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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사회 교육, 나는 누구인가

Photo by VisitFinland.com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독자들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나”라는 주제는 참 개인적인 주제다.  “우리”에 갇혀사는 한국의 문화에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문화가 확산된다고 떠들어대는 언론도 참 깊은 생각이 없다.  무슨 생각이 퍼지는 데는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텐데도 그리고 그것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데도 큰 문제라도 된양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군대의 보급관을 닮았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 별일 아님에도 난리를 치던 그들의 행동이 요즘 언론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나서 웃음이 나곤 한다.  이기적인 마음, 개인주의, 나라는 존재 등과 같은 주제들은 한 주제나 마찬가지이다.  모두 나라는 출발점에서 나온다.  나에 대한 가치의식이 이 길로 갈 수도, 저쪽 길로 갈 수도 있다.  이기주의는 정도를 벗어난 갓길 주행의 결과다.

북유럽에서 나라는 주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개인주의의 삶에서 북유럽 사람들이 왜 개인주의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그것이 나를 찾는 길이니까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중요하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엄이며, 가장 가치 있는 존재다.  내가 볼 때는 그렇다.  모든 자연과 사회와 나아가 한 국가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한마디로 절대 존엄이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  영장류이면서 같은 DNA를 가진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을까.  이점이 바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갈라 주는 갈림길이다.  다른 사람도 존엄하다.  그러므로 상대의 가치와 존재는 나만큼 존중하여야 한다.  아주 간단한 이 문장이 개인주의를 오히려 편안하고 배려하는 사회로 만든 것이다.

드러나는 북유럽의 가치들 중에는 평등이나 인권, 안정된 사회구조, 적은 경제적 붕괴 위험성, 신뢰, 복지정책, 행복 등이 있다.  그러나 북유럽은 단순한 위의 가치 외에 숨은 가치들이 있다.  Nordic Soul, 북유럽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이것들은 개인의 존재와 존엄, 개별성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이 북유럽의 정신이 북유럽의 가치를 이루고 있으며, 정치, 경제를 포함하여 각 방면의 사회 구조에 근간이 되고 있다.  인권, 인간 중심 같은 단어와 사상의 중심은 당연히 “나”이다.  북유럽에서 인간이라는 나를 찾는 방법은 독특하다.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그, 또는 그녀만의 독특함, 그로 인해서 이어지는 모든 발전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한 순수한 나를 찾아간다.  이런 나를 찾는 노력은 개성이나 성격에도 영향을 주지만, 북유럽 교육 시스템에도 묻어난다.  어떻게 각기 다른 ”나”들을 교육할 것인가, 또 어떤 방향으로 친구나 가족을 대하는가, 동료나 회사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각기 다른 나를 대하는 시선에서 확대된다.  이처럼 북유럽의 사회나 문화에는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이웃, 사회의식에도 반영된다.  나는 나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지만 다른 나들도 나와 같은 존엄을 부과하는 것.  이것이 평등의 개념이다.

스웨덴 작가 Astrid Anna Emilia Lindgren,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2002)이 쓴 삐삐의 이야기에는 길고 긴 삐삐의 이름이 나온다. Pippilotta Viktualia Rullgardina Krusmynta Efraimsdotter Långstrump, Pippilotta Delicatessa Windowshade Mackrelmint Ephraim’s Daughter Longstocking,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길고 긴 삐삐의 이름이 원래 이름이다.  북유럽의 이름들도 원래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삐삐를 보며 세계의 사람들은 긴 이름에 웃음을 보냈지만 막상 북유럽 사람들은 웃을 수 없었다.  어느 지방, 무엇을 하는, 누구의 아들 또는 딸의, 누구라는 이름은 쉽게 4-5 음절을 넘는다.  박달나무 고개, 딸기 마을, 대장장이 아들, 개똥이가 이름이 되고, 성은 따로 있는 셈이다.  웃음에 적는다고 독자들은 생각하지만 나는 이 체계만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고 믿음 있게 사람에게 알리는 것만큼 이름이 중요했고 이 이름 체계는 그 역할을 했다.  나를 찾는 교육은 이 같은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 무엇을 하는 집에서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미술을 잘하면 그림 그리기란 이름이 추가되고, 기계 고치는 일이 좋으면 기술자란 이름을 추가하면 된다.  각종 문서에는 비록 들어가 있지 않지만, 자신의 머리에는, 그리고 가족들의 기억에는 여러 이름들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 긴 이름이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교에 들어가는 시절에는 일부 없어진 것도 새로 생긴 이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이 “나”이고 나를 표현하는 삶은 이 이름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치원과 보다 이른 유아원 교육에서 나를 찾는 교육은 시작된다.  친구들과 다른 나, 그러나 잘못됨이 없는 것들.  같이 살고 사랑하는 이웃이 되는 방법이 유아원에서 시작되고, 나는 누구인가, 왜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보다 철학적 문제들은 초등학교에서 완성된다.  이것에 방법은 “Internalization, 내면화”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 직업교육, 사회교육, 현장 인턴 체험 등이 고등학교 이전에 이미 완성된다.  초등학교 교육은 한마디로 나와 이웃이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습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유럽 초등학생들의 수학이나 과학 실력이 왜 세계에서 꼴찌를 맴도는지 그럼에도 왜 대학의 실력은 상위권인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북유럽의 자연도 나를 찾는데 한몫한다.  가끔씩 끝없는 숲을 멀리서 바라보며 또는 잔잔하기만 한 진청색 호수를 보며 북유럽에서 시나 그림을 한두점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숲에서 뒹구는 나무토막 한두 개로 조각이나 목공예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만큼 느낀 감정이 충만되었고, 그 넘치는 에너지가 북유럽의 문화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러나 과하지 않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결코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상대와 같이 생각하며 넘치는 에너지를 그들의 문화에 담았다.

자연을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인간은 한편으로 스스로 위축되곤 한다.  겸손이 지나 처서 염세론적인 생각마저 있을 수 있다.  위대한 자연을 나와 같이 생각하기에는 인간이, 또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나도 경험하였고 무척 오랜 생각을 갖게 한 이 시간들은 결국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것은 내가 있는 이유와 존재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저 자연의 하나뿐인 모습으로 나를 몰아치기에는 나는 인간이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란 걸 의식하고, 그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물어보는 여러 과정을 거쳤다.  인간이 자연을 존경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같이 살아가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그 마음이 나와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대단한 걸 생각한 듯 나는 들떠 있었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과 인간,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 철저한 깨달음이 있다고 후에 알게 되었다.

다른 문화에서, 중년의 나이에도 흔들리는 나를 찾는 모습을 본다.  요즘 말로 “뭣이 중헌지”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결과이다.  독자들은 누구인가.  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 행복한가.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라.  사는 건 별것 아니다.  얼마나 부질없게 느꼈으면 이름을 남기는 삶을 살라는 말까지 있을까.  그러나 이름을 남기기에 앞서, 사실 그럴 일도 없지만, 자신의 이름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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