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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눈으로 본 남북한의 갈등과 통일 방안

Photo from Stars and Stripes

국내의 여러 문제는 해외에서 오히려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집안의 분쟁거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구성원들이 대단한 문제인 줄 알고 싸우더라도, 다른 이웃의 관점으로는 단순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욕심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일 수 있어서 그렇다.  지난 늦여름 덴마크에서 십여 명의 학생들과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우연한 기회에 노르딕후스와 알게 되어 교과과목인 해외 체험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하게 되었다.  그중 나와의 만남도 있었다.  노르딕후스에 다른 글이 있으니 참조 바란다.  나는 그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과 분단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길 바랐고, 전쟁 기념관과 DMZ 방문을 추천했다.  미리 계획되었던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한국의 근대사에 관해 미리 브리핑을 받았던 터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전쟁 박물관에서 최근의 전쟁이었던 한국전쟁에 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수많은 해외의 지원군들이 희생된 사실, 그중에 덴마크도 참전했고 머나먼 나라 한국에서 아직까지 그 사실을 기념하며 덴마크 참전비 앞에 항상 놓아져 있는 꽃다발에 한동안 숙연함을 금치 못했다.  이론 공부를 떠나 막상 바라본 DMZ 상황과 북한에 대한 최근 뉴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의 풍요로움과 화려한 생활 등 극과 극을 넘나드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한두 시간 만의 거리에서 말이다.

덴마크 학생들과 교수는 한참을 이것에 대해 나와 토론했다.  궁금하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처음엔 안타까웠고 눈물지었지만 나중엔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인간적인 사고다.  사상과 체제를 떠나 인간이 이렇게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 긴 시간 동안 남북한과 세계의 나라들은 무얼 했는냐고 되물었다.  나는 자신의 작은 이익에, 애국과 충정이라는 그 알량한 거짓으로 가문과 이웃,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에게 큰 해를 끼친 수많은 사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현재에도, 차라리 욕심에 가지겠다는 솔직한 횡포는 고사하고 사탕 발린 거짓에 남북한 모두 큰 책임이 있음을 느꼈다.  왜 남북한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양측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노르딕후스의 관련 일로 젊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난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마음, 국가관, 경제적 마인드, 희망사항 등을 많이 듣는다.  유학, 취업, 사업 등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당연히 나오는 과정이긴 하지만.  최근의 나는 남북문제에 관해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우선 나는 식민사관이라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교육을 바탕으로, 무조건적인 반공교육과 일방적 통일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옳고 그른 사고의 판단 이전에 내 부모의 경험과 희망이 당연히 남북의 통일문제나 반공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북통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요즘의 사고는 다르다.  그 이유는 일방적 통일을 주장하는 그 세대가 끝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그 세대는 80대가 넘었고,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도 70대가 훌쩍 넘었다.  서울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을 책으로 배운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돼있다.  그때의 대통령, 또는 그 이전의 대통령에 대해 물어보면 나도 역사 속 인물이 되는 시대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서는 남북통일보다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여기에는 민족적 당위성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 갈래의 길로 나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민족을 들먹이는 사람들이라도, 그 방법에 들어가면 입을 다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민족적 통합으로 남북통일을 외치는 사람들이 그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300조가 넘는 독일의 통일비용은 통일을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민족적 당위성에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수십만의 중국 동포와 러시아의 고려인보다 북한의 동포가 우선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남북통일을 논할 때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옛 주장은 헛소리로 들린다.  남북통일로 얻고 잃는 대차대조표가 근거가 되어야 하고, 그 방안도 신뢰 회복이나 상호 방문 같은 뜬구름 잡는 말장난으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경제에 관해서는 얘기를 할 지식이 되지 않는다.  혹시 기회가 되면 사실에 근거한 남북한 통일 예측을 듣고 싶다.  그러나 통일의 방안에 관해서는 해외의 얘기를 해 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 얘기는 전부 집안 얘기고, 너 잘났다 내 잘났다 따지면서 60여 년이 흘렀다고 생각한다.

