 아마추어의 정신이다.  돈과 정치, 종교의 이유로 변질될 수 없는 가치다.  만일 스포츠를 돈과 연결하고 싶으면 프로 팀으로 가기 바란다.  순수함의 포장을 한 선수들이 참 많이 보인다.  자기 직업을 스포츠 선수로 아는 수준이니 뭐 할 말이 없다만 그 스포츠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만은 지키기 바란다.  혹시 뒤를 따라올 후배 선수들에게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악례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진국들은 올림픽의 메달을 국가의 가치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 나서는 문화를 가지거나 국가적 홍보가 필요한 떠버리 국가들은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보상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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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노르웨이와 영국은 금메달에 대한 보상금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과 불가리아는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평생 연금과 징집 면제의 혜택을 준다.  스포츠의 자율과 평등은 메달이라는 그깟 상징에 스스로를 감췄다.  국가 운영 선수 시스템, 선수촌, 국영 체육 대학교, 공적 성격의 각 스포츠 연맹 등은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한국에 존재하기 힘든 국민 체육 클럽을 지원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국영 시설은 지역민들의 시설로 개방해야 한다.  당장 어느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과 메달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적어도 십수 년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건강과 스포츠 정신에 의한 자각, 사회적 효과 등을 보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그러나 그전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멍석도 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인들 스스로 스포츠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하려 하는지 그 대답이 필요하다.  어쩌면 수십 년 전 국민의 스포츠는 남 몰라라 하고 그냥 되는 사람 일부만 키우자라고 폐쇄적으로 운영된 체육계가 이미 판단하고 지금까지 온 것인지 다시 물어봐야 한다.

스웨덴의 스포츠 정신과 사회적 기여에 관한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스웨덴의 스포츠 정신은 단순히 정해진 이익을 생각한 것보다 더욱 가치 있는 “건강한 신체로 인한 웰빙”,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삶의 즐거움” 등을 수백만 스웨덴인들이 나눈다는 점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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