개인 간의 협업은 인정으로 시작한다.  상대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내가 나이가 더 많다고, 더 돈이 많다고 만나는 사이는 그냥 요구에 그친다.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북한의 정통성이다.  북한이란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로 보아야 하는가, 왕조국가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차를 극복해야 한다.  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왕조국가를 북한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세계의 시각에서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북한의 체제가 현재 그렇다는 것이다.  남한은 자유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일부 사회주의 시스템 옵션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다.  지금까지의 신뢰를 회복하고, 군사적 긴장을 낮추자는 주장은 시작에서부터 문제가 나온다.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 할 때 무조건 믿어준다고, 돈을 준다고, 자주 만난다고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상대를 잘 알기에 나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 그 믿음, 이것이 신뢰다.  이 신뢰의 문제를 남북문제에 대입해 보면,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공동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공산주의나 노동당 같은 체제의 문제를 떠나 최고 지도자와 군부의 생존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들어올 땐 맘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땐 맘대로 안되는 것과 같다.  북한의 입장은 이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는다.  수십 년, 그것도 3대를 이어온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기득권을 미래 한국을 위해 쉽게 넘길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단순히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순간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부터의 비극도 충분히 예상된다.  지금 북한의 지도부 내에는 외적인 위협과 내적인 위협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아주 단순히 생존의 문제로까지 연결돼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계속되는 긴 시간 동안, 남북한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 중 체제 유지 보장을 세계에서 해 주어야 한다.  나는 1국가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오랜 시간을 생각할 때 2국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UN과 세계의 북한 체제 인정과 안전 보장, 그리고 세계를 위협하는 핵의 철수 및 재발 방지 약속이 첫 번째다.  이에 반하는 옵션으로 무시무시한 보복도 명기해야 한다.

두 번째는 북한이 스스로 먹고살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여기의 대목은 북한의 선택이다.  왜냐하면 시장경제 논리가 당연히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업을 접거나 정부로부터 횡포를 당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다시 중국에 도전하기는 당연히 꺼려진다.  같은 논리로 북한 내 사업은 당연히 세계가 원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북한이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가난하다고 모든 남의 자식을 다 먹여살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북한의 체제가 보장된다면, 그래서 4대 이상의 세습이 가능해진다면 북한은 변할 수 있다.  북한의 인민들이 그때까지 지지해 준다면 말이다.

북한의 경제가 조금이라도 빛을 본다면, 그래서 그 가난했던 사회에서 뭐 하나라도 유명한 상품이 나와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다면, 북한은 더 변할 수 있다.  사실 남한에서 할 일은 초반의 상호 인정을 위해 세계에 호소하는 것 외에 별할 일이 없다.  북한의 경제 발전 단계엔 그저 지난 한국의 발전 시기에 동남아나 중동에서 했듯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로 북한을 보아야 하니까 그렇다.  상호 신뢰나 군사적 긴장 완화 같은 말만 들어도 힘들 것 같은 일들은, 시간이 해결하는 이벤트가 될 것이고 수천 조에 이르는 통일 비용은 양국이 스스로 벌어 마련하는 자율적 모금이 될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최고 지도자 및 군 간부들은 시간이 흐르며 대기업의 회장이나 독점 사업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할 것이고, 그것만이 빠져나오는 방법임을 지금도 인지하리라 본다.  북한은 국외 탈출이나 망명 같은 독재자의 마지막 길이 얼마나 비참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고 북한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중세의 그 많은 영주들이 왕권에 대항 한 이유도,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본의 그 많은 다이묘들이 천황에게 영토를 반환하며,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 있던 이유는 신분 보장과 종신 연금이었다.  나는 북한의 체제가 욕심이 많아서 뭘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기 위한 방법이고, 그중에 가장 우선인 것은 지도자와 정권의 생존과 신분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점이 남한에서 생각해야 하는 상호 신뢰가 아닐까 생각한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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